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을 찾아서(34) 광주시무형문화재 제17호 민경숙 남도의례음식장
남도의 멋을 찾아서(34) 광주시무형문화재 제17호 민경숙 남도의례음식장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7.05.30 23: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은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라도 손맛’
사람 일대기의 희노애락 담겨진 의례음식상

우리나라 음식 중에 남도음식은 단연 ‘최고’라고 일컬어진다. 미향이라고 했던가. 맛의 고장인 남도의 음식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오래전부터 남도는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 평야, 해안을 끼고 있는 여러 가지 음식 조리법이 발달했다.

그렇다보니 풍부한 농산물과 수산물을 재료로 만든 음식 맛은 단연 일품이다. 특히 광주지역을 중심으로 남도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남도의례음식은 넉넉한 남도의 인심과 정성이 담겨있어 탄성이 절로 나온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래서 이번 호엔 남도의례음식의 기능을 보유한 장인으로서 광주시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민경숙 남도의례음식장을 만나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집안 대소사 겪어온 환경 속에 익힌 손맛

의례음식상은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희노애락을 담은 상으로 삼신상, 돌상, 성인상, 폐백상, 관례상, 회갑상, 제사상 등이 있고, 화려하지만 그 속에는 엄격한 격식이 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생명을 점지해달라는 삼신상을 차려 순산을 기원하고, 순산 후에는 삼신상에 올렸던 미역과 쌀로 미역국과 밥을 지어 산모에게 먹인다.

또 백일이 되면 하얀 백설기를 상에 올리고, 백사람에게 떡을 돌린다. 아이가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게 되면 폐백과 이바지 음식을 준비한다. 딸 가진 집안에서 시부모님께 잘 부탁한다는 친정어머니의 정성이 깃든 음식이다.

남구 월산동에 위치한 전통 찻집 ‘향연’에서 민경숙 남도의례음식장을 만났다. 인근 주민들에게 차 마시는 장소로 사랑받고 있는 찻집 ‘향연’은 민경숙 선생의 음식연구실이자 전수 교육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1층 공간에 자리했다.

5~6년 전 이곳에 자리를 잡은 그녀는 음식과 사람이 만나는 것만이 잔치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도 잔치라고 여기며 찻집 공간을 마련했다.

‘이바지 음식’이 의례상의 꽃이라고 말하는 민경숙 음식장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할머니가 해오던 음식을 보고 배우면서 음식 장인이 됐다.

1960년 전남 화순 춘양면에서 태어난 민경숙 선생은 1남 6녀에 다섯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집안은 쌀로 풍부하게 농사를 하던 부농이었던 탓에 늘 음식이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큰 집이었던 터라 같이 사는 할아버지는 한학을 했고, 제사 때면 진설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자랐다.

인현왕후, 명성황후를 배출한 여흥 민씨 집안인 터라 집안의 대소사가 잦았고, 늘 집안에 술과 떡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온 민경숙 선생은 어머니 정귀례 씨와 할머니의 음식 솜씨를 그대로 배웠고, 동네사람들에게 음식 베풀기를 좋아하던 심성도 그대로 닮았다.

 

의례 음식상과 끊을 수 없던 운명

민경숙 선생은 전날부터 정성을 들여 준비해온 대추차와 금귤, 연근정 등을 내놓으며 남도의례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민경숙 선생은 “한학을 하시던 할아버지는 제사상은 크게 안차려도 살아있을 때 생일에는 동네사람들과 잔치를 했으면 한다는 말을 늘 어머니께 하셨다”며 “잔치를 하면서 사람들이 웃고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고 떠올렸다.

민 선생은 결혼을 한 이후에도 의례음식에 관한 끈을 끊을 수가 없었다. 집안의 크고 작은 대소사에 규율과 규칙이 분명했던 광산김씨에 시집을 가면서 의례음식 자체와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이렇게 풍부한 전통 음식문화를 가진 양가의 대가족제 속에서 발달한 음식문화를 그녀는 오롯이 전수받았다. 그녀는 전승계보의 큰 스승은 단연 어머니라고 앞세워 말한다.

이후 향토음식 분야를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면서 서울을 오가며 전통음식 강의도 하고, 숱한 음식대전에서 상차림을 선보이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폐백 이바지 전통문화 간소화 되어 아쉬워

그녀의 손은 유독 오밀조밀 작고, 아담하다. 그 작은 손으로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남도음식의 맛을 낸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특히 민경숙 선생의 작은 손결이 스치면 송편에 금이 가지 않고 촉촉하고 먹음직스럽게 빚어진다. 이것은 모두 전라도 사람들의 손맛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찜이나 김치 등의 음식은 약간의 국물을 끼얹어 자박자박 촉촉하게 내어놓아야 보기도 좋고, 맛도 좋다고 한다. 이것도 바로 전라도 음식의 맛이다.

민경숙 선생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의례음식으로 ‘이바지 음식’을 꼽는다. 민 선생은 “결혼을 하기 전 집안 어른들에게 음식을 장만해 첫 인사를 하는 것으로 꼭 지켜야할 전통이라 중요하다고 본다”며 “이제 결혼하는 젊은이들이 폐백, 이바지를 없애거나 간소화 하는 것을 보면 아쉬움이 크다. 화려하고 소비성이 있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전통 의례음식상에 올라가는 음식들은 어느 하나도 의미가 없는 것들이 없다. 제사나 차례상에는 꼭 빠지지 않고 떡이 올라온다. 이는 나눔의 의미가 들어있다. 상차림에 올릴 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사람들과 나눠먹을 떡까지 한다.

대추에는 자손이 번창하라는 의미가 담겼다. 보통 폐백을 할 때 시아버지가 새 신부에게 던져준다. 민경숙 선생은 “대추가 아들, 밤이 딸을 의미하면서 던져주곤 하는데 시아버지가 던져주는 것은 내 대를 이어달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고 설명한다.

또 혼례상에는 큼직큼직한 음식형태는 아니지만 오징어 꽃을 새겨도 작게 만들고, 상례상에는 엄숙의 의미로 대국을 쓰고 큼직하게 음식을 마련한다고 한다.

 

떡을 찍어내는 절편

음식의 맛 기본부터 소중히 여겨야

전통 음식 중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음식은 술과 떡이라고 말한다. 민경숙 선생은 “아무리 급해도 떡은 금방 못하고, 술도 발효, 숙성 등 오랜 시간동안 거르고 걸러야 술을 뜰 수 있다”며 “이 외에도 1년을 준비해서 계절이 지나야 맛 볼 수 있는 것은 장 담그기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민경숙 선생은 2014년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장으로 우리 남도 음식의 맥을 이으며 재현과 보존에 전념하고 있다.

전통음식에 관해 경건한 자세로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 연구를 하고, 신선로를 비롯해 장류와 장아찌, 전통 떡과 한과, 전통주와 폐백 이바지, 음청류와 다식, 각종 탕과 찜, 김치와 찬류 등에 깊은 애정을 갖고 전통기법 유지와 계승을 소명으로 삼고 정진하고 있다.

민경숙 남도의례음식장은 “음식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부터 소중히 여기고 맛을 낼 줄 알아야 전통음식의 깊은 맛을 살릴 수 있다”며 “음식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전통은 보존하되 우수성을 살리면 우리나라 전통 음식의 현대화와 세계화는 충분히 이뤄질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말한다.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1차적인 기능을 넘어 눈으로 보고 감동하는 남도의례음식에서 우리 전통의 품격이 더욱 높아지기를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