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가 만난 사람-박기복 '임을 위한 행진곡' 영화감독
시소가 만난 사람-박기복 '임을 위한 행진곡' 영화감독
  • 정선아 기자
  • 승인 2017.02.2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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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는 무거우나 영화는 가볍게
"경험한 광주, 영화로 상상력을 통해 다르게 보여주고 싶다"
▲박기복 영화감독

최근 전일빌딩에서 헬기에서 쏜 총탄자국이 밝혀지면서 광주의 아픔이었던 5.18의 진실이 얼마나 더 감춰져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광주시민들은 지금까지도 5.18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이런 와중에 80년 5월, 야만의 역사를 영화적 진실로 추구하기 위해 영화 ‘임을위한행진곡’을 제작 중인 박기복 영화감독을 만났다.

▲영화감독이 되어 연출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 어렸을 땐 영화감독을 꿈꾸지 않았어요. 저에게 전혀 낯선 장르였죠. 학교 다닐 때 봤던 반공영화가 아는 영화의 전부였어요. 저의 꿈은 시인이었어요. 시를 좋아하여 중학교 때부터 시를 썼죠. 그러면서 광주 진흥고를 81년도에 졸업했어요. 80년 5월 당시엔 고2였죠.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이듬해에 좀 어린 나이로 영화소재공모회에 당선이 됐어요. 그러면서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되고 빨치산 연구에 관한 소설을 쓰게 됐죠. 하지만 마지막 원고를 내러 서울에 갔다가 남부군이라는 소설때문에 제 소설은 내지 못하고 우연히 서울예술대학 극작과로 입학하게 됐어요.

극작과는 문창과와 달리 희곡, 시나리오, 방송, 드라마를 전공하는데 시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죠. 시로 5월 문학상을 받으며 등단를 한 후, 이듬해 전남일보 신춘문예 희곡에 당선됐어요. 95년도에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공모전에 ‘임을위한행진곡’의 모태인 ‘화순에 운주가 산다’라는 시나리오가 당선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꽃잎’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의 작품을 만든 미라신코리아라는 영화회사의 전속작가로 지내면서 큰 작품은 하지 못하고 8년 정도 지내다 회사를 옮겼어요.

그 후 한일공동드라마 미니시리즈를 기획하며 웹드라마의 시초인 모바일드라마로 일본에서 꽤 히트를 쳤어요. 유료TV에서 계속 1위를 했으니까요. 국내에선 판권 때문에 방송을 못했지만요.

본격적으로 영화감독 준비를 했지만 계속 프로젝트가 엎어졌어요. 마지막으로 지난 2013년도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에서 진행한 5.18 지정부문 시나리오에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보내며 당선됐죠.

공식적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의 모태인 95년 ‘화순에 운주가 산다’라는 시나리오가 21년이란 세월동안 각색·일색·탈색을 거치면서 탄생한 거죠.

요즘 추세는 감독과 작가를 한 사람이 하는 겁니다. 각색 작가를 따로 붙이긴 하지만 감독이 글을 쓰고 자기가 연출하는 거죠. 감독과 작가를 한 사람이 한다면 자신이 쓴 작품의 감정선을 그대로 안고가기 때문에 내용이 탄탄할 수밖에 없어요. 작가 생활을 한 사람들은 일정부분 연출에 대해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지 욕망을 갖고 있죠.

▲영화 '임을위한행진곡' 스틸컷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알려 달라

- 제가 지내온 환경이 가장 민감했던 청소년 시기에 광주에서 80년을 맞이했고, 거기에 대한 강렬한 기억으로 트라우마를 안고 살 수밖에 없었죠.

역사는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어요. 사실로써의 역사와 기록으로써의 역사. 광주로 이야기 한다면 도청, 금남로, 계엄군, 학살, 이게 전부 사실이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바라본 시각에 따라 역사의 기록은 달라지는 거거든요. 광주라는 거대한 담론을 이 영화에 다 담아내는 건 불가능해요. 제가 경험하고 바라봤던 광주도 사실로써의 역사이지만 영화로 상상력을 통해 다르게 보여주고 싶어요.

이 영화는 장갑차, 시민군, 계엄군, 총격 등의 80년 5월 모습이 전혀 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독특하고 실험적인 특징으로 표현했어요. 영화는 항상 새롭고 신선해야하기 때문이죠. 확실히 학살의 만행만큼은 놓치지 않았어요.

▲영화 내 캐릭터들의 특징이 특이하다. 이러한 가정을 넣은 이유가 있다면

- 소재는 무거우나 영화는 무겁지 않아요. 이야기의 흐름과 캐릭터는 나름 유쾌 발랄하고 웃기면서 슬프고 웃픈 영화예요.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가족 휴먼드라마죠. 엄숙하고 진지한 상황에서 유머를 집어넣음으로써 잔인함과 진지함을 강하게 가는 저만의 연출 방식입니다.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살아가는 엄마와 개그우먼 딸의 밸런스가 안 맞죠. 이런 게 영화고 캐릭터예요. 엄마 캐릭터는 머리에 총알이 박혔지만 겉으로 발랄하고 속으로는 발랄하지 않죠. 개그우먼 딸도 웃길 것 같지만 상당히 진지해요. 역발상이죠. 어떠한 공연 예술의 캐릭터는 역발상으로 가야해요. 소설도 재미가 없으면 보지 않죠.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관객들의 표 값이 아깝지 않게 하는 게 영화인의 의무랍니다.

▲남자 주인공 철수가 부산 사투리를 쓰는 이유는?

- 70년대에 들어서 산업화가 진행되며 공업도시 부산으로 광주사람들이 돈을 벌러 가요. 거기서 여자를 만나 남자 주인공 철수가 태어나죠. 부모들을 일찍 여윈 철수는 청소년기에 아버지의 고향인 광주로 내려와요. 그러니 부산 사투리를 쓰죠.

단순히 영호남 문제를 떠나 부마항쟁과 5.18은 역사적으로 형제라 말할 수 있어요. 부마항쟁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항쟁이 있었고 같이 가는 거죠.

역사적으로 환경적으로 모든 것이 맞아요. 이 영화가 사회화합과 가정의 화합이거든요. 지금 안 그래도 어려운데 함께 가야 하는 취지에도 맞고요.

▲진실규명이 아직 되지 않은 5.18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 스토리펀딩 2차에 띄웠던 영상의 첫 장면이 전일빌딩 헬기 총격 장면입니다. 미완으로 남아 아직까지 학살의 책임자가 법적으로 없어요. 학살의 발포명령자와 전일빌딩 총탄자국이 영상에서 중요하게 대조될 수밖에 없죠.

과거의 잘못은 반성해야 미래가 있는 거거든요. 그냥 덮어두자는 것은 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합니다. 반성하고 좀 더 미래지향적인 정확한 규명을 하자는 거예요.

5.18은 개인이 개인에게 한 폭력이 아닌 국가가 제 나라 국민들에게 가한 폭력입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문구가 떠오르네요.

▲제작하는데 많은 장애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해결 방안이 있다면

- 감독들은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고 싶은 게 꿈입니다. 제작비의 열악함을 핑계로 대고 싶지는 않아요. 스펙타클한 장비 없이도 그 안에서 진정성을 보여주면 좋은 작품으로 흥행하게 될 겁니다.

평생 작가로 글만 써오다 보니 영화 제작의 시스템을 아무것도 몰랐어요. 많은 시행착오로 아팠고 순탄하지 못했죠. 하지만 운이 좋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주변인들이 도와주고 호응해줬네요.

제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이란 노래도 어떻게 보면 블랙리스트에 가깝죠. 기념식 행사에서 못 불러진다는 것은 블랙리스트나 다름없으니까요.

영화라는 것이 좋은 시절에 만들어지면 좋죠. ‘꽃잎’은 김영삼 정부 때, ‘화려한 휴가’는 노무현 정부 때에 만들어졌어요. 물론 그 자체로도 가치 있죠. 저는 현 독재정권 때에 나서서 만든다는 것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봤어요.

당초 60억 원으로 예상됐던 총 제작비는 투자자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죠. 제작 중단까지 됐고요. 하지만 배우 김부선씨와 광주출신 이한위씨는 물론, 촬영·조명 등 스텝들까지 재능기부로 참여하면서 30억 원까지 제작비를 줄일 수 있었어요. 그래도 제작비가 부족하여 시민모금과 투자자 모집에 나서게 됐어요. 우연찮게도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으로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후원금들이 많이 들어오게 됐죠.

스토리펀딩이 잘 되면 흥행도 잘 되기 마련이에요. 지난 1차 스토리펀딩 때 47일간 7천만 원에 가까운 후원금을 모금했고, 이번 2차 스토리펀딩을 지난 19일에 올렸는데 227명이 넘게 후원을 해주셨어요. 상당히 짧은 시간에 많은 참여를 보이고 있죠.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귀향’보다 훨씬 현대에 가까운 현대사이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독재와 민주의 싸움 속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호응해주지 않을까 싶네요.

스토리펀딩 후원과 더불어 광주시와 화순군에서 많은 협조로 도움을 받고 있어요. 지난 2월10일 광주시 제2호 아시아 문화산업 투자조합이 결성됐어요. 100억 규모로 조성된 투자조합 결성으로 광주지역 문화산업이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제작사 측은 이번에 결성된 2호 투자조합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고요.

개봉은 어찌됐든 정확한 날짜는 아니지만 5월에 할 생각이에요. 조기대선 이후 약 보름 후를 예상합니다.

▲제작하며 힘들었던 점과 재출발에 대한 각오가 있다면

- 이번 영화에 가장 어려운 것은 배우들이 춥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80년 광주로 돌아가야 하는 거예요. 계속 시나리오를 읽히고 리딩 시키며 주문을 걸어요. “넌 80년 5월에 광주에서 삶을 살고 있다”고 말이죠.

재능기부에 가까운 이러한 배우들에게 제대로 돈을 못주는 게 제작자 입장으로 많이 아프고 미안한 마음이 들죠.

영화감독을 시작하며 상당히 짧은 시간에 많은 삶을 배웠어요.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감독이란 일은 상당히 고독해요. 잘되든 못되든 모든 책임을 혼자 다 져야 하거든요. 약한 모습을 스탭들에게 보여줄 순 없잖아요. 그래서인지 잠이 오질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네요.

아직 꽃도 피어보지도 않은 상태인데 가지가 휘었다고 싹을 잘라버리는 것은 옳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을 거예요. “대기업 돈도 안 받고 영화 찍을 수 있을까?”라면서요. 이전에 좀 더 따뜻하게 기사를 다뤄주시고 사람들을 모아준 후, 그 결과물에 비판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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