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사람, 그리고 윤상원을 기억하며
그날, 그 사람, 그리고 윤상원을 기억하며
  • 류승희 시민기자
  • 승인 2017.06.0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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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상 시상식·조지 교수 발제 등 다양한 행사 열려

5·18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37년째다. 해마다 5월 27일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계엄군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손에 카빈소총 한 자루를 쥔 채 도청에서 새벽을 기다리던 그 사람들 말이다.

그날 도청과 YMCA, 전일빌딩, YWCA에는 수백 명의 시민군이 공수부대원들의 무자비한 진압을 예상하고도 광주의 마지막 밤을 지키고 있었다.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를 기억해주십시오.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 라는 한 여성의 호소는 광주의 밤공기를 갈랐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저 밑바닥에서 부터 커가고 있었다.

한홍구의 표현을 빌리면, 26일 도청 등지에 남은 사람들 중에는 죽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이 된 윤상원 같은 지식인 출신도 있었고, 더러 대학생들도 있었지만, 다수가 철가방, 구두닦이, 날품팔이, 용접공, 웨이터, 식당 보이 등 박정희가 ‘똘마니’라고 비하해 부르던 사람들이었다. 그 ‘똘마니’들이 위대한 광주시민으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해마다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지난 27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는 2017년 들불열사 합동추모식 및 12번째 들불상 시상식이 열렸다.

들불상은 1970년대 후반 광주시 광천동 시민아파프 옆 광천동 성당교리실에서 시작된 ‘들불야학’에 참여한 박기순·윤상원·박용준·박관현·신영일·김영철·박효선 등 들불열사의 정신을 기리는 단체나 개인에 수여하는 상으로 올해는 ‘세월호를 추모하는 시민상주모임’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주최측은 시민상주모임을 선정한 이유로, 지난해 박근혜 정권 퇴진운동이라는 시대적 소명에 가장 충실했으며, 현재에도 마을별 모임 등을 통해 세월호 진실규명 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새로운 시민들 간의 자유로운 연대활동을 통해 새로운 활동 양식으로 전환을 만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했다.

5월27일 전남도청 본관 2층 민원실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윤상원열사에 대한 한 외국인의 기억도 관심을 끈다.

조지 카치아피카스(전남대 5·18연구교수·<한국의 민중봉기>저자)는 26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윤상원 기념포럼’발제에서 “윤상원을 마음깊이 기리는 것과는 별개로, 한국민주화운동의 가장 영예로운 장면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고 전제한 뒤 윤상원이 항쟁중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무력진압을 막고 협상을 도와달라고 요청한 점, 미항공모함이 광주시민들을 돕기 위해 온다고 말한 점을 예로들고는 “정말로 윤상원은 미국의 지원을 바랐나?”고 물었다.

조지 교수는 “오늘날 우리는 미국이 자국의 몰염치한 ‘안보이익’을 위해 항공모함까지 파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지난 4월 미국은 북한을 선제타격할 태세를 취했다는 위기설이 있었다”면서“주요 강대국들에 한반도 평화유지는 국가적 이익이 전혀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6월예정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1980년 윤상원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에 한국문제의 해결을 요청할까?”묻고는 “남북한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풀 수 있다고 천명하고 모든 외부세력은 한발 물러서서 한국인들에게 문제해결의 여지를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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