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8) 추일(秋日)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8) 추일(秋日)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05.1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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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바람이 일자 해오라기가 날아오르구나

한 폭의 산수화를 보고 있노라면 한가함이 묻어난다. 포근함에 감싸이지만 한국인의 특성 자체는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있지 않나 싶다. 무엇이나 급하고 빠르다. 서둘러서 처리하려는 가속적인 습성 속에 때로는 부실하게, 때로는 실수로 다가서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텍스트로 삼는 위 작품을 읽으면 한국 사람의 생활습성과는 상당한 대조를 보이는 모습을 보인다. 한가한 자연의 풍경 속에 한 폭의 그림을 그리면서 자연을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秋日(추일) / 신부용당

연이은 푸른 하늘 흰 구름 일어날 때

먼들에는 행인들 집을 향해 돌아오고

뱃전에 노 비스듬히 해오라기 날으네.

連天白雲多         遠野行人歸

연천백운다         원야행인귀

蒼江舟楫斜         風吹白鷺飛

창강주즙사         풍취백로비

 

멀리 바람이 일자 해오라기가 날아오르구나[秋日]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신부용당(申芙蓉堂:1732∼1791)으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연이어진 하늘에는 흰 구름은 많이 일고 / 먼 들에는 멀리 떠났던 행인들이 돌아오는구나 / 푸른 강엔 배를 젓는 노(楫)가 비스듬하게 누워있는데 / 멀리 바람이 일자 해오라기가 날아오르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어느 가을날에]로 번역된다. 전개되는 다음 구절을 인용해 본다. [산마을 앞에는 들이 펼쳐 있고, 그 들 저쪽에는 푸른 강이 흐른다. 마을 앞 들길로 사람들이 돌아온다. 아침에 나갔던 사람들이다. 푸른 강에는 조각배가 한가롭다. 돌아올 사람들을 다 실어 나르고 지금은 편히 쉰다. 바람이 인다. 해오라기들이 한가로이 날아오른다] 한가로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시인이 인용한 그림 얼개처럼 한가롭기 그지없다. 하늘에 둥둥 떠가는 흰 구름, 먼들에는 돌아오는 사람들의 걷는 발걸음들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이런 들판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가 아니라도 그림이라도 그리고 싶은 충동이 들겠다.

화자는 빨리 빨리 문화에 젖어있는 조선인을 은근하게 질타해 보인다. ‘왜 그리 바쁘냐?고 하면서… 저어야 할 노가 비스듬히 놓여 있는 배, 가느다란 바람이 일자 서서히 날아오르는 해오라기 등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없다. 비유법에 의한 화자의 시적인 상상력보다는 표현의 기법에서 보이는 회화성을 보다 높이 사야할 작품이 아닌지 모르겠다. 때때로 만나면 이렇게 한가한 작품도 진한 감동을 주리라.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하늘엔 흰 구름 많고 먼 들 행인 돌아오네, 배 젓는 노 비스듬히 해오라기 날아올라’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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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신부용당(申芙蓉堂:1732∼1791)으로 여류시인이다. 1732년 한순 숭문동에서 태어났다. 시인으로 당시에 이름난 신광수, 신광연, 신광하의 누이동생이다. 오라버니에게 시를 배웠으며 열아홉 살에 윤운에게 시집가서 규영, 규응 형제를 낳았다. 시와 산문을 모아서 [부용당집] 수 권이 전한다.

【한자와 어구】

連天: 하늘이 이어지다. 연이어진 하늘. 白雲: 흰 구름. 혹은 흰 구름 사이. 多: 많다. 수효가 많다(대소의 뜻은 아님). 遠野: 먼 들판. 行人: 행인들. 歸: 돌아가다. 돌아오다. // 蒼江: 푸른 강. 舟: 돛단배. 楫斜: 비스듬히 노를 젓다. 風吹: 바람이 불다. 白鷺: 흰 갈매기. 飛: 날다. 날아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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