길 위의 호남 선비, ‘미암일기’를 남긴 유희춘(5)
길 위의 호남 선비, ‘미암일기’를 남긴 유희춘(5)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08.2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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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미암 박물관의 ‘일상과 정치를 기록한 보물 – 미암일기’ 전시물 앞에서 멈추었다. 『미암일기』는 미암 유희춘이 홍문관 교리로 복직한 1567년 10월1일부터 별세하기 이틀 전인 1577년 5월13일까지 11년에 걸쳐 거의 매일 한문으로 기록한 일기이다.

현재 남아있는 일기는 모두 11책으로, 일기 10책과 미암과 부인 송덕봉의 시문을 모은 부록 1책으로 되어 있다.

일기의 내용은 조정의 정치사에서부터 집안의 대소사 및 개인의 신변잡기 등 그야말로 광범위하다. 최근에는 『미암일기』를 통하여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의 일생이 새롭게 밝혀지고, 사대부의 삶과 부부의 사랑을 쉽게 풀어 쓴 책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정창권 지음,2003년)』이 출간되어 관심을 끌었다.

▲ 미암박물관에 전시된 미암일기 전시물

그러면 『미암일기』를 통하여 미암 유희춘(1513∼1577)과 부인 송덕봉(1521~1578)의 부부생활에 대하여 살펴보자.

1567년 10월에 복직한 유희춘은 가족도 못 만나고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하였고, 11월에 특별휴가를 받아 고향에 내려와 가족과 상봉하였다. 일 년 뒤인 1568년 9월에 부인 송덕봉은 딸과 사위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1569년 9월까지 1년간 살림을 했다. 1)

송덕봉은 담양에서 출발하여 12일 만인 1568년 9월8일에 서울에 도착했는데, 그동안 전주 · 여산 · 은진 · 공주 · 천안 · 수원 · 용인 등을 거쳤다.

1568년 9월29일자 『미암일기』에는 송덕봉이 서울로 올라오면서 일어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아내가 딸을 데리고 담양을 출발하였다. 딸은 몸이 허약하여 말을 탈 수 없으므로 어떤 사람은 딸도 가마를 태우라고 권하였으나 아내는 남편의 명이 없었다며 사양하고 태우지 않았다. 전주에 도착하여 부윤 노진이 가마를 하나 내주면서 딸도 태우라고 하였으나 아내는 애써 사양하며 남편의 뜻이 아니라고 하였다. 부윤이 세 번이나 간청하였으나 끝내 듣지 않자 노공이 탄복하였고, 폭쇄별감(曝曬別監 책을 말리는 관리) 정언신도 서울에서 여러 번 칭송했다고 한다. 2)

송덕봉의 당당한 기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는 이호민이 쓴 미암의 시장(諡狀)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타고난 성품이 명민하고 경서와 역사서를 두루 섭렵하여 여사(女士)의 기풍’이 있었다. 또한 『덕봉집』이란 시집도 남겼다. 3)

1569년 8월26일에 유희춘은 우부승지가 되었다. 이날부터 그는 계속하여 승정원에서 숙직하였다. 그런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 송덕봉은 옷과 이불을 챙겨서 승정원에서 숙직하는 미암에게 보냈다.

이에 감복한 미암은 덕봉에게 술 한 동이와 시 한수를 보냈고, 궁중 술을 가족과 함께 마신 덕봉은 9월2일에 화답시를 보냈다.

그러면 미암의 시부터 살펴보자.

모주(母酒) 한 동이를 집으로 보내며 아내에게

눈은 내리고 바람 더욱 차가운데

추운 방에 앉아 있을 당신 생각하오.

이 술 비록 하품이기는 하나

언 창자 따뜻하게 해줄 수는 있으리

雪下風增冷 설하풍증냉

思君坐冷房 사군좌냉방

此醪雖品下 차료수품하

亦足煖寒腸 역족난한장

다음은 미암의 시에 차운한 송덕봉의 화답 시이다. 운은 2구의 방(房) 과 4구의 장(腸)이다.

국화잎에 비록 눈발은 날리오나

은대(승정원을 말함)는 따뜻한 방이 있겠지요.

차가운 방에서 따뜻한 술을 받아

언 창자 채우니 매우 고맙습니다.

菊葉雖飛雪 국엽수비설

銀臺有煖房 은대유난방

寒堂溫酒受 한당온주수

多謝感充腸 다사감충장

며칠간 숙직하고 비로소 집에 온 미암은 덕봉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는 이날 ‘부인과 엿새를 떨어졌다가 만나니 반가웠다’고 일기를 썼다.

1) 유희춘은 송덕봉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 경렴은 경양도 찰방이었고 하서 김인후의 딸에게 장가들어 2남 1녀를 낳았다. 딸은 선전관 윤관중에게 시집가서 딸 하나를 낳았다.

2)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인터넷 사이트, 한국고전 종합 DB, 미암집, 제6권, 1568년 9월

3) 『덕봉집』은 1571년에 미암의 처조카 송진이 시 38수를 한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미암일기 1571년 3월30일)

한편, 2012년에 조선대학교 고전연구원은 『국역 덕봉집』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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