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꽃에게 바친다
작은 꽃에게 바친다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7.04.0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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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 작은 꽃들이 피어 있다. 하얀 꽃잎이 여섯 가닥으로 펼쳐진 아주 작은 꽃이다. 꽃 중심에는 노란 점박이를 한 수술들이 동그란 모양을 한 채 모여 있다. 꽃 이름을 알지 못한다. 나는 발길을 멈추고 쭈그리고 앉아 무슨 말이라도 걸 것처럼 봄바람에 일제히 움직이는 이 작은 꽃들을 바라본다.

네 이름이 무어냐고 물어보고 싶다. 하나 만일 내가 이 꽃의 이름을 알아 부른다면 꽃은 수줍어서 내 눈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 것 같다. 무어라고 이름을 붙여주기에도 너무나 작은 꽃이 존재감을 지키며 무더기로 모여 꽃빛을 발하고 있다. 대단한 꽃들이라고 나는 추켜세운다.

내 시력으로 겨우 꽃의 테두리를 붙잡을 수 있는 작은 꽃, 이 이름 모를 꽃들에 합당한 영광이 있기를 나는 바란다. 작은 꽃이라고 해서 꽃의 존재감조차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제 화려한 꽃들의 축제가 벌어질 것이다.

이 작은 꽃에 비하면 더 크고 빛깔이 찬란한 꽃들, 진달래, 철쭉, 목련, 벚꽃, 장미 같은 가장무도회에 나올 법한 갖가지 얼굴 장식 같은 꽃들이 피어서 아름다움을 뽐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작은 꽃에서 눈길을 거두리 않으련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눈길을 더 던지게 되었다. 사람들이 잘 보지 않고 무시하고 폄하하는 그런 사람이나 사물들에게 깊은 생각을 보내는 것이다. 진선미의 가치를 다수결로 규정할 수 없듯이 모든 존재는 그것에 맞는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나는 고집한다.

만물은 동등하다. 그래서 항아리가 간장종지에게 위세를 부리는 것 같은 세상 법칙을 불만스럽게 여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의 무게는 같다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작은 꽃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부러 작은 개미 같은 것이 되어 꽃과 벗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작은 꽃을 마주하는 순간 벌써 친구가 되어버렸다. 굳은 땅을 헤치고 푸른 싹이 돋고 그 푸른 싹이 연약한 꽃대를 올리고 그 끄트머리에 작은 꽃을 피워 올리다니. 이 작은 꽃이 이루어 놓은 길쌈을 무어라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천지창조의 마법에 버금갈 경이를 이 작은 꽃에서 목도한다. 그것은 단언하건대 감동이다. 작은 꽃은 경이와 감동의 발신지이다.

작은 꽃은 새 봄날에 꽃을 피우기 위해 추운 겨울 내내 땅 속에서 얼마나 지극한 인내를 해야 했을까. 얼마나 절실한 소망을 흐트러지지 않게 깊이 간직해왔을까. 우주가 처음 빅뱅으로 시작했다면 이 작은 꽃도 그의 세계를 펼치기 위해 꽃잎을 터뜨리는 빅뱅을 감행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까.

바람이 불 때마다 작은 꽃들은 몸을 떨 듯이 그렇게 일제히 흔들린다. 나도 그만큼 흔들리는 느낌이다. 나는 작은 꽃과 마주한 채 이름이 없는 꽃들, 이름을 남기지 않는 꽃들을 생각한다. 그 작은 꽃들 사이에 숨어 들어가 그 꽃들을 찬양하고 싶다.

사람이 산봉우리에 올라가서 보는 것은 한 눈에 들어오는 산 아래 풍경만이 아니다. 그 산봉우리 어딘가에도 작은 꽃들이 피어 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고, 아무도 피어 있는 것을 모르는 외지고 험한 곳에 작은 꽃들은 제 할 일이 거기 있는 것인 양 피어 있다. 나는 여기 있다고 말하듯이.

이 세상의 모든 꽃들은 있어야 할 곳에 있다. 나 자신 또한 그러기를 바란다. 이 작은 꽃도 그러하다. 나는 허리를 펴고 일어서면서 일순 꽃들이 말하는 것을 들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저 여기 있어요. 저 여기 있어요. 작은 꽃을 보며 내가 여기 있음에 무한히 감사를 느낀다.

외국으로 이주한 내 친구가 있었다. 그는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도 이름이 안 뜬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도, 트위터에도, 구글에도 어느 인터넷 플랫폼이나 사이트에도 그의 흔적은 없다. 인터넷에서 검색되지 않으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되는 시대에 마치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내가 한 밤중에서 낮으로 전화를 걸어야 겨우 그가 일하고 사는 대륙의 모퉁이와 연결되었다. 그것도 몇 달만에야 뜸하게 이루어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선이 연결되지 않는 세상 밖으로 떠났다.

나는 펑펑 울었다. 그리고 절대로 그를 잊지 않기로 다짐했다. 내가 지금 작은 꽃을 보고 그의 생각이 드는 것은 애써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는 그의 행로를 작은 꽃이 비유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어릴 적에 사람은 죽어서 명예를 남긴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나는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이름없음에 숭고함을 느낀다. 이 작은 꽃에서 무명의 아름다움을 본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가 거들떠보지 않아도 작은 꽃은 생명 그대로 충분히 존재의 이유를 가진다. 그렇게 꽃은 제 할 일을 다 하고 질 것이다. 시간을 움켜쥔 작은 꽃에게 내 마음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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