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9) 부벽루(浮碧樓)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9) 부벽루(浮碧樓)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05.1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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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가 낀 돌은 오래 되었고 구름은 천년을 흐른다[1]

선현들이 남긴 시문엔 대체적인 특징이 두 가지가 있다. 음풍농월의 시풍이요, 과거회상적인 시풍이 그것이다. 자연을 노래하고 달을 희롱하는 시의 형태와 고적과 사찰을 찾아 융성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시적인 형태 등 두 가지다.

고려의 절신(節臣)인 목은이 평양의 영명사를 지나 부벽루에 올라 과거를 회상하는 시문을 살피게 된다. 고구려의 찬란했던 역사를 회상하며 달은 예나 같이 비추고 구름은 천년을 흐른다고 하며 읊었던 율시 전구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浮碧樓(부벽루)[1] / 목은 이색

영명사를 지나다가 부벽루에 올랐더니

성터에는 비어있고 한 조각 달빛 가득

구름은 천년 흐르고 돌은 오래 되었네.

昨過永明寺                暫登浮碧樓

작과영명사                잠등부벽루

城空月一片                石老雲千秋

성공월일편                석로운천추

 

이끼가 낀 돌은 오래 되었고 구름은 천년을 흐른다(浮碧樓)로 제목을 붙여본 율(律)의 전구인 오언율시다. 작자는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엊그제 홀로 영명사를 지나다가 / 잠시 짬을 내서 부벽루에 올랐더니 // 성은 텅 비어 있는데 달은 한 조각의 모양이요 / 이끼가 낀 돌은 오래 되었고 구름은 천년을 흐른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부벽루에 올라서서]로 번역된다.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려 본다. 한 선비가 평양 중구역 금수산 기슭에 자리 잡은 영명사를 찾았다. 평양지역 전승에 따르면 천손 주몽이 이 동굴에서 기린을 길렀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영명사에 대한 애정과 추억은 남달랐을 것이다. 부벽루도 마찬가지다. 추억과 역사의 애환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떠난 이들은 말이 없다.

시인은 행여나 하는 기대를 갖고, 천년사직의 옛일을 누가 이야기해주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갖고 영명사를 찾았고 부벽루를 올랐다. 이와 같은 기대와는 자못 다르게 아무도 그 때의 일을 말해 주지 않았다. 시인만이 느끼는 허무함이었을 것이다.

화자의 눈에 비친 천년의 사직은 텅 비었음을 상상한다. 다만 한 조각의 달과 한 점의 구름만이 천년의 얼을 말해 주고 있다고 회고하면서 시상을 일으킨다. 후구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기린마는 가고 오지 않으니 / 천손은 어느 곳에서 노는가 // 돌난간에 기대어 휘파람 부는데 / 산은 푸르고 강물은 절로 흐르는구나]라고 했다. 동명왕이 탔던 기린마와 천손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엊그제 영명사 지나 부벽루에 올랐더니, 텅 빈 성엔 한 조각 구름 천년 구름 흐르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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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으로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다. 1352년(공민왕 1) 전제개혁, 국방강화, 교육진흥, 불교억제 등 당면정책을 왕에게 늘 건의했다. 1353년 정동행성 향시에 장원급제했고, 1354년 원나라에 가서 [회시]에 ‘장원’을 했고, [전시]에는 ‘차석’으로 급제했다.

【한자와 어구】

永明寺: 부벽루 서쪽에 있던 절.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지은 아홉 절중의 하나. 暫: 잠시. 浮碧樓: 평양 모란대 밑 대동강 변에 위치한 누각. // 城空: 성은 비었다. 月一片: 달은 한 조각, 곧 초승달이나 하현달이었음을 알게 함. 石老: 늙은 돌 바위. 오래 된 바위. 千秋: 천년, 오랜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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