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역사를 만나다(21)-탁영로
길 위에서 역사를 만나다(21)-탁영로
  • 박용구 기자
  • 승인 2017.06.2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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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암사에서 탁영 김일손을 모시고 있어”란 이유는 아무래도 궁색
광주의 역사인물도로명으로는 어울리지 않아 개명 요구도
▲ 탁영로는 조선시대 사림파(士林派)의 대표적 인물인 탁영 김일손의 호를 따서 명명된 도로다. 길이는 424m에 불과한 짧은 도로로 2009년 11월 광주광역시 북구청장이 고시했다. 도로의 끝지점인 삼정초에서 내려다 본 탁영로 모습.

[시민의소리=박용구 기자] 광주의 역사인물도로명이 다 잘 지어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생뚱맞다고 여겨지는 도로명이 하나 있다. 바로 탁영로다. 이유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과 이 지역과의 연관성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도로명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탁영로는 조선시대 사림파(士林派)의 대표적 인물인 탁영 김일손의 호를 따서 명명된 도로다. 길이는 424m에 불과한 짧은 도로로 2009년 11월 광주광역시 북구청장이 고시했다.

탁영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또는 소미산인(少微山人)이라 불린다. 탁영의 할아버지는 김극일(金克一)이고, 아버지는 집의(執義) 김맹(金孟)이며, 어머니는 이 씨이다. 대대로 경상북도 청도에서 살았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에 가면 탁영종택이 있는데 경상북도의 기념물 제16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를 통해 탁영이 광주 출신도 아닌데다가 여기서 살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탁영은 경상북도 청도 사람...광주에서 산 적 없어

탁영 김일손은 1486년(성종 17) 생원에 수석으로 합격하면서 관직에 나갔다. 처음 승문원에 들어가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로, 곧 정자(正字)로서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했다. 이후 진주의 교수(敎授)로 나갔다가 곧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가 운계정사(雲溪精舍)를 열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 시기에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 들어가 평생 사사하였으며, 정여창(鄭汝昌)·강혼(姜渾) 등과 깊이 교유하였다.

김종직의 문인 중에는 김굉필(金宏弼)·정여창 등과 같이 ‘수기(修己: 자기 자신을 닦으면서 수양함)’를 지향하는 계열과, 사장(詞章)을 중시하면서 ‘치인(治人: 남을 다스리는 정치)’을 지향하는 계열이 있었는데, 탁영은 후자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다시 벼슬길에 들어선 탁영은 승정원의 주서(注書), 홍문관의 박사·부수찬(副修撰), 전적(典籍)·장령(掌令)·정언(正言) 등을 지냈으며, 다시 홍문관의 수찬을 거쳐 병조좌랑·이조좌랑이 되었다. 그 뒤 홍문관의 부교리(副校理)·교리 및 헌납(獻納)·이조정랑 등을 지냈다.

관직에 있는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사가독서(賜暇讀書: 재능이 있는 문신들에게 문흥을 위해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하게 한 제도)를 하여 학문과 문장의 깊이를 다졌다. 또 주로 언관(言官)에 재직하면서 문종의 비인 현덕왕후(顯德王后)의 소릉(昭陵)을 복위하라는 과감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훈구파의 불의·부패 및 ‘권귀화(權貴化: 권세가 있는 귀족으로 됨)’를 공격하고 사림파의 중앙 정계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조의제문(弔義帝文)의 사초화(史草化)로 무오사화 때 처형당해

그 결과 탁영은 1498년(연산군 4) 유자광(柳子光)·이극돈(李克墩) 등 훈구파가 일으킨 무오사화에서 조의제문(弔義帝文)의 사초화(史草化) 및 소릉 복위 상소 등으로 인해 처형을 당했다.

조의제문(弔義帝文)의 사초화(史草化)는 세조의 즉위 사실 자체와 그로 인해 배출된 공신의 존재 명분을 간접적으로 부정한 것으로써, 당시로서는 극히 모험적인 일이었다. 이 같은 일련의 일들이 사림파의 잠정적인 세력을 잃게 한 표면적인 원인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그 뒤 중종반정으로 복관되고, 중종 때 직제학(直提學), 현종 때 도승지, 순조 때 이조판서로 각각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탁영집(濯纓集)』이 있으며, 「회로당기(會老堂記)」, 「속두류록(續頭流錄」 등 26편이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수록되어 있다. 자계서원(紫溪書院)과 도동서원(道東書院), 두암사(斗巖祠) 등에 제향되었다.

탁영에 대한 이와 같은 역사적 기록을 통해서 그가 훈구파를 견제하고 사림파를 등용하는 일에 앞장섰고, 무오사화 때 처형을 당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지만, 광주에 기여한 바는 아무 것도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김해김씨 문중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닌지 의심도

따라서 어떻게 탁영이 도로명으로 고시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일각에서 김해김씨 문중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에 대해 북구청 관계자는 “두암동에 있는 장열사(壯烈祠) 옆에 두암사(斗巖祠)란 사우가 있는데, 이곳에 김해김씨 후손인 김목경(金牧卿), 김일손(金馹孫), 김광립(金光立)의 삼위가 모셔져 있다”면서 “이 중 김일손의 호를 따 명명한 것이다”고 이름 지은 배경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탁영이 이 지역과 어떠한 관련이 있으며, 혹여 공헌한 바가 있냐는 질문에 그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참고로 장열사(壯烈祠)는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에 있는 사당으로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의 장군 김유신(金庾信, 595~673)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본래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 김일손(金馹孫, 1464~1498)과 인조 때 안주목사와 황주목사를 지낸 망헌(望軒) 김광립(金光立)도 함께 배향(配享)하고 있었으나, 김일손과 김광립은 두암사(斗岩祠)로 옮겨지고 현재는 김유신만을 배향하고 있다.

“특정 문중의 조상 도로명으로 한 것은 문제...바로잡을 필요 있다”

이에 대해 노성태 국제고 교사는 “지역과 연관성이 없는 인물을 당시 어떤 의도로 북구 도로명심의위원회에서 의결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주민들과 소통도 없이 특정 문중의 조상을 도로명으로 한 것은 문제가 있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광주와 아무런 연관도 없고, 공헌한 바도 없는 김일손의 호를 따 이름 지어진 탁영로는 백림약국에서 각화동을 연결하는 군왕로 중간쯤에서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두암중학교와 삼정초등학교를 만날 수 있는데, 바로 이 길이 탁영로다. 400여m를 달려온 탁영로는 삼정로와 만나면서 끝이난다. 

▲ 탁영로는 백림약국에서 각화동을 연결하는 군왕로 중간쯤에서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두암중학교와 삼정초등학교를 만날 수 있는데, 바로 이 도로가 탁영로다. 사진은 탁영로 시작점의 안내판 모습.

현재는 상가들과 앞서 언급한 두 개의 학교가 있어 별다른 특징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탁영로에 대해 설명해주는 안내판도 하나 없다.

다만 예전 삼정골이었던 이곳에서는 밭농사와 포도농사를 많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삼정골은 군왕봉 인근의 한 지명이다. 삼정골은 군왕봉 기슭에 흐르는 솔내가 수구혈이 되어 예부터 세 정승이 나온다 하여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삼정초등학교도 여기에서 이름을 따왔다.

▲ 탁영로에 위치한 삼정초는 1993년 5월 20학급으로 개교했으나 지금은 총원이 94명으로 줄어 통폐합될 위기에 처해 있다.
▲ 학교와 인근 아파트 담벼락엔 삼정초 폐교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삼정초는 1993년 5월 20학급으로 개교했으나 지금은 총원이 94명으로 줄어 통폐합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인지 학교와 인근 아파트 담벼락엔 이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또 회고해보면 이곳에 자동차운전면허시험장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운전면허를 따려는 사람들로 꽤 붐볐었다. 현재는 그 자리를 중흥S클래식아파트가 대신하고 있다.

탁영로 중간쯤엔 지어진지 34년이 된 가스충전소가 하나 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주유하러 들른 택시들이 꽤 많았다. 그곳에 간이휴게실이 마련되어 있어 택시기사들과 탁영로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눠봤다.

탁영로를 모르는데 김일손을 누가 알까...개명 고민 필요

대여섯 분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주유소를 품고 있는 이 길이 탁영로라고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탁영로라는 사실도 모르는데 탁영 김일손이 누구인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운전경력이 50년이 되었다는 김모(70) 씨는 “옛 주소와 도로명 주소가 혼용되어 쓰이면서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여기도 손님들이 가스충전소, 두암중, 삼정초로 가자고 하면 알지 탁영로 가자고 하면 모른다. 아마 아는 기사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광주 북구청에서는 이러한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생뚱맞은 탁영로의 개명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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