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을 만나서
형제들을 만나서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7.03.2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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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열심히 집을 짓고 자식들을 기르고 마지막으로 자식들에게 비행 테스트를 시키고 난 다음 가족들은 헤어진다. 그리고는 일평생 다시 만나는 일이 없다. 강남 제비가 사는 방식이다. 자연의 엄중한 질서가 무서우리만큼 냉혹하다.

다행히도 우리 인간은 그렇지 않다. 어릴 적 부모님 품 안에서 형제들끼리 서로 옷을 바꿔 입어가며 너나없이 한 가족으로서 우애와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살다가 장성하여 출가한 후에도 형제애를 갖고 살아간다. 한 핏줄은 죽는 날까지 두터운 심리적 울타리로 남아 있다.

부모와 형제는 하늘이 이어준 핏줄이어서 인간이 이를 어쩌지 못한다. 잘 났거나 못 났거나 부모 형제는 이 세상에 태어난 삶의 원인으로 자리한다. 가족이란 핏줄로 맺어진 사랑의 공동체다. 그렇긴 하지만 저금내 나가서 각기 가족을 이룬 후에는 어릴 적의 형제애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각기 책임져야 할 새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형제 사이는 나가서 살고 있는 거리만큼이나 소원해지기 쉽다. 게다가 형제들이 고만고만 산다면 모르되 형제 중 누군가는 잘 살고, 누군가는 잘 나가고, 누군가는 못 살 경우 형제들 사이에는 무엇인가 모르게 서먹해지는 공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처럼 감성이 예민한 사람에게는 어릴 적 형제애가 달라지는 이 같은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멀어지는 듯한 형제 사이가 서운할 때가 있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자연의 이법과도 같은 것을.

집 장만하고, 아이들 교육시키고, 가솔들 먹여 살리고 그러느라 형제들도 제가끔 나름대로 고단한 삶을 헤쳐 나가야 하니 어떻게 부모 슬하의 형제애가 귀밑머리가 희어지도록 변하지 않을 손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되레 이상한 일이다.

내가 맏이라서 그런지, 아버지가 작고하셨기 때문에 더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난 늘 내 형제들의 안부를 생각한다. 형제들이, 그들의 가족들이 잘 되기를 염원하고 응원한다. 자청해서 무엇을 도와주려고 하다가 맏이가 너무 나간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는 것이 탈이다.

어쨌거나 나는 형제들이 제비처럼 가족 단위를 이루어 독립해 살고 있어도 어릴 적 부모님 품에서 함께 가족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시절을 생각하며 형제애를 늘 간직하고 살기를 바란다.

제자들과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설명했던 예수의 말씀을 원용한다면 형제란 한 나무에서 뻗어난 다른 가지들이 아닌가. 나는 성서의 다음 구절에 무릎을 꿇는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갖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나 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자녀들이여,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우리가 즐겨 읽는 ‘삼국지연의’에서 조조의 두 아들이 왕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장면에서 형제를 한 콩깍지 속의 콩알들로 비유한 것은 절묘한 데가 있다. 형제는 인생의 첫 번째 친구요, 마지막 친구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릴 적 읽은 책들에는 유달리도 형제애를 그린 이야기들이 많았다.

요즘은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우자’ 한 이후로는 그런 이야기들이 사라져버렸다. 그나마 형제‘들’이 있는 집에서는 자식들이 스무살이 넘어가면 오피스텔을 얻어 나가 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25퍼센트 가까이 된다든가.

하기는 부부도 평소엔 갈라져 살다가 일주일에 친구처럼 한번 만나는 기상천외한 부부살이도 이웃 일본에선 생기고 있다 한다. 우리도 기러기생활하는 부부들이 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도 들어올 날이 멀지 않지 싶다.

‘내 형제 같은 친구’라는 말을 지금도 더러 쓰는가보다. 형제들은 각기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생물학적으로 유전자를 50퍼센트씩 받았으니 형제애라는 것은 유전자에 새겨진 하늘의 명령 같기도 하다.

형제들이 멀리에서 사는 관계로 명절이나 제삿날에나 만나는 것이 쓸쓸해하던 터에 이사를 앞두고 있는 나는 며칠 전 소장했던 책들을 정리해서 책을 좋아하는 형제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우리 집에서 만났다. 마치 영화 ‘대부’에 나오는 장면처럼 두 팔로 서로를 끌어안고 등을 두드렸다. 오랜만에 형제끼리 정을 나눈 행복한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만났다고 해서 딱히 서로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1박2일로 같이 있으니 좋았다. “너 배가 너무 나왔다”, “애들은 어떠니?”, “국민연금은 언제부터 받게 되지?” 등 뭐, 그냥 그렇고 그런 담화를 주고받았다. 그런 담화를 나누고 맥주 한 캔씩 따고 유용한 인터넷 사이트 주소 공유하고 그렇게 보냈다.

형제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얼굴들이 서로 더 닮아가는 듯하다. 언뜻 언뜻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이 형제들 얼굴에 비껴보였다. ”날 잊지 말거라“하고 형제들 얼굴에 아버지 얼굴을 새겨놓은 듯하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가정을 이룬 형제들이 1년에 한번은 부모님 집에 다시 모여 하룻밤을 같이 지내보는 것이 어떨까. 옛날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말이다. 힘든 세상에 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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