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짱이와 개미의 시급
베짱이와 개미의 시급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7.07.2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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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베짱이와 개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교양받고 자란 탓인지 잠시라도 놀고 있으면 괜히 무슨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다.

베짱이는 정말 아무 일도 안하고 개미가 열심히 일하는 동안 게으름을 피운 것일까. 그래서 겨울이면 개미한테 식량을 얻으러 가는 것일까. 원 천만의 말씀이다. 그 이야기는 아주 잘못되었다.

베짱이는 즐겁게 자기 재능을 살려서 노래를 부르며 삶을 산다. 개미처럼 죽을 둥 살 둥 뼈빠지게 일하지 않고도 박수갈채를 받으며 산다. 베짱이는 예술활동을 통해서 자기들 세계에서 훌륭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뿐 아니라 많은 팬을 거느리고 화려하게 당당하게 사는 점에서 볼 때 비난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벌이로 따지면 아마도 개미보다 베짱이의 수입이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방송이나 TV에 나와서 하나마나한 흰 소리를 떠드는 사람들이 농사꾼보다 어마무시한 출연료를 받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개미편이 되려고 한다. 어떻게 된 노릇일까.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들었다. 여기서 일이라는 것은 아마도 육체노동을 말하는 것이지 싶다. 농경사회에서 노동의 신성을 강조한 말일 터이다. 한데 현대 사회는 육체노동은 대부분 3D로 치부하고 그런 일은 웬만하면 잘 하려들지 않는다.

전국 공사장의 일꾼들은 거개가 중국 조선족이거나 동남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막노동을 마치 해서는 안 될 일로 치부한다. 같은 육체노동일지라도 자동차나 선박 같은 너트를 죄고 땜질을 하는 노동자들은 연봉 1억 가까이 받을 정도로 비싸게 취급받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1억도 적다고 파업을 하는 것을 볼 때, 도대체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정보통신 사회에서는 육체노동보다는 머리를 쓰는 지식노동이 더 전망도 좋고, 벌이도 좋고, 선호도도 높다. 뼈빠지게 일 하지 않고도 벌이는 더 좋은 일이라니. 그렇지만 나의 고정관념은 노동의 가치는 평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농촌 출신이라서 그런지 입에 들어오는 먹을거리 생산이 가장 신성한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벌이가 시원치 않더라도 먹을거리 생산이 노동의 첫째가는 가치라고 믿고 싶다. 정보통신이 굶주린 배를 채워주지 않는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생전에 밥상에 구운 조기가 올라오면 ‘어부들이 목숨을 걸고 잡아온 것이니 귀하게 알고 먹어라’고 가르침을 주셨다. 지금도 나는 구운 조기 한 마리를 먹고 나면 찌꺼기를 엄지손가락만큼도 남기지 않는다. ‘목숨 걸고 잡은 고기’를 대충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농산물, 수산물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의 수고로움을 떠올리면 나는 그 생산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의 가치는 평평해야 한다는 것은 관념에 불과하고 실제는 기울어져 있다. 이것이 되게 불만이다. 어떤 탤런트는 드라마에 얼굴 한번 비치는 데 몇 천만원을 받기도 한다.

오늘날 도시인들은 먹을거리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잘 모른다. 그러면서 ‘쌀값이 싸다’고 쉽게 말한다. 그 이면에는 농사꾼에 대한 사회적 자리매김이 은연중에 감추어져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하기 전에는 택시 운전수가 대학교수의 월급과 비슷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시급을 대폭 올렸다. 그것도 잘한 일이지만 노동임금의 직군별 격차를 좁히는 노력도 병행해야 노동의 가치가 평평해진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햄버거 뒤집는 사람이나 회계사의 연봉이 엇비슷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공기업 사장의 연봉은 천문학적이다. 국회의원 연봉도 엄청 많다. 노동의 가치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불공정을 시정해야 한다. 진짜 가장 큰 적폐는 지나친 임금격차다.

매일 출퇴근 시간에 도로를 꽉 메우는 차량 행렬을 보고 있으면 대체 저 많은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사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내 입 안에 들어오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데 물방개처럼 이리저리 바삐 돌아다닌다.

그 사람들 중에서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노동의 강도, 위험, 숙련도가 높은 노동자에게는 ‘회전의자에서 펜대를 굴리는 사람’ 못지않게 대우해 주었으면 한다. 베짱이도 개미도 그들의 노동의 가치가 지나친 임금 격차로 차별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시급을 올린 새 정부의 건곤일척을 두고 말이 많다. 저임금 인상도 중요하지만 지나친 임금격차의 해소 노력도 필요하다. 먼저 공직자, 전문직의 임금에 대해서 상한선을 그어놓고 서민 임금과의 격차를 좁힐 필요가 있다. 은퇴한 고위 공직자가 한  달에 수천만원씩 자문료를 받는다면 이것은 우리 국민의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에 진배없다.  

일본은 잘 사는 사람의 수입이 못 사는 사람의 그것보다 평균 임금이 4배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4.8배가 넘는다고 한다. 새 정부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섰으니 이런 면을 두루 살펴서 노동가치를 평평하게 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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