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춤춘다
정치는 춤춘다
  • 김병욱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17.07.1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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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욱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

1960년대 영국노동당 당수였던 베반이 ‘의회는 춤춘다’라고 비꼬아 말했다. 당시 영국 국회가 아무 결정도 못하고 ‘앞으로 한발, 뒤로 한발, 좌로 한발, 우로 한발 결국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정국의 행태를 비꼰 말이다.

대선이 끝난 지 2달이 지났건만 인사 청문회를 놓고 여야가 답보만 하고 있는 꼴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총선도 동시에 치러 새출발을 했어야 했다. 이런 발목 잡는 정치 행태가 계속된다면 다음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은 50여석, 국민의 당은 10석, 바른 정당은 5석 미만으로 의석수가 대폭 줄어들 것이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자화상인가. 이럴 때 만해 한용운의 시 「산거(山居)」처럼 깊은 산중에 살고 싶다. 무더위도 식힐 겸해서 짧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산거」를 감상해 보자.

 

티끌 세상을 떠나면

모든 것을 잊는다 하기에

산을 깎아 집을 짓고

돌을 뚫어 새암을 팠다.

구름은 손인양 하여

스스로 왔다 스스로 가고

달은 파수꾼도 아니언만

밤을 새워 문을 지킨다.

새소리를 노래라 하고

솔 바람을 거문고라 하는 것은

옛 사람을 두고 쓰는 말이다.

 

님 기루어 잠 못 이루는

오고 가지 않는 근심은

오직 작은 벼개가 알 뿐이다.

 

공산(空山)의 적막(寂寞)이여,

어대서 한가한 근심을 가져오는가.

차라리 두견성(杜鵑聲)도 없이,

고요히 근심을 가져오는

오오, 공산(空山)의 적막(寂寞)이여.

(조선일보 1936년 3월 27일)

이 시는 3연 19행에 불과한 짧은 시이지만 많은 뜻을 담고 있다. 나는 이 시를 가지고 1998년에 ‘한용운의 「산거」라는 제목으로 원고지 50매 분량의 소논문을 쓴 적이 있다. 캐나다의 오타와대에서 문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피터 J. 맥코믹은(Peter J. McComick)은 그의 역저 「허구, 철학 그리고 시학의 제문제」(1988,코넬대 출판부)의 서론에 「산거」를 인용하여 문학과 철학의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사실 이 시기에 많은 지식인, 문인들이 친일 행각을 하기 시작한다. 만해는 그러한 세태가 싫어서 성북동 산골에 조그만 집을 북향으로 앉혀 짓고 당시 총독부 건물이 보일세라 그 쪽으로는 창문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시의 핵심은 “오오 공산의 적막이여”라고 한 피맺힌 절규에 있다. 적막강산에 홀로 버려진 시적 서술자의 처지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시는 압축, 압축해서 뜻을 전한다. 이 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될 것이다. 이 시대의 답답한 심정의 토로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이 시를 통하여 우리는 현실에서 멀리 도피하여 살고 싶은 욕망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산중으로 도피한다 해도 우리의 마음에 응어리져 맺힌 것들을 다 털어버릴 수는 없다.

춤추는 정치를 떨쳐버릴 수 없기에 답답한 가슴 억제할 수 없다. 오기로 일어서려는 자는 그 오기로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꼬리나 잡고 몽니를 부리는 것이 우리 정치의 자화상인가. 작년 10월부터 타올라 매서운 겨울을 이겨낸 ‘촛불의 정신’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구태의연한 정치인은 각성하기 바란다, 정치는 바람이다. 천하의 가을이 오동잎이 한 잎 떨어지는 것에서 비롯되듯이 오늘 기고만장한 물정모르는 정치인은 3년 후에 낙엽처럼 대지위에 나뒹굴 것이다. 어디 두고 보자. 그대들의 운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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