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를 사 마시며
산소를 사 마시며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7.04.2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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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못했다. 날마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뿌옇게 덮고 있어서다. 벌써 20여 일 넘게 미세먼지가 안개처럼 앞을 가려 집안에 갇혀 지냈다. 그제는 180이라고 하더니 어제는 130이라고 했다.

정부는 중국 탓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알아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정부는 미세먼지의 80%가 중국발이라고 하지만 20%만 중국 탓이라고 하는 전문가의 견해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수준의 공기오염이 지속될 경우, 2060년까지 한국인 900만 명이 조기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제 공기오염은 국가적 재앙 상태로 들어가고 있다. 세계 주요도시의 공기오염 상황을 추적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에어비주얼(airvisual.com)’은 지난 며칠 동안 한국의 3개 도시가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도시 10위 안에 들었다고 밝혔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화력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라고 한다. 전국 53개의 석탄발전소에서 밤낮으로 엄청난 양의 매연을 내뿜고 있는데, 정부는 향후 5년 동안 20개를 더 증설할 계획으로 있다.

물론 이 요인 말고도 전국의 도로를 내달리는 2천2백만대의 차량에서 내뿜는 배기가스도 가세하고 있다. 이밖에도 건설현장, 쓰레기 소각 등도 요인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를 ‘산 좋고 물 맑은’ 나라로만 생각해왔는데 한국이 세계적인 공기오염 국가라니 충격적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그저 중국 타령만 할 뿐 이렇다 할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책은커녕 한때는 디젤차를 구입하면 보조금을 주더니 이제는 디젤차를 폐기하면 보조금을 준다는 식의 인식을 하고 있으니 큰 탈이다. 이게 정부의 환경 인식이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란 것이 ‘노약자는 외출을 자제하고 외출시 마스크 착용하고 다니라’다. 사람들도 공기 오염에 무신경하다.

이처럼 공기가 탁한 날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가는 것을 보면 말이 안나온다. 미세먼지가 뇌, 폐, 심장병을 유발하는 무서운 요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무덤덤하다. 언론도 강 건너 불구경이다.

나는 날마다 인터넷 기상청 사이트에서 미세먼지 상태를 들여다본다. 그 발표라는 것이 가관이다. 미세먼지 상태를 ‘좋음’ ‘보통’ ‘나쁨’이라고만 알려준다. 말도 안되는 예보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초)미세먼지의 기준을 25마이크미터로 제시하고 있다. 그 정도의 공기라야 맑다는 이야기다.

이를 넘어 80까지를 ‘보통’, 그 이상을 넘어가면 건강에 해로운 상태로 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수치로 표시해서 자세히 알려준다면 가령 오늘 상태가 90일 경우 외출을 하더라도 야외 움직임을 자제하고, 며칠 전처럼 광주 미세먼지가 130일 경우 아예 외출을 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한데 좋음, 나쁨, 대체 이런 예보라니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더구나 이제는 미세먼지라는 표현 대신 ‘부유먼지’라고 칭한단다. 떠돌아다니는 먼지라고 에둘러서 표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참.

요새 대선 주자라는 사람들도 서로 상대 후보 공격에만 열을 올리지 이런 ‘환경 복지’에 대해서 말하는 이가 없다. 정부, 대권주자, 국민 모두 환경 인식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화가 난다. 정부 탓 말고도 국민 탓도 작지 않다. 사람들은 바깥에 나가려면 으레 자동차 키를 들고 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차가 없으면 마트에도 못 가는 줄로 알고 있다. 대체 그 많은 차량에서 날마다 뿜어대는 수 천 톤의 매연이 어디로 갈까. 도로가에 늘어서 있는 아파트로 새들어가고, 길거리의 보행자들의 코로 들어간다.

그러면 이대로 환경 재앙을 두고 볼 것인가. 한 연구에 따르면 ‘도시숲’을 조성하면 미세먼지를 상당부분 저감시킬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쌈지정원 같은 것이 아파트 사이 여기저기 있는데 열 걸음마다 나무가 한 그루씩 심어져 있다.

정원도 아니고 그냥 공터 수준이다. 만일 이런 빈 터에 빽빽한 수림의 도시숲을 조성한다면 나무들이 미세먼지를 흡수해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공터만 보면 아파트를 지으려는 탐욕적인 자본의 논리에 맑은 공기를 들이마실 권리가 막무가내로 침해당하고 있다. 슬픈 일이다. 만일 정부와 국민이 공기 오염에 신경을 안쓴다면 결국 대기의 오염을 걸러내는 공기청정기 역할을 5천만명의 폐가 담당해야 한다는 꼴이 될 것이다.

정부는 ‘환경복지’ 차원에서 자동차 운행 마일리지에 따른 주행세, 도시숲 조성, 전기차 보급, 화력발전소 건설 재고, 중국과의 공동 대책 등 적극적으로 미세먼지를 저감시킬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

나는 천식 때문에 마트에서 판매하는 작은 산소통을 사다놓고 외출에서 집에 돌아오면 들이마시곤 한다. 머잖아 사람들은 물과 함께 산소도 돈 주고 마셔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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