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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멋을 찾아서(35) 광주시무형문화재 제20호 김기복 나전칠장나전칠장, 무지갯빛 자개와 옷칠의 만남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 분야 외길 인생
김다이 기자  |  -08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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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2  18: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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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남구 서동의 주택단지에 위치한 김기복 나전칠장의 작업실. 광주무형문화제 제20호 기능보유자 김기복 나전칠장은 최근 건강 쇠약으로 잠시 작업을 중단하고 있다는 소식에 걱정스러운 마음을 갖고 작업실을 방문했다.

1940년에 태어난 김기복 나전칠장은 올해 78세다. 연로한 나이로 거동이 불편해진 탓에 지팡이에 의지하며 걸어야 하지만, 나전칠기 장인 중에 장인으로 뒤따라올 사람이 없다.

여전히 자신의 반평생을 훌쩍 넘긴 60여년의 세월동안 손에서 나전칠기를 떼지 못하고 있다. 김기복 나전칠장이 쓴 검정색 빵모자는 그의 장인 정신을 대변해주는 듯 머리와 한 몸이다.

   
 
   
 

나전칠기 본고장 통영에서 광주로 오기까지

나전칠기란 옻칠을 한 표면에 자개 등을 이용해 문양을 만들어 붙인 공예품으로 무지갯빛 오색영롱한 자연색과 은은한 광택이 잘 조화된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공예품이다.

경남 통영이 고향인 그는 62년 전 16세의 어린나이에 나전칠기 기능을 익히기 시작했다. 평소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나전칠기공예 기술학교에 들어가면서 나전칠기와 평생의 길을 걷게 됐다.

“그때 당시에는 올바른 직업도 없었고, 나전칠기를 배우면서 ‘큰 기술이다’ 생각하면서 배웠었지, 한 번도 다른 쪽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 평생 이 길만 걸어온 것을 후회해본 적도 없어”

김기복 나전칠장의 자부심은 그의 작품을 보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전칠기로 외길인생을 걸어온 그는 다른 기능장과는 달라도 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원래 나전칠기는 경남 통영이 본고장이다. 전국에서도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은 통영의 나전칠기는 4백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고, 김기복 나전칠장은 고향 통영에서 기능을 배워 19세의 나이에 광주로 오게 됐다.

광주에 있었던 대한공예사에서 기술자를 보내달라는 요청에 의해 아무런 연고도 없었던 이곳에 덜컥 오게 됐다.

“재미난 이야기 하나 해줄까? 처음 광주에 왔을 때 말이야. 광주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 바가지를 엄청나게 씌운다는 말이 있었어. 그래서 처음에는 연고도 없는데 무지 고생했었지. 칫솔, 치약을 사러 점방에 갔는데 경상도 사투리를 안 쓸려고 벙어리인척까지 했었어.(웃음)”

   
 
   
 

우리나라 나전칠기 기술, 일본으로 건너가 앞서나간 것 안타까워

김기복 나전칠장은 60여 년 동안 광주에서 지내면서 이제 완전한 광주사람이 다됐다. 고향도 광주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대한공예사에서 지내면서 3년 동안 공장장까지 맡아서 지내기도 했다.

나전칠기도 호황기가 있었다. 당시 나전칠기는 경제 발전에 상당한 이바지를 했다고 한다. 80년대 광주에서만 300곳이 넘는 공장이 있었다. 당시 부잣집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자개농, 나전칠기 등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찍어냈다.

김기복 나전칠장은 “우리 전통 공예를 발전시켜야 하는데 공장에서 그렇게 물건을 쏟아내면 싸구려를 만들어 내고, 우리 전통을 스스로 파괴하는 길이었다”라며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공장에서는 무조건 많이 생산해 내라는 식이었다”고 떠올렸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의 나전칠기 기능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훨씬 앞서나가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그는 “일본에 우리 도자기가 넘어갈 때 나전칠기도 함께 넘어갔다”며 “그래서 지금도 나전칠기 용어 중에서는 일본 용어가 굉장히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나전칠장은 “나랑 공방에서 같이 지냈던 작업자들에게는 일본식 용어를 못쓰게 하고 한국말로 바꿔서 이름을 붙여 반죽, 사포질 등으로 바꿔 말하게 했다”며 “이들이 작업을 해놓고 나면 다시 떼라고 빈번히 그런 탓에 과대망상에 걸린 게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일사천리로 밀고 나가야 마음에 든 작품이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전라남도미술대전, 광주시미술대전, 무등미술대전 등 공예공모전이라면 안 가본 곳이 없었고, 상을 안타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많은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나전칠기 ‘건칠’기법으로 기능 능해

김 나전칠장은 자신만의 ‘건칠’기법으로 깨지지도 벌어지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작품을 만들기로 유명하다. 나무에 자개를 붙이는 방식이 아닌 삼베나 무명을 사용해 옻칠을 말려서 하는 기법이다.

그는 “보통 나전칠로 만든 농 등에서 자개가 떨어지면서 흰 가루가 생긴다. 나무는 특히 습기에 엄청 약하다. 햇빛에도 약하다”며 “건칠로 작품을 만들게 되면 수천 년 동안 변형 없이 원형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광주에서는 칠과 먹, 목탄이 많이 생산돼 사적 제375호인 신창동 유적에서 칠기를 생산한 용기와 도구들이 발굴돼 칠공예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기도 했다. 이후 광주시는 2010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나전칠장을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고시했다.

김기복 나전칠장은 나전칠기 기능을 익힌지 50년이 넘어서야 지난 2010년 광주무형문화제 제20호 기능보유자가 됐다. 현재 나전칠장 이수자는 조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최진경 교수다.

김 나전칠장이 오래전 조선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을 때 만난 제자다. 전남 영광출신이었던 제자는 대학교 2학년 학생신분으로 다른 학생들에 비해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나전칠기의 경우 여자가 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남자들도 안하려고 하는 중노동이기 때문이다. 그는 “제자에게 한번 이 길로 쭉 해보라는 제안을 했고, 오고가고 개인지도를 받으면서 지금은 딸이라고 부르면서 지내고 있다”며 “이러한 인연으로 자연스레 이수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전칠기, 제2의 호황기 다가오길 기대

국내에서 유일한 자개는 전복 껍질이다. 우리나라의 전복 껍질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오는 것보다 훨씬 많은 무지갯빛을 띈다고 한다. 나전칠기가 호황기였던 시절 광주에도 재료를 파는 곳이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서울 왕십리에 몰려있다고 한다. 김 나전칠장은 건칠로 제대로 된 작품을 하나씩 만들어 낼 때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고 반색을 하면서 좋아했다.

나전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목수, 나전, 칠 등 각자의 분야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명의 손을 거쳐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김기복 선생은 이 모든 3가지를 배워 한 사람의 손에서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기본 원칙을 지키고 있다.

보통 나전칠기 작품을 하나 만들어내는데 짧게는 한 주 안으로 만들어 낼 수 도 있지만, 김기복 나전칠장의 ‘건칠’ 제작방식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3~4년의 기간이 걸린다고 한다.

김기복 선생은 “정확하게 발라야 뒤틀림이 없고, 원형보존을 할 수 있다. 그것이 제일 어려운 것이다”며 “한 사람의 손을 타서 쭉 작품을 만들어야 된다”고 말했다.

현대화가 되면서 나전칠기의 수요가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계승하고 이어가야할 ‘전통공예’다. 대한민국 최고 인기 공예품으로 사랑받는 제2의 호황기가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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