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을 찾아서(32) 공간-생명력의 서양화가 강남구
남도의 멋을 찾아서(32) 공간-생명력의 서양화가 강남구
  • 윤용기 기자
  • 승인 2017.03.15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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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은 자연을 향한 은밀한 서정시
몽환적인 공간과 싱싱한 자연의 생명력 통해 새로운 풍 창조
석류의 리얼리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지역화단의 대표작가
▲ 강남구 작가가 순창공립옥천골미술관에서 4월9일까지 열리는 ‘시간 속, 풍경을 탐하다’는 기획초대전에서 자신의 대표작인 홍매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광주지역 화단에서 바쁘기로 소문난 강남구(54) 화백을 만났다. 초면이지만 친근해 보이는 인상에 금세 편해진다. 인사를 주고 받다보니 동년배다. 화단에 종사하는 친구들 얘기하니 바로 통한다.

그는 지역 화단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대표적인 작가다. 전에는 대학 강단에 서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었지만 지금은 내면의 성숙을 위해 자신의 창작활동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전업작가로 활동 중이다. 강 작가는 대중에게 석류 화가로 알려져 있다. 대중들은 쉽게 와 닿는 이미지로 작가의 모습을 각색하지만 작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광주화단에서는 석류하면 바로 강남구 작가를 떠올린다. 이것은 석류라는 정물소재가 강남구라는 작가를 통해 가장 강력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일반 대중들이 인정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자신 만의 치열한 예술세계를 살아가는 작가보다는 '남도의 멋'을 누릴 줄 아는 인물 한 분 소개해 달라고 친구를 통해 청했는데 만나보니 뜻 밖에 거물 인사라 조금은 부담도 스럽다. 강 작가의 예술정신에 조금이라도 해가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에서다.

‘시간 속, 풍경을 탐하다’ 기획초대전, 고향에서 첫 전시라 개인적으로 더 각별

강 작가는 요즘 많이 바쁘다.  순창공립옥천골미술관에서 4월9일까지 열리는 ‘시간 속, 풍경을 탐하다’는 기획초대전의 자리를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순창은 작가의고향이다.

강 작가는 “지금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옥천골미술관은 지난해 4월 순창에 처음 생긴 미술관이다”고 소개하고, “지난 1년간 박남재, 이철량, 강용면 등 지역 출신 작가에 이어 4번째로 초대됐다”고 밝히면서 “고향에서 여는 첫 전시라 개인적으로 더 각별하다”고 애향심을 피력했다. 강 작가에게 순창은 항상 어릴 적 추억이 가슴속 깊이 자리한 고향일 것이다.

강 작가는 “230㎡(70평) 규모 전시장에 대표작 ‘석류’시리즈를 비롯해 초창기 추상화, 2000년대 풍경 시리즈 등 작품 52점을 전시했다”면서 “고향사람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인 만큼 그 어떤 전시보다도 정성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을 보면 처음 갖는 고향이라는 전시공간에 심적 부담이 상당이 컷을 것이다.

작가는 전시장에 30여년 간 전업작가 길을 걷게 만든 동력이 된 작품들로 지난 1994년 첫 개인전 때 출품한 추상화 ‘공간-생명력’ 연작과 ‘풍경’ 시리즈와 ‘해바라기’, ‘목련’, ‘동백’ 등 2010년 이후 작품들을 출품했다.

▲ 홍매화, 그림속의 홍매화은 가장자리 꽃잎을 뿌옇게 처리하며 중앙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빛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 매화 꽃잎은 건강한 생명력을 전달한다.

아울러 작가는 자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으로 매화를 그린 200호 크기 ‘공간-생명력’(2016)과 지난 겨울 매달렸던 100호 크기 신작 ‘석류’(2017)로만 채웠다. 그 밖에 10호 미만 작품들을 앨범형식으로 배치해 보는 즐거움도 제공했다.

강 작가는 “자연을 작품에 담는 작업은 어렸을 적 순창에 살며 봤던 풍경들이 나도 모르게 표출되고 있는 것 같다”며 “고향에서 여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더 좋은 작품을 위한 새 캔퍼스와 물감, 붓들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강 작가의 작품들이 보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안겨 주는 이유는 작품이 사실적이면서 목가적이기도 하거니와 소재가 자연속의 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한편, 옥천골미술관(순창읍 남계로 81)은 1970년대 지어진 농협 양곡창고를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전체면적 464㎡ 규모로, 1층 전시장, 2층 창작활동실로 구성됐다. 하얀 벽면과 알록달록한 창틀, 옛 모습을 간직한 지붕이 눈길을 끌며 최근 제17회 전북 건축문화제에서 아름다운 건축물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옥천골미술관(순창읍 남계로 81)은 1970년대 지어진 농협 양곡창고를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전체면적 464㎡ 규모로, 1층 전시장, 2층 창작활동실로 구성됐다.

방황이 계기되어 극사실화 기법의 화풍으로 ‘풍경’ 시리즈 시작

작가의 길은 쉽지 않았다. 강 작가에게도 방황의 시기가 있었다. 작가는 “그 시절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작업실에 들어가기가 싫었다”며 “매일 작업실 입구까지 갔다가 다시 술을 마시러 가기를 반복하던 중 바람을 쐬러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던 중 조용한 장흥의 시골길을 걷다가 다듬어지지 않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며 “그 때를 계기로 황토길, 물안개 그림을 그리며 다시 작업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극사실화 기법의 화풍으로 ‘풍경’ 시리즈가 시작됐다. 공간의 깊이를 담아내기 위해 가까운 거리는 또렷이, 먼거리는 희미하게 표현하며 3차원 느낌을 살렸다. 희미한 원거리는 거친 붓질보다는 에어브러시를 사용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금의 작품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강 작가는 ‘공간-생명력’이라는 주제로 바다, 안개 등의 소재를 통해 신비감을 펼쳐왔다. 꾸며지지 않은 소박한 풍경들이 화단의 눈길을 모으는 마력으로 작용했지 않나 싶다.

강 작가의 작품은 전경의 꽃, 풀, 나무 등의 강렬한 이미지와 마치 새벽안개나 노을에 둘러싸인 몽환적인 후경은 급격한 대조를 이룬다. 몽환적인 공간과 싱싱한 자연의 생명력은 새로운 풍경으로 창조된다. 회색조의 분위기는 꽉 채워진 느낌보다는 비워진 공간으로 보여 진다.

▲ 감남구의 석류그림은 원근을 거세한 듯 동양화적인 구도와 여백(餘白)에서 시간은 증발된지 오래다. 고요함을 빨아들인, 정물(靜物) 그대로다.

그의 작품 ‘석류’시리즈는 우연히 시골장터에서 본 붉은 석류의 강렬한 인상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한 알씩 밀도 있게 그려 새콤달콤한 느낌을 자연스럽게 전해준다. 홍매화를 그린 ‘공간-생명력’은 가장자리 꽃잎을 뿌옇게 처리해 중앙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빛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 매화 꽃잎은 건강한 생명력을 전달해 준다. 

또한 갯벌을 소재로 한 ‘풍경’시리즈는 무분별한 개발로 훼손되는 자연을 따뜻하고 온화하게 표현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주장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자연을 향한 은밀한 서정시

강 작가의 작품에 대해 장경화 광주시립미술관 학예관은 자연을 향한 은밀한 서정시라고 평가한다. 장 학예관은 강남구는 자연을 보는 2가지 미학을 동시에 선택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생물학적 재현의 미학으로 자연을 양식화나 관념적 표현이 아닌 눈에 보이는 사실적 재현으로 자연미의 탐구와 존중을 충실하게 담아낸다. 다른 하나는 자연의 대상을 사의적(事意的)으로 자아의 심미적 상태로 재해석하는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은 동양의 자연관 사상으로 자연과 자아의 합일치 ‘천인합일’ 사상이다.

또한 강 작가는 서양과 동양의 2가지 자연주의 미학 접근방식을 한 작품에 병행하는 예술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첫 번째로는 서양미학 교육으로 익힌 서구적 자연주의 미학을 기본으로 한다. 공간과 장소, 시간에 따라 자연의 감흥적 인상과 탐구로 근경을 밀도 깊은 분석을 통해 재현해내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그의 작품에 중심인 전경에 집중시켜 묘사해내고 있다. 꽃, 나무, 바위, 들판 등을 전경에 집중시키고 후경은 부연하여 배치한다. 최근 석류연작의 경우 후경을 단색 톤의 대담한 처리로 주제 강조에 충실하고 있다.

▲ 석류-2, 그의 석류그림에서는 청년의 땀 밴 등판같은 원시성을 본다. 더불어 선정적인 유혹도 같이 읽힌다.

두 번째로는 동양의 자연관이다. 그가 성장과정에서 영향을 받았던 환경과 감성, 정서 등은 그의 작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강 작가는 한 작품에 서양과 동양의 2가지 미학의 시각을 적절하게 농축시켜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고 자연을 감동적으로 그려가는 훈련을 거듭하여 왔다. 그 결과 동양적 문화정서에 바탕을 두고 서구의 자연주의 미학을 더욱 숙성시키는 독창적 화법은 서정적 감동의 설레임으로 자연의 생명력이 환생(幻生)되고 있다.

집요한 분석력과 묘사력

강 작가는 작품제작에 내용과 형식의 완성도를 높이는 장년기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시기에 그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부분은 자연의 본질에 대한 분석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묘사력, 그리고 작화기법이다. 

그는 작품 전경에 위치한 꽃, 나무, 풀 등을 집중적 분석을 통해 배치시키고 있다. 전경의 꽃잎, 풀잎, 들판 등은 하나하나 섬세한 묘사로 깊은 호흡을 하고 있어 자연생명의 존귀함에 입마추고 싶은 충동이 생겨날 정도로 사랑스럽고, 현대인의 각박한 정서를 순화시키기에 충분하다고 평가받는다. 지역화단에서도 이런 정 학예관의 평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 연작인 석류작품의 경우, 입안에 침이 고이는 신 맛이 강하게 느껴져 온몸을 휘감는 감동이 느껴진다. 그의 작품에서 섬세하고 집요한 자연의 존귀함을 분석 확장시켜 내는 탁월한 묘사력이 주목을 끄는 이유다

강 작가는 현 시대에 대해 자본을 앞세운 개발주의로 자연은 탐욕의 대상이 된 시대라고 판단한다. 그는 이러한 시대상황에 멍들고 지친 자연을 따뜻하며 온화한 미학으로 보듬고 어루만지면서 현대사회에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러한 무거운 주제를 그는 결코 무겁지 않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환상적인 미학으로 담아내고 있다. 

강남구는 이렇게 두려움과 아름다움, 슬픔, 즐거움 등의 무거운 주제를 자신의 예술적 해석을 통해 환상적이고 신비한 미학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머무르는 자연의 일상적인 풍경들을 담담하게 표현

강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작품에서 주된 소재는 순간순간 스쳐가는 마음이 머무르는 자연의 일상적인 풍경들이고, 이를 담담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면서 “풍경을 화폭에 새롭고 몽환적으로 시각화했으며, 그 공간들은 재해석된 일상적인 주변의 풍경과 대지의 끝과 바다의 경계에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앙상한 갈대의 분위기에서 삶과 죽음, 부드러움과 딱딱함을 여백이 있는 풍경과 함께 조화와 상생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대부분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에 집중하기 때문에 배경은 거의 무화되고 단순화되지만 나의 그림은 반대이다”면서 “전경(前景)을 위해 후경(後景)이 선택되는 것이다. 그림의 공간이 너무 멀다보니 마치 새벽안개나 노을에 둘러싸인 것처럼 그 공간은 몽환적인 신비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렇게 배경의 공간감을 극대화 시켜서, 화면의 깊이와 체감을 최대한 확보한다. 붓을 대기 전에 현장에서 보았던, 느껴진 감동을 가슴으로 상상을 하는데 그 상상의 대상은 꽃, 나무, 풀, 줄기, 갈대 같은 것이고, 그러한 것들은 그저 순간에 마주치는 ‘마음이 머무는 풍경’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강남구 작가는 조선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조선대, 전남대, 동신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작가는 94년 첫번째 전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8회의 개인전과 700여 회의 단체전과 초대전을 열었으며 올 가을에 서울과 광주에서 2건의 초대전을 가질 예정이다. 작가의 많은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 아트뱅크, 정부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외 다수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광주광역시전 초대작가 운영위원, 무등미술대전, 고양시 미술대전 외 다수의 심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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