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7) 춘일강상즉사(春日江上卽事)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7) 춘일강상즉사(春日江上卽事)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02.2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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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려다 홀연히 멀리 날아가 버렸네

원앙은 사랑 표현이 많은 조류다. 그래서 원앙새라 했고, 원앙금침이란 말도 스스럼없이 생겨났을 것이다. 사랑 표현이 부족한 사람에게 ‘원앙의 그림자만이라고 닮아봐라’라고 했다. 사랑이 메말라버린 사람은 원앙의 모습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하루아침에 변하는 선현의 작품도 우리는 더러들 읽곤 했다. 활동하기에 좋은 어느 봄날 강 위에서 원안 한 쌍이 마주보며 사랑의 밀어(密語)를 속삭이다 그만 고개 돌리는 장면을 보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春日江上卽事(춘일강상즉사) / 몽암 이혼

바람 멎고 강물 맑아 작은 배 오르니

두 마리씩 원앙새들 마주 보고 있는데

사랑도 뿌리쳐버려 머리 돌려 돌아보네.

風定江淸上小舟 兩兩鴛鴦相對浮

풍정강청상소주 양량원앙상대부

愛之欲近忽飛去 芳洲日暮謾回頭

애지욕근홀비거 방주일모만회두

 

사랑하려다 홀연히 멀리 날아가 버렸네(春日江上卽事)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몽암(蒙菴) 이혼(李混:1252~1312)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바람이 멎고 강물이 맑아 작은 배에 오르니 / 두 마리씩 원앙새들 서로 마주하고 있네 // 가깝게 사랑하려다가 홀연히 날아가 버리니 / 꽃다운 섬엔 해가 지고 있는데 느릿느릿 머리를 돌리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봄날 강가의 풍경을 보며]로 번역된다. 시인은 어느 날 강가를 거닐고 있었다. 불던 바람도 멈추고 강물이 하도 맑아 작은 배에 올랐더니 두 마리씩 마주 하는 원앙새들이 서로 마주 쳐다보며 있었다. 짝짓기를 하는 등 서로 사랑을 속삭이려는 참이었던 것 같다. 낯선 손님이 빈 배에 오르더니 자기들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고 날아가 버린 상황에서 시상을 떠올렸다.

한가한 시간을 틈낸 시인은 그만 무아지경에 빠지고 만다. 원앙이 짝짝이 짝을 지어 노는 새로운 풍경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바람이 멎고 강물이 맑아 작은 배에 오르니 두 마리씩 원앙새들 서로 마주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시인은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모양도 구경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고 싶어 배에 올랐다.

아뿔싸! 이걸 어쩐담. 화자가 정작 보고자 하는 진풍경은 헛수고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가만히 그 풍경을 보고자 배에 올라타자마자 원앙새는 짝지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화자는 꽃다운 섬엔 해가 지고 있으니 이제는 발길을 돌리려는 시상을 남기게 된다. 진풍경을 놓친 섭섭함을 담고 있는 시상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바람 멎고 배에 오르니 원앙새들 마주하네, 사랑하려다 날아가니 머리 돌린 서산 해는’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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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몽암(蒙菴) 이혼(李混:1252∼1312)으로 고려의 문신이다. 성품은 너그럽고 후했으나, 워낙 빈객을 좋아하고 거문고와 바둑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진다. 시문에 능하고, 시와 문장이 청아하고 간결했으며 영해에 귀양 갔을 때 지은 [무고]가 <악부>에 전한다.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한자와 어구】

風定: 바람이 멎다. 江淸: 강물이 맑다. 上小舟: 작은 배에 오르다. 兩兩: 두 마리. 鴛鴦: 원앙새. 相對浮: 서로 마주하고 떠 있네. // 愛之欲: 사랑하려고 하다. 近: (사람이) 가깝게 하다. 忽飛去: 홀연히 날아가다. 芳洲: 꽃다운 섬. 日暮: 해가 지고 있다. 謾: 느리게. 回頭: 머리를 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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