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호남 선비, ‘미암일기’를 남긴 미암 유희춘(2)
길 위의 호남 선비, ‘미암일기’를 남긴 미암 유희춘(2)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07.3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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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542년에 유희춘은 세자시강원 설서에 임명되었다. 그는 세자(훗날 인종, 1515∼1545)를 힘껏 보필하고 인도하는 일을 자기의 소임으로 삼았다. 1)

1543년에 유희춘은 무장현감에 제수되었다. 모친을 봉양하기 위해서 였다. 무장현은 평소에 다스리기 어려운 고을이었는데, 그는 일에 임하여 근면하고 민첩하였으며 몸소 양로연(養老宴)을 베풀고 명목 없는 세금 징수를 폐지하니 온 고을이 한마음으로 따랐다. 이때는 송인수가 전라도 관찰사이고 백인걸이 남평현감이었는데 세 사람이 마음이 맞아 자주 어울렸다.

1544년 11월에 중종께서 승하하고 인종이 즉위했다. 1545년 6월에 유희춘은 대사헌 송인수의 추천으로 홍문관 수찬이 되었다. 그런데 7월에 인종이 재위 8개월 만에 승하하고 11살의 명종이 즉위하자 모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8월에 유희춘은 사간원 정언(司諫院 正言)으로 자리를 옮겼다.

8월 22일에 문정왕후는 윤원형에게 밀지(密旨)를 내려 윤임, 유관, 유인숙 등 대윤 일파를 제거하라고 지시한다. 이 밀지를 받은 이기·임백령·정순붕·허자는 문정왕후에게 변고를 고한다. 윤임 등이 다른 왕자를 임금으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다.

8월 23일에 유희춘 ·백인걸·김난상 등은 부당함을 지적한다. 죄목이 분명하지 않고 밀지에 의해 처리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문정왕후는 크게 노한다. 곧바로 백인걸·유희춘 등 대간 9명은 파직을 당하고 윤임 등은 대역죄로 능지처사된다. 을사사화였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547년 9월에 다시 ‘양재역 벽서사건(‘정미사화’라고도 한다)’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척신 계열인 부제학 정언각이 봉투에 든 글 한 장을 문정왕후에게 올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제 딸이 남편의 임지를 따라 전라도를 가기에 전송하려고 과천현의 양재 역에 갔다가 익명의 벽서를 보았습니다. 이에 봉하여 올립니다.

“여자 임금이 위에서 정권을 잡고 간신 이기(李芑) 등이 아래에서 권력을 농단하고 있으니 나라가 망할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어찌 한심하지 않으리오.”

윤원형 일파는 이 벽서사건을 이용하여 윤임의 잔당세력과 정적들을 일제히 제거한다. 중종의 아들인 봉성군, 윤원형을 탄핵한 송인수, 그리고 이약빙을 사사(賜死)시키고, 이언적, 노수신, 유희춘, 임형수, 백인걸, 정유침(정철의 부친), 권벌 등 수십 명을 귀양 보낸다. (명종실록 1547년 9월 18일) 3)

유희춘은 제주도로 유배를 간다. 그런데 유희춘은 제주도가 고향인 해남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유배지가 함경도 종성으로 바뀐다. (명종실록 1547년 윤 9월4일) 2)

▲ 미암 박물관 내 모현관

1) 한편 하서 김인후는 1543년에 세자 시강원 설서를 하였다.

2) 그런데 이는 음모였다. 윤원형 · 이기 등은 양재역 벽서가 붙기 여러 날 전에 이미 모의를 한 것이다. (명종실록 1547년9월18일의 관련 부분 참조)

“지금 이 서계는 이 벽서(壁書)를 보고서 비로소 서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들이 의논한 지가 여러 날 되었습니다. 당초에 역적의 무리에게 죄를 줄 적에 역모에 가담했던 사람을 파직도 시키고 부처(付處)도 시켜서 모두 가벼운 쪽으로 하여 법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론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3) 명종실록 1547년(명종 2년) 윤9월4일

양사에서 이완의 사사와 유희춘 등의 원방 부처를 건의하다

양사가 이완(李岏)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유희춘(柳希春)은 윤임 등의 일을 자세히 듣고서도 합사(合司)하는 날에 거짓으로 알지 못한다고 하며 장관의 의논에 따르지 아니하여 거의 사기(事機)를 놓칠 뻔하게 하였으므로 먼 섬으로 안치했습니다만, 제주는 고향과의 거리가 멀지 않으니 지극히 온편치 않습니다. 먼 변방으로 옮기게 하소서. 권벌(權橃)은 ... 성주목사) 이윤경은 ...훈적에서 삭제하여 파출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유희춘·권벌·권응창 등의 일은 이미 결정한 지가 오래이니, 고칠 필요가 없다. ..." 유희춘·권벌·권응창의 일은 다시 아뢰니 윤허하였고, 이윤경의 일은 윤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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