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란(托卵)의 정치
탁란(托卵)의 정치
  •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17.05.0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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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이번의 대통령 선거에 호남에서는 후보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호남을 차지하려고 저마다 호남을 위한 공약을 내건다. 이제까지 우리 헌정사에서 김대중 대통령 말고는 호남 대통령이 다시 나오지 않았다. 호남은 붉은머리 오목눈이의 둥지나 다름없이 되었다.

뻐꾸기는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면 얌채이고 잔인한 새다.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고 알을 품지도 못한다. 그래서 오목눈이가 둥지를 비운 사이에 몰래 자신의 알을 낳아 놓는다. 둥지에 돌아온 오목눈이는 자신의 알보다 큰 알을 보고서 이상히 여겨 깨버리거나 둥글려 둥지 밖으로 떨어트려 버리고 둥지를 버리고 다른 둥지를 만들어 떠난다. 그래서 탁란의 성공 비율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물정 모른 어떤 붉은머리 오목눈이는 그 이상한 알을 자기의 알로 착각하고 십여일 품어 부화하는데 뻐꾸기 알은 오목눈이 알보다 하루 먼저 부화하여 아직 부화하지 못한 알을 둥지 밖으로 떨어트려버리거나 부화한 새끼가 있으면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모두 떨어트려 죽여버린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면 뻐꾸기 새끼의 본능적 행동이 얄밉고 몸서리치게 잔인하기 그지없다. 오목눈이는 자기보다 덩치 큰 뻐꾸기 새끼를 자신의 새끼라 착각하여 암수가 부지런히 먹이를 잡아다 지극정성으로 키운다. 이 때부터 어미 뻐꾸기는 오목눈이 둥지 근처에서 󰡐뻐꾹 뻐꾹󰡑울어 자신의 울음소리를 각인시킨다. 오목눈이는 뻐꾸기 새끼를 자기 새끼로 알고 죽을둥 살둥 곤충을 잡아다 먹여 기른다. 둥지가 그들먹하게 큰 뻐꾸기 새끼는 부모를 독점하여 무럭무럭 자란다. 그래서 날 때가 되면 어미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따라 미련없이 날아가 버린다. 이 뻔뻔하고 잔인한 뻐꾸기의 생태를 알고 나면 밤에 우는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전혀 낭만적으로 들리지 않고 까마귀의 󰡐까악 까악󰡑하는 울음소리보다 더 불길하게 들린다.

우리의 헌정사에는 뻐꾸기 두 마리가 있다. 하나는 한민당의 둥지에 알을 맡겨 부화시킨 이승만 대통령이고, 다른 하나는 ‘위대한 광주의 선택’이라 불린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콤플렉스에 걸려 민주당이라는 둥지를 팽개쳐버리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은 분명히 뻐꾸기의 행태나 다를 바 없다.

호남인이 분개한 것은 정통민주세력인 호남을 헌신짝처럼 취급한 것이라는 데에 있다. 민주당에서 뛰쳐나와 국민의 당을 창당하여 작년의 총선에서 호남을 석권한 것도 뻐꾸기에 대한 반감의 결과인 셈이다. 그리하여 문재인 당시 더불어 민주당 대표가 ‘호남이 나를 버리면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말이 나왔고, 이것이 빌미로 ‘문재인은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정치인의 정치적 수사를 문면 그대로 믿으면 순진한 사람이다. 최근에 나온 여론 조사는 또 다시 광주의 탁월한 정치 감각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파렴치한 보수세력의 준동에 민주 세력과 촛불혁명의 세력들은 다시 결집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를 이렇게 분탕칠한 보수도 아닌 극우 보수세력은 더 이상 국가의 안보를 말할 자격이 없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그가 누차 뉘우친다고 했으니 호남인들은 눈을 부릅뜨고 지켜 볼 것이다.

호남의 둥지에 알을 낳으려는 뻐꾸기들 중에 누가 좋은 뻐꾸기인 줄 가늠하기란 몇 년의 세월이 지나야 알겠지만 5월9일 대선의 개표가 끝나면 어떤 뻐꾸기가 대통령으로 확정될 것이다. 만약 오목눈이가 현명하다면 뻐꾸기는 탁란을 할 수 없게 되고, 그 결과 뻐꾸기는 멸종될 것이다.

우리는 하찮은 새에 지나지 않은 뻐꾸기를 통하여 우리의 운명이 걸린 대선 정국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뻐꾸기는 뻐꾸기여’라는 말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녹음이 짙어지면 ‘뻐꾹 뻐꾹’하는 뻐꾸기 소리가 우리 귀에 친근하고 낭만적인 소리로 들렸으면 한다. 호남인들의 목소리가 착한 뻐꾸기 소리와 화합할 때 우리의 민주주의도 성숙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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