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봄을 기다리며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7.02.2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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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대지는 겨울빛이다. 바람이 차다. 나무들도 발을 오그리고 있다. 이따금 먼 나라의 소식인 양 내가 사는 마을에는 눈이 내리기도 한다. 눈에 덮인 대지는 흡사 시트자락을 덮어놓은 설치 미술 작품을 보는 듯하다.

하얀 천에 덮인 대지의 윤곽이 영락없는 야외 작품이다. 추위가 찬 손을 집어넣듯 옷 속으로 파고든다. 그때마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손바닥을 펴들고 공기를 만져본다. 봄의 기미가 쬐금이라도 느껴지는지 하고.

겨울이 없으면 봄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일 년 사계절의 맨 첫 계절을 겨울이라 한다. 겨울이라는 봄의 회임 기간이 먼저 있어 가지고 찬란한 봄이 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하고 사계절을 배치하면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겨울이라는 잉태의 계절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봄이 태어난다.

과실이 열리는 여름 다음에 봄이 오는 것은 맞지 않다. 마찬가지로 과실이 익는 가을 다음에 바로 봄이 올 수도 없다. 만물의 길쌈이 끝난 가을이 지나고 준비 기간인 겨울을 보내야 봄이 오는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그렇게 신천지 같은 봄이 온다는 것은 세상 경험칙에도 맞지 않다. 아기를 낳으려면 임신 기간이 필요하듯 겨울을 지내고 봄이 오는 것이다.

영국 시인 P.B.셀리가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한 것은 진리다. 겨울이 먼저 오고 봄이 온다. 그래서 한해의 시작은 겨울이라고 보아야 한다. 고진감래라는 말에서 쓴맛의 고통이 있은 다음 단맛이 오는 것처럼. 단맛이 먼저가 아니다.

봄을 기다리는 것은 나만이 아니다. 혹한 추위를 견디고 있는 헐벗은 나무들, 흙 속에서 푸른 물감을 끌어 모으는 풀뿌리들, 그리고 산골짜기에 허옇게 얼어붙은 계곡물들, 그리고 땅 속에 굴을 파고 겨울 식량을 축내고 있는 오소리들, 잠자는 개구리들, 벌레들, 그리고 또 논둑 굴에서 하늘을 내다보는 종달새...이것들은 봄이 오면 마치 판도라 상자를 열어놓은 것처럼 일제히 천지를 무대로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몰론 우리 함평 천지에도 어김없이 그때 봄이 올 것이다. 피천득 선생은 나이 40부터는 여생(餘生)이라면서 ‘봄을 40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적은 축복은 아니다. 더구나 봄이 40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것이다.’라고 봄을 찬탄한다.

나 또한 이토록 봄을 기다려마지 않는 것은 그 봄을 맞기 위해 혹독한 40번의 겨울을 견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40번의 봄을 넘어 대체 몇 번이나 황홀한 봄을 맞이했던가. 되돌아보면 다행이요, 행복이요, 감사한 일이다.

아직 공기에는 봄기운이 만져지지 않지만 어디메 봄은 올 준비를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한 겨울 속에서 봄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모른다. 마치도 젊은 날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만일 설레임이 없으면 늙은 사람이다. 설령 그가 국가로부터 무료 전철 탑승권을 지급받은 노인증 소지자일지라도 그의 가슴에 봄을 기다리는 설레임이 있다면 그의 인생은 젊은 사람 부럽지 않을 것이다.

봄이 온다고 해서 내가 딱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슨 거창한 계획 같은 것도 없다. 어디로 놀러갈 궁리 같은 것도 없다. 봄이 오면 나는 그저 들로 나가볼 참이다. 봄이 와서 들판이 파릇파릇해지는 모양을 지켜보고 싶을 따름이다.

검은 흙에서 파란빛이 솟아나는 기적을 목격하고 싶을 뿐이다. 들새들이 울고 산골물이 졸졸 샛강으로 흐르고 보드라운 하늘이 차일처럼 펼쳐지고 영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뺨을 스치는 대지의 손길을 마주 잡아보고 싶다.

바람 끝에 묻어오는 향기를 코를 크게 하고 맡을 것이다. 그리고 대자연의 순리에 한 생명체로서 무한히 감사할 것이다.

사실 살아오면서 너무 자신을 혹사했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죽어라 공부하고 일하고 뒤처지지 말라는 ‘학대형 채근’를 받으며 살아왔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영혼 유린’과도 같은 몹쓸 일들이었다. 끊임없이 더, 더, 더 하라는 압박 속에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살아온 것이 후회된다. 왜 그렇게도 여유 없이 팍팍하게 살아야 했을까.

봄을 기다리면서 나는 학교나 사회보다 자연이 더 많이 깊은 것을 가르쳐준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봄을 기다림은 아무런 이해관계도 아니요,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요, 그것은 내가 살아 있음에 대한 선물 같은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모든 설레는 마음들에 축복이 있으라.

이렇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내 안에 가득할진대 아무도 내게 나라가 어떻다는 둥 이러쿵 저러쿵 하고 저자의 시끄러운 소식을 전하지 말아 달라. 어딘가에서 봄이 올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러니 그대는 설레어라. 그리고 맞이할 차림을 하라. 생전 처음으로 이 세상에 봄이 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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