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3)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3)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05.1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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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과 비관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 1950년대에 홀로코스트 문학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 사례가 프리모 레비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와 엘리 위젤의 책 『나이트』이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1947년에 2,500부가 발간되었는데 호평을 받았지만 일부만 팔렸다. 600권은 아예 출판사 창고에서 수해로 물에 잠겼다. 이 책은 가사(假死) 상태로 10년을 보낸 뒤 1957년에야 빛을 보았다.

『나이트』도 1959년에 프랑스어로 출간되었을 때, 서평은 좋은 편이었으나 책은 별로 팔리지 않았다. 소름끼치는 주제를 다룬 탓인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랍비가 설교 중에 어쩌다 이 책을 언급하면 “유대인이 과거에 겪은 비극으로 우리 자식들에게 짐을 지우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많았다. (엘리 위젤 지음, 나이트, 2007, p18)

#2. 프리모 레비는 신세대의 무관심에 절망을 느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1986년 발간)』의 결론에서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경험은 신세대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고, 해가 갈수록 더 상관없어진다. 50년대 60년대의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아버지의 일이었다. ... 80년대의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그들의 할아버지들의 일이다. 멀고 희미하고 ‘역사적인’ 일이다.” (책 p 246)

이에 걸맞게 독일 전 대통령 바이츠제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극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사건이 일어난 뒤에 과거를 바꾸거나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에 대하여도 맹목이 되어 버립니다. 과거의 비인도적인 행위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새로운 감염의 위험에 다시 쉽게 노출됩니다.

(최호근 지음, 제노사이드, 2005, p 16∽17)

그렇다. 사람들은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기를 거부한다.

#3. 한편,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고 외쳤다. 그는 책의 ‘결론’에서 이렇게 적었다.

“폭력은 우리 눈앞에 있다. .. 의회민주주의 국가들과 공산권 국가들에서 폭력은 뱀처럼 꿈틀대고 있다. 제3세계에서 폭력은 고질병처럼, 유행병처럼 발발한다. 폭력을 계획하고 합법화하고, 폭력이 필수불가결하고 의무적인 것이라고 선언하며 세상을 오염시킬 새로운 광대를 기다릴 뿐이다(후보들은 늘 있다).불관용과 권력에 대한 욕망, 경제적 이유,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광신, 인종적 마찰 등이 발생시키는 폭력이 난무하는 조류 속에서 미래에 면역성이 있다고 보장할 수 있는 나라는 소수이다.” (책 p 248)

“패배 후 나치즘의 조용한 이동은 지중해와 대서양, 태평양에 면한 약 12개국의 군인들과 정치인들에게 박해와 고문의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수많은 신생 폭군들이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서랍 속에 간직하고 있다. 몇 군데는 수정하고 몇 군데는 이름을 바꾸면, 그 책은 여전히 쓸모가 있는 것이다.” (책 p 250)

또한 그는 1986년 7월26일 이탈리아 일간지 『라 스탐파』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우슈비츠의 씨앗은 다시 싹터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폭력은 가까이에 우리 주위에 있어요. 그리고 폭력이 낳은 폭력도 있습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의 폭력과 알제리, 러시아 중국의 문화혁명, 베트남 등에서 우리가 목도한 폭력사이에는 숨어있는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미디어를 통해(매우 필요한 것들이긴 하지만) 폭력을 보급합니다. 폭력을 확대하는 매커니즘을 갖고 있는 거죠.” (책 p 256)

1987년 4월11일, 프리모 레비는 토리노 자택에서 투신 자살했다. 만약 레비가 살아서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 대학살과 1991년부터 1999년까지의 보스니아와 코소보의 인종청소를 목격했다면 무엇이라 말했을까?

레비는 분명히 ‘폭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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