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30) 부벽루(浮碧樓)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30) 부벽루(浮碧樓)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05.2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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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이제나 산은 푸르고 강물은 절로 흐르는구나[2]

아무렴 해도 중국 관문은 대동강이었다. 그래서 평양은 교통의 요지이자 문화 중심지로 발달해 왔다. 6.25때 불타버린 것으로 알려지나 평양하면 떠오르는 절이 영명사이고 부벽루다. 남북의 허리가 잘려 있는 마당에 가보고 싶은 곳이 평양이 아닌가 한다. 그만큼 문화의 유적이 많다. 동명왕이 탔다고 하는 기린마를 떠올리면서 하늘이 남겨놓은 마지막 천손은 어디에서 노니는지 산은 푸르고 강은 저절로 흐른다고 읊었던 율시 후구 한 수를 다시 번안해 본다.

 

浮碧樓(부벽루)[2] / 목은 이색

동명왕 기린마는 어디 가고 오지 않고

천손은 지금쯤에 어느 곳에 놀고 있나

난간에 휘파람 불며 강물 절로 흐르네.

麟馬去不返               天孫何處遊

린마거불반               천손하처유

長嘯倚風磴               山靑江自流

장소의풍등               산청강자류

 

예나 이제나 산은 푸르고 강물은 절로 흐르는구나(浮碧樓2)로 제목을 붙여본 율(律)의 후구인 오언율시다. 작가는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기린마는 떠나 가고 다시 오지 않으니 / 천손(천신의 손자)은 어느 곳에서 노닐고 있는가 // 돌난간에 기대어 휘파람을 불어 보는데 / 산은 푸르고 강물은 절로 흐르는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부벽루에 올라서서(2)]로 번역된다. 전구에서 시인이 읊은 시심은 [엊그제 영명사를 지나다가 / 잠시 부벽루에 올랐더니 // 성은 비었는데 달은 한 조각이요 / 돌은 오래 되었고 구름은 천년을 흐른다]라고 쏟아냈다. 우연히 영명사를 지나다가 부벽루에 올랐건만 천년 그림자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는 회고의 한 마당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시인의 눈에 아련히 비치는 것은 기린마를 상상한다. 동명왕이 탔었다는 기린마를 볼 수 없고 아직 천손은 어느 곳에 놀고 있는지 반겨주지 않는다고 회고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고구려를 지킬 수 있었고, 그래서 저 광활한 만주 벌판을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모두가 회고와 시적 소재들뿐이다.

화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대화의 상대를 찾아본다. 돌난간에서 휘파람을 불어 보지만 그마저 허사였을 것이다. 돌난간에 기대어 봐도 강물만 절로 흐른다는 사상을 끄집어냈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는 것은 산은 푸르고 강물만이 말없이 흐를 뿐이다. 어느 시인이 읊었던,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라는 시구를 울컥 떠올려 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기린마는 오지 않고 천손은 어느 곳에, 휘파람을 불어 보나 산 푸르고 강물 절로’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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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으로 고려 말의 문신, 학자이다. 국사원편수관 등을 지내다 귀국하였고 이듬해 다시 원의 한림원에 등용되었다. 1356년 귀국하여 이부시랑 등 인사행정을 주관, 정방을 폐지하였고 이듬해 우간의대부 때는 3년 상을 제도화했다.

【한자와 어구】

麟馬: 기린마, 동명왕이 기린마를 타고 기린 굴로 들어갔다가 하늘로 올라갔다. 去不返: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天孫: 직녀성(거문고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 何處遊: 어느 곳에서 노는가. // 長嘯: 길게 휘파람을 불다. 風磴: 소원 등을 기원할 때 사용하는 전통놀이. 自流: 스스로 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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