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23) 수용소 해방 70주년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23) 수용소 해방 70주년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04.1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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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해방 7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프랑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 각국의 정상 40여명과 생존자 100명은 수용소 1구역 '죽음의 벽' 앞에서 헌화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도를 올렸다.

한편 1월26일 베를린에서 열린 70주년 기념식에서 독일 메르켈 총리는 “나치 만행을 되새겨 기억하는 것은 독일인의 항구적인 책임이다. 아우슈비츠는 인간성 회복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일깨운다.”고 말하면서 "독일인들은 홀로코스트의 가해자였고, 공모자였으며, 학살을 못 본 척한 자들은 은밀한 동조자였다."고 사죄했다.

“독일인들은 홀로코스트의 가해자였고, 공모자였으며, 은밀한 동조자였다.”는 메르켈 총리의 발언은 미국의 정치학자 골드헤이건이 1966년에 출간한 '홀로코스트- 히틀러의 자발적인 집행자들' 책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골드헤이건은 이 책에서 유대인 대량학살을 직접 집행한 독일인들은 유대인 학살이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일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행동했고, 학살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일반 국민 대다수가 학살의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골드헤이건은 독일 역사에 뿌리 깊고,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었던 반유대주의 정서로 인해 독일 국민들이 홀로코스트를 사실상 지지하고 있었다고 단정을 내렸다. (슈테판 마르크스 지음 · 신종훈 옮김, 나치즘, 열광과 도취의 심리학, 책 세상, 2009, p 309-310)

골드헤이건의 책이 독일에 소개되자 독일사회는 엄청난 파장과 논란을 일으켰다. 독일 사회는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면서, 언론은 하루가 멀다 않고 골드헤이건의 주장을 알렸고, 저명한 독일의 학자들은 골드헤이건의 주장을 반박하는데 목소리를 높였다. 즉 나치 치하의 독일 국민 모두를 히틀러의 자발적 동조자로 간주하는 것에 대하여 강력하게 비판했다.

60-70년대 독일의 골드헤이건 논쟁은 독일사회의 아물지 않은 민감한 상처였고, 이에 대한 치유가 여전히 숙제임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사실 1960년대까지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히틀러의 광기로 설명하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리하여 독일 국민들은 면죄부를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연구가 심화되어 갈수록 나치는 ‘뿔 달린 악마’이고 독일 국민은 ‘선량한 시민’이라는 논리는 근거가 희박하고, 독일인들은 ‘홀로코스트의 가해자였고, 공모자였으며, 은밀한 동조자였다’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났다.

1987년 4월에 이탈리아 토리노 자택에서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 프리모 레비(1919∽1987)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1986년 출간)』에서 “독일 국민들 대다수는 히틀러의 아름다운 말들을 받아들였다. 히틀러에게 행운이 따른 동안에 그를 추종했고 아무런 가책도 없이 그를 지지했다.

그러다 히틀러의 파멸이 그들을 휩쓸어버렸고, 그들은 죽음과 비참함 회환으로 괴로워하다가 몇 년 뒤 부도덕한 정치놀음의 결과로 재활했다. 바로 그런 국민대다수의 책임도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다.”라는 글로 책을 끝맺는다. (프리모 레비 지음·이소영 옮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돌베개, 2014, P 251-252)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0년에 메르켈 총리의 발언은 독일인 모두에게 대학살의 책임이 있음을 고백이었고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그만큼 지금 독일은 성숙하고 열린사회이며 EU의 종주국이 되었다.

그런데 2017년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2주년의 세계 각국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럽다. 미국, 일본, 유럽 도처에서 국가주의 망령, 아우슈비츠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 ‘백인 우월주의’가 부활되었고, 일본도 갈수록 극우주의와 역사왜곡을 노골화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초 ·중 · 고교생에게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가르치고 위안부 문제나 난징 대학살을 왜곡하고 있다.

유럽도 상황이 녹녹치 않다. 영국의 ‘브렉시트’에 이어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가 당선될 경우 독일 메르켈의 4선 연임도 불안하고 EU도 해체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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