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때 폭도 수백명 무등산으로 도주”
“5·18때 폭도 수백명 무등산으로 도주”
  • 류승희 시민기자
  • 승인 2017.05.2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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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가 퍼뜨린 왜곡 정보들
軍 스스로 실패임을 자인했었다
▲ 비밀문서 일부

1980년 5·18당시 신군부가 미국에 거짓 정보를 흘리고 미국은 발포명령 등 신군부의 조치에 대해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신군부의 왜곡 사례가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신군부세력이 한미연합사 미국쪽 군사정보통에 제공한 정보를 담아놓은 ‘미국 국방부 정보보고서(80년 5월27일 작성)에는 ’군중들이 쇠파이프, 몽둥이를 들고 각 집을 돌며 시위에 동참하지 않으면 집을 불질러버리겠다고 위협하고, 폭도들이 초등학생까지 동원하기 위해 강제로 차에 태워 길거리로 끌고 나왔다‘는 대목이 있다.

또 당시 신군부는 5월27일 도청진압이후 폭도들이 무등산 주변으로 도피하였고 무기와 탄약을 광주 외곽지역에 숨겨놓고 항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거짓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신군부가 ‘시민군이 초등학생까지 강제로 동원하고 있다’, ‘시민군이 빨치산식 항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등의 왜곡사실을 전파함으로써 실제 전 시민들의 헌신적인 참여로 이뤄진 광주항쟁이 마치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폭동인 것처럼 몰아가려는 의도인 것이다.

그러나 지난 1988년 국회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 특위가 엮은 1980년 5월29일 제7공수의 「전투상보」를 보면 신군부 스스로도 잘못된 정보임을 자인하고 있는 대목이 나온다.

「전투상보」에 따르면 ‘80.5.27. 광주지역 재소탕 및 확보이후 폭도들이 무등산 주번으로 도피하였다는 첩보…회수하지 못한 무기와 탄약을 광주시 외곽지역에 은익…수색 및 거부작전을 계획’하였다.

이에 따라 군은 2개 대대를 증심사, 무등산장 일대에 투입시키되 각 대대별 1개 지역대는 헬기로 공중 기동시켜 하향식 수색작전을 실시하고 2개 지역대는 무등산입구부터 상향 수색작전을 실시하며 필요시 야간 매복을 실시하도록 했다. 이 작전에는 전교사로부터 UH-1H 4대를 지원받았다.

실제 작전결과 7공수는 ‘큰성과없이 혐의자 6명을 체포’한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전투상보」는 <문제점 및 교훈>에서 ‘확실한 첩보가 결여된 상태에서 성급한 작전실시로 실패’라며 ‘많은 전과를 기대한 작전이었으나 첩보 부정확으로 실패한 작전임’있을 자인하고 있다.

한 5·18연구자는 “잘못된 정보들은 결과적으로 ‘광주시위가 공산주의자 또는 북한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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