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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넌출이 감는 것
문틈 시인/시민기자  |  siminsor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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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0  15: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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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 산책길은 개천의 둔치에서 길바닥으로 올라오는 칡넌출들로 장관이다. 개천의 둔치에서 길가로 무리지어 올라온 녹색 칡넌출들은 한가롭게 길을 걷는 내 발목을 감을 듯 뻗어 나와 있다. 살짝 머리끝이 서는 느낌이 든다. 그런 칡넌출들이 길을 따라 수도 없이 뻗어 있다. 흡사 길바닥에다 무슨 덫을 놓은 듯하다.

철사줄처럼 생긴 칡넌출들은 억센 생명력으로 휘어감을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넌출들은 아무 것도 감을 것이 없자 구부러진 손가락 같은 모양으로 허공을 감아쥐고 있다. 어떤 넌출들은 아스콘으로 포장되어 있는 길바닥을 가로질러 실뱀처럼 건너편 풀밭으로 기어가고 있다. 그 집념이 무섭기조차 하다. 나는 칡넌출들을 피해 요리조리 걸어간다.

칡은 무시무시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칡은 땅 속 깊이 뿌리박고 있으면서 지표면으로 나와 길게 넌출을 내뻗어 손에 잡히는 무엇이 있으면 그것을 휘어 감고 기어오른다. 칡은 땅 속에서 바깥 세상으로 손을 내뻗기 전 팔을 뻗어 나가면 무엇인가 감을 것이 있으며 그 감을 것에 의지해 살게 될 것임을 애초에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구부러진 넌출손을 하고 나와 무엇인가를 감으려고 허공을 더듬고 있는 것이리라.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수만 년 후 세상에 인류가 사라진 후의 모습을 그린 영상을 보았는데 칡은 대단한 생명력을 발휘하여 인간이 건설한 문명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칡넌출은 뉴욕 맨해튼의 마천루들을 기어 올라가 그 거대한 인류문명의 상징인 빌딩들을 휘감고 있었다. 정말 그 언젠가는 칡이 지구의 주인이 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나는 무섭게 길바닥으로 기어 올라오는 칡넌출들을 보면서 그 넌출들이 허공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마지막 때의 시간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시간을 감고 있는 칡넌출이라니. 그것은 가만 두면 감을 수 있는 것은 다 감아 조여 가지고 종당엔 칡세상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땅 속에서 기어 나온 식물공룡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 이 칡이란 놈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특이한 식물이다.

그런데 며칠 후 산책길에는 칡넌출들이 보이지 않았다. 관아에서 인부들을 내보내 다 낫으로 쳐낸 모양이었다. 넌출손이 잘린 칡넌출들은 둔치에서 잘린 손을 휘저으며 ‘소리없는 아우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결국 칡넌출들은 아무 것도 쥐어 보지 못한 채 상처 입은 넌출손을 오므리고 있었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인간을 성가시게 하면 가차없이 숙청당한다. 인간이 주인 노릇하는 지구의 현실이다.

넌출 식물은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다. 담쟁이, 나팔꽃, 박, 능소화, 호박을 포함해서 수많은 식물들이 있다. 다른 것에 의지하여 살도록 운명지어진 넌출 식물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만물은 서로 의지하며 살도록 되어 있다는 것 같은.

어찌 넌출 식물들만일까. 내 모습을 찬찬히 볼작시면 손은 무엇인가를 쥐도록 디자인되어 있고, 발은 땅 위를 걷도록, 눈은 무엇인가를 보도록, 귀는 소리를 듣도록, 입은 무엇인가를 먹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미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 나의 이런 형상 구조에 적합하도록 바깥 세계는 벌써 전에 구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를 세상에 내보낸 그 알 수 없는 자연의 섭리는 이 한 몸이 세상에 의지하여 생존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그러고 보면 나 자신이 어떤 점에서 저 칡과 다름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칡과 나는 꼼짝없이 이 자연의 자녀들인 것이다.

어려운 철학을 들먹이며 존재의 의미를 설할 것도 없으며, 복잡한 사변으로 존재의 목적을 논할 것도 없다. 생김새를 보면 단박에 그 쓰임새를 알 수 있다. 맨 처음 흙으로 만든 인간의 모형에 숨을 불어넣었다는 성서의 구절이 시사한다. 모든 생명은 자연의 산물인 것이다.

나는 세상과 조응, 화합하여 순리대로 살도록 만들어졌고, 그렇게 운명지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와 나는 한 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칡과 내가 한 몸인 것처럼.

산책길에는 개미들이 부지런히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나는 혹여 개미를 밟을까봐 조심스레 걸음을 옮긴다. 함부로 개미를 밟으면 안 될 것 같아서다. 어느 날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생명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건 나만큼이나 소중하다고. 우리는 신비한 자연 섭리가 내놓은 생명으로 짠 그물의 한 코인 것이다.

칡넌출이 보여주는 억센 생명력이 모든 생명체들에게 주어져 있다. 그것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누릴 권리를 갖고 이 땅에 태어났다. 모든 생명의 근원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움으로 여기 섰노라/호수와 같은 그리움으로/이 싸늘한 돌과 돌 사이/얼크러지는 칡넌출 밑에/푸른 숨결은 내 것이로다’(서정주)

이 험한 세상 서로 의지하여 칡넌출 같은 푸른 숨결을 쉬며 살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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