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의 5월운동 민중가요, 55곡 탄생비화
30년의 5월운동 민중가요, 55곡 탄생비화
  • 류승희 시민기자
  • 승인 2017.06.2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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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솔아 푸르른 솔아·애국가 등 값진 기록
‘그래도 우리는 노래한다’ 출간

“사노라면~ 언젠가는~좋은 날도 오겠지~”

현실의 고단한 삶과 정서가 구체적인 단어로 표현되어 있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실어만든 노래 <사노라면>이다.

60년대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불렀던 노래가 구전으로 70~80년대 대학생들에게 전해지면서 길게 사랑을 받았던 이 <사노라면>이 원래 대중가요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사노라면>은 1966년 쟈니 리의 독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로 원제목은 <내일은 해가 뜬다>이다. 김문웅이 가사를 쓰고 유명한 길옥윤이 작곡한 곡으로 이듬해 박정희 정권이 ‘현실 부정적’이란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 대중가요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5·18과 관련된 음악작품, 참여음악, 민중가요 등을 연구해온 정유하 박사(전남대 5·18연구소 전임연구원)가 지난 1960~1970년 대학안팎에서 불렀던 노래와 1980년 5·18현장에서 불렀던 노래, 그리고 1980년 이후 5월운동의 과정에서 불렀던 민중가요 55곡을 모아 『그래도 우리는 노래한다』(한울)를 펴냈다.

정박사는 노래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노래의 탄생 배경, 그리고 노래를 부르게 된 경위나 장소 등을 조사하여 기록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오기 전 각종 설문조사에서 대학생들 최고의 애창곡으로 자리 잡았던 <아침이슬>의 일화다.

1971년 양희은이 낸 독집음반에 수록된 <아침이슬>은 1975년 금지곡으로 지정되었으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대학생과 지식인 사이에서 애창곡으로 남았다.

“태양은 묘지위에…나의 시련…나 이제 가노라”등의 가사는 <하얀손수건> <웨딩케익> <축제의 노래>등 외국번안곡이 대세를 이루던 당시 젊은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래서 가사의 배경을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정박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민기는 가난한 미대생이었을 때, 고된 하루 일과 끝에 긴 밤을 지새워 술을 마시다가 필름이 끊기고 잠이 들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돈암동 야산의 공동묘지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그대로 시적으로 다듬어져 가사가 되었으며 당시의 느낌을 덧붙였을 뿐이라고 했다.

1989년 10월 출시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 앨범의 첫 곡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였다. 1989년12월21일자 ‘한겨레신문’은 “MBC ‘푸른신호등’에서 전대협의장 임종석이 경찰에 잡혔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틀었다”는 기사를 실었다.

노태우 정권 시절 민중가요가 공중파를 타고 세상으로 나가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만큼 인기곡이었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1986년 연세대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를 위해 안치환이 작곡한 곡이다.

이밖에 1980년 5·18당시 시민들이 <애국가>를 불렀던 이유, 1988년 전남대 5월 문학상 수상자 박용주(전남 고흥중 2년)의 시를 박문옥이 작곡한 <목련이 진들> 등 많은 노래들이 악보와 함께 실려있다.

정유하 박사는 서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5월의 노래들은 이제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으며 잊혀가고 있다”면서“이 책은 목숨 걸고 벌였던 노래운동의 역사가 사라질까 걱정하여 기록한 부분들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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