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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가 만난 사람- 조현옥 '오월 어머니의 눈물' 시인광주 민중 항쟁 37주년 봉헌 시집 '오월 어머니의 눈물'
"이 나라의 시인으로 살아가려면 역사적 사실과 마주해야"
정선아 기자  |  toseong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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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03  17: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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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소리=정선아 기자]1980년 5월, 자식을 잃은 광주 어머니들은 어언 37년이 지났음에도 늘 자식만을 그리워하며 슬피 울고 있다. 5·18, 세월호 등의 진실 규명을 위해 진실을 침묵하고 은폐하려는 자들과 끝없이 투쟁하면서 진실을 기록하는 조현옥 시인을 만났다.

조현옥 시인은 1965년 충북 옥천 소정리에서 태어나 1988년부터 광주에서 살고 있다. 1992년 ‘문학공간’으로 등단하여 시집 ‘그대를 위한 촛불이 되어’, ‘무등산 가는 길’, ’4월의 비가, ‘일본군 위안부의 눈물’, ‘오월 어머니의 눈물’ 등을 출간했다.

▲조현옥 시인이 겪은 5·18 광주 민중 항쟁은?

- 80년 당시 직직거리는 흑백 tv를 통해 뉴스를 보는데 군인들이 폭도들에게 당해 부상당하고 있다고 보도됐어요. 그 말만 믿고 군인들이 빨리 이겨 진압이 됐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빌었어요. 비상계엄령으로 언론사가 통제되고 있었던 상황이라서 대국민 사기극이었던 거죠.

이후 광주에 와서 살던 친척이 “공수부대가 시민들을 죽이고 큰일 났다”고 진실을 알려줘서 문학적 감수성이 많았던 사춘기 시기의 저는 군인이 국민을 죽이는 것을 뉴스가 왜 이렇게 보도할까. 이런 엉터리 나라에 태어나 내 꿈은 어떻게 이뤄나갈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았죠.

1980년 5월 남쪽 하늘로 빨간 기둥이 치솟는 거예요. 사람이 분노하면 다른 DNA가 나온다고 하잖아요. 그걸 보고 저녁에 계속 덜덜 떨었어요. 8남매라 부모님이 개개인 자식들을 돌봐주기 어려웠는데 그 날만은 아버지가 제 상태를 보고 어머니에게 안아주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부모님이 안 해주셨다면 충격으로 저는 황천길을 갔을지도 몰라요.

▲‘오월 어머니의 눈물’이란 시집이 나오게 되기까지 과정은?

- 현장에 가서 5월 어머니들을 만나는데 5·18 전후의 사건을 모두 알고 있고, 적극적으로 데모도 하실 줄 알았어요. 하지만 어머니들은 “계엄군이고 뭐고 난 몰라. 내 새끼 죽인 놈들인 것 밖에. 내 새끼 보고 싶은 마음뿐이야”라는 그 말씀에 가슴이 미어졌어요.

거기서 느꼈죠. 책상 머리에 앉아서 쓰는 글이 전부가 아니라 현장에 직접 가서 보고 느껴야 만이 진실된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을요.

‘오월 어머니의 눈물’은 작년 4월 말에 이미 끝마쳤던 시집이에요. 하지만 마무리를 지어 출판사에 넘겼는데 5월10일까지 인쇄도 안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차라리 내년으로 미루자 했던 겁니다.

이번 시집은 탄핵 정권 이전에 완성한 거라 많은 각오와 의지가 담겨있어요. 결심을 하지 않으면 시집을 낼 수도 없었어요. 30년이 넘도록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기가 피해자라고 말하는 상황과 그러한 연장의 보수정권이 8년 이상 계속된 거였죠.

이 시집으로 조사받고 감옥에 가게 된다면 삼개월 아니면 길어야 1년 살겠지... 그 후에 또 문학을 위해 시를 쓰면 되는 거니까. 역사와 함께 있는 게 더 소중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시집에 광주 지역 신문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줘서 너무 고맙고 감사드려요.

   
▲ 조현옥 시인은 지난 2일 오월 어머니들께 시집을 증정했다.

▲진실이 담긴 시를 쓰게 된 계기는?

- 중학생 때 여중생들이 보는 월간 잡지가 있었는데 그곳에 특집으로 일본군 위안부 기사가 실려있었어요. 그 기자가 꼭 알리고 싶어서 일본군이 여자들을 끌고 가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노리개 삼았던 사실을 특집으로 보도했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충격 받고 소름끼쳤죠. 

어느 날 그 책 사이사이에 흰 나비들이 꽂혀있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상황이고 너무 놀라서 책에 들어간 나비를 빼려고 난리쳤죠. 그 행동을 아버지가 보더니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랬을까”라고 하셨어요. 충청도에서는 흰나비는 사람의 영혼이라 그러거든요.

역사와 함께 시를 마주해야 하는 것이 시인의 책임이며 의무이죠. ‘한 페이지의 훌륭한 역사는 천 페이지의 시보다 낫다’는 말이 있어요. 천 페이지의 시가 되지는 말아야죠.

▲그동안 블랙리스트 시인으로서 정부에서 많은 억압이 있었다는데

- 2014년 6월에 문학인 754명이 동참한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했는데 어디에선가 전화가 왔어요. 시국 선언에 참여했는지 물어보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그 사람에게 “누가 이런 조사를 시키는 거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블랙리스트 시인이 되고 관련 기자회견에도 참여하며 성명서를 낭독하기도 했지요. 제가 두 권의 시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당당하게 행동했죠.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공동대표 당시 대집단 체조 ‘아리랑’을 보러 간 것을 두고도 “왜 간 것이냐”라며 전화가 온 거예요.

통일부에서 허락했던 일인데 어이도 없고 꺼림직 했죠. 정말 노무현, DJ 정권 때와 달리 이명박 정권으로 들어서면서 아마 북한과 저희를 엮으려 빌미라도 잡으려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전화와 조사를 받으며 시달렸었죠.

이러한 진실이 담긴 시집도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들을 보고 허구가 아닌 진실이 담긴 시를 써보자고 다짐한 결과네요. 불편한 진실과 조우하는게 시가 아닐까요.

▲다음에 발표할 작품 구상은 해놓으셨나요?

-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에 대해 서사시로 써보려 해요.

1945년 8월18일 일제 해방 후 일본은 재일 한국인들의 폭동을 우려하여 근로정신대로 강제 징용되었던 7,000여 명 이상의 한국인을 일본 해군 군함 우키시마호에 태워 부산으로 떠나 보내요. 그러나 부산항으로 향하던 우키시마호는 연료 부족으로 방향을 돌려 일본 중부 동해 연안에 있는 마이즈루항으로 돌아갔는데, 이 때 갑자기 폭음과 함께 배가 폭발하였고 두 동강이 나면서 침몰한 사건이죠.

일본인들은 이 배가 고향으로 가는 마지막 배라며 한국인들을 모두 다 타게 했어요. 당시 통일되어 있어 북한으로 가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으나 일부러 부산으로 방향을 잡아 모두 죽인 거죠. 거기서 천여 명이 살아남았는데 그 분들도 가스로 다시 죽였어요. 아주 잔인하고 너무 억울하고 분노할 일이죠.

전 일본 수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유감이다”라는 말까지 했는데 현재 수상은 “없었던 일이다”고 해요. 이렇듯 역사가 반드시 진실만을 기록하며 흘러가는 것은 아니에요. 역사도 주관적인 것인가 봐요. 박근혜가 권력을 쥐니 거짓말로 다 바꿔버리잖아요.

다음 시집을 위해 여러 가지 관련된 책들도 보고 연구하고 있어요. 제가 근로정신대후원 회원이라 자료도 받아보며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8월18일이 폭침된 날이라 그 즈음을 바라보고 준비하고 있네요.

▲문학인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 망월동 신묘역에 걸린 시 ‘휴전선 미국이 시킨 짓’이라는 작품을 저와 협의하지 않고 경찰들이 몰래 찢어가고, 여러 일로 출두요구서를 받는데 제가 속한 광주·전남작가회에서 움직이질 않는 거예요.

자기 단체의 작가가 詩로 조사받는다고 하면 이것은 예술, 사상, 표현의 자유를 얽매는 것이고 작가에 대한 모독이기에 보호 해줘야하는데 너무 슬프더라고요. 고맙게도 불교단체와 진보진영 몇몇 분들이 저를 위해 기자 회견을 해주시고 도와 주셨죠.

이 문제로 따져도 봤죠. “이대로 조용히 계십시다”라며 묻어버리는 거예요. 모르는 척 대응하지 않으면 박근혜 정권 같은 시대가 올 수밖에 없어요. 작가가 침묵하는데 새벽이 오겠어요?

탄압을 받으면 작가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면서 조직도 단체도 작가 개인도 함께 발전하는 것인데 침묵만이 능사인듯한 태도는 버려야 해요. 철학이 없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게된 거죠.

선거철이면 기승을 부리는 정치권에서의 주적 논리, 종북 논리에 대해 문학이 그 해답을 제시하고 길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작가는 무관의 제왕이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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