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38) 제승축(題僧軸)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38) 제승축(題僧軸)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07.1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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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울너울 산 노을로 아침밥을 지어 먹고

양녕대군과 충녕대군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고 주변 서적에서 주워 담는다. 훗날 세종성군이 된 충녕대군에게 임금 자리를 양보하려는 속셈이었음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진심 내막은 그렇지 않았다. 임금의 재목이 되지 못한 행위를 했기 때문이라는 게 후세의 이야기다. 양녕은 그랬다.

예술적 재질을 타고난 그는 궁중의 생활이 싫었다. 그래서 눈치를 보는 그런 생활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노래와 그림, 그리고 시를 지으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題僧軸(제승축) / 양녕대군 이제

노을로 불을 때서 아침밥 지어먹고

담장이 비친 넝쿨 등불을 삼았는데

한 층만 남은 석탑에 지켜낸 이 누구요.

山霞朝作飯          蘿月夜爲燈

산하조작반          라월야위등

獨宿孤庵下          惟存塔一層

독숙고암하          유존탑일층

 

너울너울 산 노을로 아침밥을 지어 먹고(題僧軸)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양녕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1394~1462)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너울너울 산 노을로 아침밥을 지어 먹고 / 담장이 넝쿨에 비친 달로 등불을 삼았었네 // 외로운 암자 아래에서 홀로 깊은 잠에 취해 자는데 / 오직 한 층만이 외롭게 남아 있는 저 탑은]이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스님의 두루마리를 보면서]로 번역된다. 시인은 태종의 뒤를 이어 옥좌를 거머쥐어야 할 막강한 자리에 있었지만, 자연과 세상을 더불어 하며 살고 싶어 했던 작자였기에 시문의 속살을 벗길 듯해진다. 스님이 입고 있는 두루마리를 보면서 시상을 일으켰던 것이 시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다.

너울너울 넘어가는 산 노을로 아침밥을 지어 먹었더니 배고픔이란 1차적인 시름 하나는 덜었다. 그러나 창가에 비친 달빛이 아니라, 담장이 넝쿨이 비친 달빛을 등불로 삼아서 책을 읽었으니, 2차적인 자기실현의 욕구를 충족했을 것이다. 시인은 더 바랄 것이 없어 보인다.

화자의 눈에 비치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이었다. 그 아름다움을 놓치기 싫었을 것인 즉 이런 정경을 배경 삼아 외로운 암자 아래서 잠을 자는 또 다른 외로운 대상을 발견한다. 오직 한적하게 한 층만이 남아있는 석탑을 보면서 절정에 도달하는 시상을 품에 안았기 때문이다. 한 층만이 남아 있는 석탑은 아마 화자 자신이었을 것이다. 오직 둥실 떠 있는 외로운 달과 더불어…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산 노을로 아침밥을 담장 넝쿨 등불 삼아, 암자 아래 잠이 취해 오직 한 층 저 탑만은’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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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양녕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1394~1462)로 조선 전기의 왕족이다. 태종 이방원의 장남이며 세종의 형이다.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다. 1404년(태종 4) 10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다. 1406년 태종이 어린 세자에게 양위의 뜻을 밝히자 어린 시절부터 정치적 파장을 겪었다.

【한자와 어구】

山霞: 산 노을. 朝: 아침. 作飯: 밥을 짓다. 아침밥을 하다. 蘿: 담쟁이. 月夜: 달밤. 爲燈: 등을 삼다. 등불로 여기다. 爲: ‘~을 삼다’는 뜻임 // 獨宿: 홀로 자다. 孤庵下: 외로운 암자 아래에서. 곧 앞의 [獨]과 [孤]는 외롭다는 뜻을 더하고 있다. 惟: 오직. 存: ~이 있다. 塔一層: 탑 한 층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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