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조국의 새벽 별로 빛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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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구 기자
  • 승인 2017.07.2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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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노준현 동지 17주기 추모식 열려
▲ 고 노준현 동지의 17주기 추모식이 22일 오전 11시 5.18국립민주묘지에서 열렸다.

[시민의소리=박용구 기자] 억압과 탐욕의 불의한 시대에 맞서 평등과 평화의 세상을 꿈꿨던 민주운동가 故 노준현 동지 17주기 추모식이 22일 오전 11시 국립5.18민주묘역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노준현 동지의 누나인 노영숙 오월어머니집 관장을 비롯해 선후배동료 등 50여명이 함께 했다.

노준현 동지는 1956년 광주 북구 신용동에서 태어났다. 광주일고 재학시절, 그는 학습동아리에 가입하여 민주화운동에 첫발을 들였다.

1975년 3월에 전남대 화공과에 입학하여 1976년 민청학련 김상윤, 故 윤상원, 故 김남주 선배들을 만나 사학과 일본어 학습 및 전남대 기독학생회에서 활동했다.

1978년 6월 29일 전남대 교수들의 ‘6.27민주교육지표선언’이 일어나자 민청학련 이후 전남대 최초로 대규모 반유신 투쟁을 주도하다 현장에서 체포되어 구속되었고,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979년 8.15특사로 석방된 이후 1980년 3월 전남대 민주화운동 관련자 38명과 함께 복적생협의회를 결성했고, 그해 4월 박관현 총학생회에서 기획위원으로 참여해 민주화성회를 주도했다. 그러다 사전수배령이 내려져 도피하던 중, 7월 계엄사 합수부에 체포되어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985년 9월에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출간 작업에 관여했고, 1987년 6월항쟁을 전후한 시기에 그는 전청련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등 현장에도 항상 함께했다.

1991년에 도서출판 금강을 만들어 만드는 족족 금서가 되거나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후배들의 이념서적 출판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운동과 생활의 통일을 지향하면서도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던 노준현 동지는 불의한 시대를 가슴으로 아파하다 2000년 7월 25일 새벽 2시 50분 긴급조치 9호위반으로 복역 중 발생한 B형 간염의 악화로 영면했다.

민청학련의 동지였던 최철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지도위원은 추모사에서 “고인이 가신지 어느덧 17년이 되었다.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고인의 뜻을 되새기고, 우리들의 삶에 재현하자”고 당부했다.

노영숙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유족인사에서 “준현이는 모질지 않았는데 오늘 날씨는 왜 이리 모질게 더운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인사한 뒤, “남은 동지들이 조국을 위해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지키는데 끝까지 함께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이어 참배 및 헌화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한편, 광주지법은 2013년 2월 5일 故 노준현의 긴급조치9호위반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이를 확정했다.

▲ 고 노준현 동지의 유족들과 선후배동료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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