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성, 개연성, 필연성
우연성, 개연성, 필연성
  •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17.02.2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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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몰락은 개연성에서 출발한 필연성
▲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우리는 가히 이야기의 바다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야기, 이야기 또 이야기.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동물이다. 인간의 삶은 한판의 이야기판인 셈이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삶이 단순할 때는 화자와 청자는 같은 장소에서 일상적인 말을 하듯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세상이 복잡해지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가 발달하면서 화자와 청자는 시공을 달리하여 이야기한다. 우리는 수천 년 전의 기록된 이야기를 읽을 수도 있고 수만 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이야기도 읽고 들을 수 있다.

이야기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다. 중국 사람들은 모든 이야기를 대설(大說)과 소설(小說)로 크게 양분했다. 대설은 사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이고, 소설은 사실과 거리가 먼 꾸며낸 이야기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설’도 이야기의 큰 분류법에 따른 ‘소설(小說)’에 속한다. 역사, 신화, 동화, 우화, 전설, 민담, 소화, 희극, 비극, 서사시, 소설 등 수많은 이야기의 갈래가 있다. 결국 이야기는 ‘어떤 사람이 어떠한 행동을 했다’라고 추상할 수 있다. 또한 좀 풀어서 말한다면 ‘어떤 성격 또는 특성을 가진 사람이 언제 어디서 어떤 행위를 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의 이야기 양식 중에 내 생각으로는 그리스 비극이 제일 윗길이라고 본다. 그리스 비극은 그 제재를 그리스 보통 시민인 관중이 잘 알 수 있는 신화나 전설에서 취재했다. 다시 말해서 관객이 비극의 내용을 훤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이야기의 줄거리를 훤히 알고 있는 사람에게 감칠맛나게 이야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에서 플롯을 비극의 영혼이라 말했던 것이다. 잘 아는 이야기라도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내는 기술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성격’을 플롯 다음으로 쳤고, 그 다음으로 ‘사고(또는 사상)’를 들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 비극은 우리보다 지체 높은 고귀한 사람이 어떤 운명 때문에 그의 선한 의지와는 다르게 점점 몰락의 길로 빠져들고 만다. 그래서 관객은 연민과 공포를 느끼고, 그 비극을 관람함으로써 정화(카타르시스)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선한 주인공이 비극적 결함(하마르티아) 때문에 기어이 몰락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이 부조리를 우리는 ‘비극적 아이러니’라 한다. 이 일련의 비극의 진행은 극히 절제된 구성과 대사, 그리고 코러스로 진행된다.

모든 서사물(이야기)은 시작할 때는 많은 개연성에 놓이게 된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그 개연성이 점점 필연성이 되어 마지막에는 그 필연성으로 끝맺어야 훌륭한 이야기가 된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소위 장편소설은 이야기의 크기가 다른 서사물에 비해 여유가 있기 때문에 우연성도 끼어들어 이야기의 핍진성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소설에 우연성이 많다고 탓하지 말라, 원래 소설(장편소설)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어 탄핵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비극적 인물일까 희극적 인물일까, 아니면 희비극적 인물일까? 나는 그녀의 성격이 착하지도 고귀하지도 않기 때문에 결코 비극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대통령직 탄핵은 어떤 음모의 세력들이 오랫동안 기획한 것이라는 회견을 보면 이건 희극적 성격의 표본이다. 그녀가 탄핵을 받은 것은 자업자득이지 누가 ‘엮은 것’은 결코 아니다.

희극의 주인공의 행동력은 우리와 비슷한 갑남을녀다. 자기 분수도 모르고 어느 평범한 초로의 아줌마처럼 자기는 잘못이 없고, ‘엮였다’니 측은한 마음까지 든다. 그녀의 몰락은 우연성도 아니고 개연성에서 출발한 필연성(탄핵)으로 귀결되는 스토리 라인(이야기의 진행성)인 것이다.

인간은 참 묘하다. 줄줄 새는 시간을 담겠다고 비록 얼멍얼멍하지만 이야기를 만들어 그 시간을 촘촘하게 다져나간다.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면 좀처럼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이 때를 위하여 우리는 “이야기여, 이야기여, 오 깊고 깊은 이야기여”라는 말을 남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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