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35) 하일(夏日)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35) 하일(夏日)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06.2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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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으로 기와와 돌조각일랑 던지지 마소

자연을 아끼는 것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다. 새들이 깃을 털고 편히 쉴 수 있는 새집을 만들어 주는 일, 산란기가 되면 행여 새가 새끼를 치는데 지장을 주지나 않을까 조심스럽게 했던 것도 다 같은 맥락이었으리라. 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의 봉건주의 사회에서 석류는 다산과 아들을 상징했었다 한다. 석류의 꽃 봉우리, 열매, 씨앗, 석류화 등은 이와 관련이 깊다. 석류가 붉어지는 계절에 꾀꼬리가 쉬고 있으니 조심해야 된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夏日(하일) / 삼의당 김씨

창밖에 날 길고 향기로운 바람 불고

석류화 어찌하여 하나씩 붉게 필까

와석을 던지지 말게 꾀꼬리가 놀라겠네.

日長窓外有薰風      安石榴花個個紅

일장창외유훈풍      안석류화개개홍

莫向門前投瓦石      黃鳥只在綠陰中

막향문전투와석      황조지재녹음중

 

문 앞으로 기와와 돌조각일랑 던지지 마소(夏日)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삼의당(三宜堂) 김씨(金氏:1769~1823)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날은 길고 창밖엔 향기로운 바람이 부네 / 어찌하여 석류화는 하나씩 붉게 피고 있는가 // 문 앞으로 기와와 돌조각일랑 던지지 마소 / 지금 녹음 속에는 꾀꼬리가 있어 잠을 깰테니]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어느 여름 날]로 번역된다. 삼의당과 남편인 하립은 남원 출신으로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났다고 한다. 두 사람의 집안은 존경받는 학자 집안이었으나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데다가, 남편이 번번이 과거에 낙방하자 서른 살이 넘어서 낙향하였다. 부부는 전북 진안에 땅을 마련하여 시문으로 화답하며 살았다고 한다.

시인은 평생을 유교적인 규율과 부도(婦道)를 지키며 일생을 마쳤다. 해가 긴 여름날 시인이 거처하는 시골집 작은 창으로 훈풍이 불었다. 석류는 껍질 속에 알맹이가 많은 과일이기에 다산(多産)으로 아들 생산을 상징한다. 민화의 소재로 즐겨 다뤄지는 석류 꽃봉오리는 사내아기의 고추를, 열매는 사내아이의 음낭을, 보석같이 많은 씨앗들은 아들을 상징하기 때문에 석류 그림은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다.

화자의 시 속에서 한 포기 풀도 한 마리의 새도 아끼는 화자의 모습을 본다. 문 앞으로 기와와 돌조각일랑 던지지 마시게, 지금 녹음 속에는 꾀꼬리가 있어 잠을 깰 테니까라고 했다. 사람이 자연 속에 살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그래서 자연을 많이 아낀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창밖에는 바람 불고 석류화는 붉게 피고, 기와 돌 던지지 마소 꾀꼬리가 잠 깰 테니’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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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삼의당 김씨(三宜堂 金氏:1769∼1823)로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이다. 연산군 시대의 학자 김일손의 후손인 김인혁의 딸로 때어났다. 영락한 가문에서 출생하였으며 여자가 지켜야 할 내칙과 경서를 두루 섭렵하며 시문에 남다른 재주를 보여 상당한 시문과 산문을 남기었다.

【한자와 어구】

日長: 날이 길다. 窓外: 창 밖. 有薰風: 향기로운 바람이 불다. 安: 어찌하여(부사로 쓰임). 石榴花: 석류화. 個個: 낱낱이. 紅: 붉다. // 莫: ~하지 말라. 向門前: 문 앞을 향해. 投: 던지다. 瓦石: 기와와 돌. 黃鳥: 꾀꼬리, 누런 꾀꼬리. 只在: 있다, 다만 지금 있다. 綠陰中: (새들이) 녹음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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