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4) 고금(古琴)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4) 고금(古琴)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04.1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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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는 종자기 죽은 후에 악기 줄 처음 끊겨

시와 음악이라고 했으니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음을 알게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흔히 음주가무라고 했다. 음악이 있으면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제격이고, 듣는 사람이 호응하는 추임새는 소리꾼이나 연주자에겐 더 없이 커다란 격려가 된단다. 그런 호응자였던 ‘종자기’란 사람이 죽은 후에 거문고를 즐겨 탔던 ‘백아’는 더 이상 연주의 의미를 느끼지 못했음은 분명했을 것이다. 이런 고사적인 의미를 담고 읊었던 은은한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古琴(고금) / 운곡 원천석

태고부터 냉랭하고 재주는 기발해도

백아의 물노래 아는 사람 어찌 적나

악기 줄 끊어버린 것 애석함을 알만하네.

太古冷冷韻技奇          伯牙流水少人知

태고냉랭운기기          백아유수소인지

子期死後絃初絶          棄置虛堂良可悲

자기사후현초절          기치허당량가비

 

백아는 종자기 죽은 후에 악기 줄 처음 끊겨(古琴)로 번역되는 칠언절구다. 작자는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1330~?)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태고부터 냉랭하고 운치와 재주가 기발하여도 / 백아의 흘러내리는 물노래를 아는 사람이 적구나 // (백아는) 종자기가 죽은 후에 악기 줄 처음으로 끊어 // 빈 집에 버렸으니 정말 슬퍼할 만하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오래된 거문고를 보며]로 번역된다.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결국 거문고 줄마저 끊어버렸다 해서 [백아절현(伯牙絶絃)]이란 고사가 전한다.

춘추전국시대에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매우 잘 탔고, 종자기(鍾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잘 들었는데, 종자기가 죽어서 거문고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사람이 없게 되었다. 백아는 그만 절망한 나머지 줄을 끊어 버리고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 고사다.

위 시는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에서 착상을 얻었으며 아무리 운치와 재주 기발한 음악일지라도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한갓 쓸모없는 연주이자 음률이다. 태고부터 냉랭하고 운치와 재주가 기발하여도 백아의 흘러내리는 물노래를 아는 사람이 적다고 했다. 더 이상 연주할 만 한 가치가 없었으리. 그래서 회자는 백아가 끊어 놓은 쓸모없는 옛 가야금을 고려 말 기울어져 가는 나라와 빗대어 음영한 시로 작가가 원주의 치악산에 은거할 수밖에 없었던 우국의 심정을 우회적으로 비유한다. 붙잡아도 그저 망해가는 고려와 고금(古琴)이란 헌 악기를 같은 선상에 놓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운치와 재주 기발해도 백아 노래 알지 못해, 종자기 죽자 악기 줄 끊어 빈집에 버려 슬프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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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1330∼?)으로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인이다. 조선 초기에 태종이 그의 집을 찾아갔으나 미리 소문을 듣고는 산 속으로 피해 숨어버렸다. 왕은 계석에 올라 집 지키는 할머니를 불러 선물을 후히 준 후 돌아가 아들 원형을 기천 현감으로 임명하였다 한다.

【한자와 어구】

太古: 태고. 冷冷: 냉랭하다. 韻技奇: 운치와 재주가 기발하다. 伯牙: 백아, 거문고를 잘 탄 사람. 流水: 흘러내린 물소리. 少人知: 아는 사람 적다. // 子期: 종자기, 음악을 잘 듣는 사람. 死後: 죽은 후에. 絃初絶: 악기 줄 처음 끊다. 棄置: 버려두다. 虛堂: 빈 집. 良可悲: 참으로 슬퍼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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