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호남선비, 하서 김인후(2)
길 위의 호남선비, 하서 김인후(2)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02.2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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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산(卵山)에서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 난산(卵山)에서

백화정에서 앞을 바라보니 산과 산 사이에 계란 같이 둥그런 동산이 하나 보인다. 이름 하여 난산(卵山)이다.

백화정에서 맥동마을 쪽으로 조금 가다가 좌회전하여 2분 정도 가니 난산 입구에 이르렀다.

난산 입구에는 비각이 하나 있다. 바로 난산비각이다. 거기에는 ‘난산지비’라고 적힌 비가 세워져 있다. 옆에는 ‘장성 김인후 난산비’라고 표시된 안내판이 있다. 여기에는 “하서 선생은 인종이 승하하신 7월1일이면 이곳 난산에 엎드려 종일 통곡하였다"고 적혀 있다. 

하서의 이 같은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단이 통곡단(痛哭壇)이며, 그 사실을 새겨 세운비가 난산비이다. 1793년 무렵에 윤행임이 비문을 지었으나 비를 세우지 못하였는데, 1843년 아들 교리 윤정현이 추기(追記)를 쓰고 광주목사 김철영이 비를 세웠다.”라고 적혀 있다.

▲난산비

여기에서 2-30 걸음 걸으니 통곡단이 있다. 아, 이곳이 바로 김인후가 인종임금 기일(忌日) 때마다 통곡하던 곳이로구나.

▲통곡단

김인후는 1540년(중종 35)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로 벼슬을 시작했다. 1541년에는 호당에 뽑혀 이황, 나세찬, 임형수 등과 사가독서(유능한 문신들을 뽑아 휴가를 주어 독서당에서 공부하게 하는 일)의 영광을 누렸다.

1543년에는 홍문관 박사 겸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설서(說書 정7품)에 임명되어 인종(1515∽1545)과 인연을 맺었다.1)

이 때 김인후의 나이는 33세, 인종은 28세로 인종은 김인후보다 5살 아래였다.

인종은 이름은 호(岵)인데 1515년 태어날 때부터 불행하였다. 모친 장경황후가 그를 낳은 후 산후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는 3세 때부터 글을 읽기 시작하였고, 5세인 1520년(중종 15)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1522년에 관례(冠禮)를 행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매일 세 차례씩 글을 읽었고, 화려한 옷을 입은 시녀를 궁 밖으로 내쫓을 만큼 검약한 생활을 할 정도로 성군으로서의 자질을 가졌다.

한편, 인종은 김인후를 극진히 사랑하여 묵죽도를 그려주었다. 이 그림은 바위가 하나 있고 그 근처에 대나무가 네그루 있다. 그런데 대나무 한 그루는 너무 휘어져 넘어지려 하는 모습이다.2)

하서는 이 그림 아래에 칠언절구 시를 썼다.

<묵죽도에 쓴 시>

뿌리와 가지, 마디와 잎새가 모두 정미하니

바위를 친구삼은 정갈한 뜻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임금님의 조화를 바라는 마음 비로소 보았나이다.

온 천지가 어찌 어김이 있겠습니까.-신(臣) 김인후

根枝節葉盡精微 근지절엽진정미

石友精神在範圍 석우정신재범위

始覺聖神侔造化 시각성신모조화

一團天地不能違 일단천지불능위

또한 새로 간행된 '주자대전' 한 질을 주었으며 술도 같이 마셨다.3)

▲목죽도

주1) 세자시강원은 세자의 교육을 담당했던 관청으로서 세자를 모시고 경사(經史)를 강독(講讀)하며 도의를 바르게 계도하는 일을 관장한다. 관원으로는 영의정이 겸임하는 사(師:정1품) 1명, 부(傅:정1품) 1명, 이사(貳師:종1품) 1명, 좌·우빈객(左右賓客:정2품) 각 1명, 좌·우부빈객(종2품) 각 1명은 겸직하고, 찬선(贊善:정3품)·보덕(輔德:정3품)·겸보덕(정3품)·진선(進善:정4품)·필선(弼善:정4품)·겸필선(정4품)·문학(文學:정5품)·겸문학(정5품)·사서(司書:정6품)·겸사서(정6품)·설서(說書:정7품)·겸설서(정7품)·자의(諮議:정7품) 각 1명을 두었다.

2) 인종이 내린 묵죽도는 판각되어 필암서원 장경각에 보존되어 있고, 원본은 국립광주박물관에 위탁 보관되어 있다.

3) 주자대전은 중국 남송의 유학자인 주희(1130∽1200)의 시문집이다. 원집 100권 87책, 속집 11권 4책, 별집 10권 4책으로, 총 21권 95책을 이룬다. 우리나라에서는 1543년(중종 38) 을해자로 간행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인종의 주자대전 하사는 김인후에 대한 두터운 신임을 말해주는 것으로서, 김인후는 이 책에 붉은 점을 쳐가며 정독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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