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2)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2)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05.0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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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만행 은폐와 사실 왜곡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 프리모 레비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1986년 발간)』 책의 서문 첫머리부터 나치의 증거인멸에 대하여 언급한다.

“나치의 절멸 수용소에 대한 최초의 소식들은 격동의 해인 1942년에 퍼지기 시작했다. ... 전해온 소식들이 묘사하는 학살은 규모면에서 너무나 방대했고, 극단적으로 잔인했으며, 복잡다단한 동기를 지니고 있었다. 대중은 그 소식들이 전하는 엄청남 때문에 그 이야기들을 거부하려 했다. ... 많은 생존자들, 그 중에서도 『살인자들은 우리 가운데에 있다』(1970년 출간)의 마지막 페이지들에서 시몬 비젠탈(1908∽2005 우크라이나 출생의 유대인 학살 범죄 연구가)은 나치 친위대 군인들이 냉소적으로 포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즐거워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이 전쟁이 어떤 식으로 끝나건 간에, 너희와의 전쟁은 우리가 이긴 거야. 너희 중 아무도 살아남아 증언하지 못할 테니까.

혹시 누군가 살아 나간다 하더라도 세상이 그를 믿어주지 않을 걸. 아마 의심도 일고 토론도 붙고 역사가들의 연구도 있을 떼지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왜냐하면 우리가 그 증거들을 너희와 함께 없애버릴 테니까.

그리고 설령 몇 가지 증거가 남는다 하더라도, 그리고 너희 중 누군가가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너희가 얘기하는 사실들이 믿기에는 너무도 끔찍하다고 할 것이야.

연합군의 과장된 선전이라고 할 거고 모든 것을 부인하는 우리를 믿겠지. 강제수용소의 역사를 쓰는 것은 너희가 아니라 바로 우리야.”

(프리모 레비 지음 · 이소영 옮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돌베개, 2014, 서문 p 9∽10)

#2. 그랬다. 나치는 대학살을 철저히 증거 인멸했다. 설령 대학살이 사실로 드러났어도 전면 부인했고, 왜곡했다.

증거인멸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폴란드 소비보르(sobibor) 수용소 파괴이다. 나치는 소비보르에서 167,000명을 죽였는데 1943년 10월에 600명의 수감자들이 폭동을 일으켜 수십 명의 감시원을 죽이고 3백 명이 탈출했다. 이 반란이 있은 후 나치는 수용소를 완전히 파괴했고 살해 흔적을 없애기 위해 주변에 나무를 심었다.

1944년 가을 이후 나치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아우슈비츠의 가스실과 화장실을 폭파하고 관련 문서를 폐기했다. 그러나 그 잔해를 모두 없애지는 못했다. 1945년 1월 27일에 소련군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시켰을 때 수용소 창고 35개 중에서 29개는 파괴되었지만, 남은 6개 창고에서 머리카락 7.7톤, 의복 120만 벌과 카펫 13,964개, 산더미 같은 신발과 그릇과 컵·가방과 장난감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가해자들은 진실을 전면 부정했다. 1942년까지 비시 정부에서 유대인 문제 담당이었고 유대인 7만 명의 강제 이송에 책임이 있는 루이

다르퀴에가 1978년 『익스프레스』 지에 진술한 인터뷰에 의하면 그는 모든 것을 부정한다. 시체들이 무더기로 쌓인 사진들은 편집한 것이고, 수백만에 이르는 사망 통계는 매스컴의 관심과 동정, 피해 보상금에 눈먼 탐욕스런 유대인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이며, 강제 이송은 있었을 수 있지만 자신은 몰랐다는 것이다. 또한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단지 해충을 죽이기 위해 사용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위 책 p 28∽29)

그런데 예루살렘 재판에서의 아이히만의 진술과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회스의 자서전에서 한 진술들을 읽어 보면, 다르퀴에의 경우보다 훨씬 더 교묘하게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우리는 부지런한 집행자였고 그런 부지런함 덕분에 칭찬받고 진급했다. 결정은 우리가 내린 것이 아니었다. 결정권은 없었고, 단지 결정에 따랐을 뿐이다. 따라서 책임이 없다.” (위 책 p 29∽30)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Banaility of Evil)’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영혼이 없는 공무원과 군인들.

불현 듯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사실왜곡이 생각난다. ‘5.18때 북한군 특수부대가 내려왔다’고 주장한 지만원의 허위사실 유포와 최근에 물의를 빚고 있는 『전두환 회고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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