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아주머니
출근길의 아주머니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7.02.1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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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 아침이다. 출근하려고 버스에 올랐는데, 버스의 중간쯤 좌석에 앉은 50대쯤 되어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잠에 취해 머리가 수그러지면 다시 곧추 세우는 모습이 눈에 뜨였다.

대통령의 유고 뉴스에 승객들 모두가 긴장되고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들로 앉아 있는데 행색이 꾀죄죄한 그 아주머니는 생활에 찌든 모습으로 내내 졸고 있었다. 대통령이 죽었다는 뉴스도 생활의 곤궁을 헤쳐가려는 그 아주머니의 생의 고달픔에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소식에 지나지 않는 듯했다. 대통령 유고보다 더 절실하고 큰 문제가 그녀에겐 있었으리라.

나는 그 후로 귀에 들어오는 아무리 큰 뉴스라도 생활에 치인 사람에게는 가까이 닿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으로 나라가 뒤숭숭하고 온갖 미디어가 난리 난 듯 떠들어도 생업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뉴스’로 치부되는 느낌을 받았다.

식당이나 카페, 옷집 같은 소규모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하루 벌어먹기에도 바쁘다. 사실 그 사람들에게는 경기가 풀려 장사가 잘 되는 것이 일차적인 소원일 뿐 대통령 탄핵이 어떻게 되든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그런 사람들을 탓하거나 나무랄 생각은 전혀 없다.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들에겐 정치가 어찌 되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건 저만치 있는 먼 산 바라기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있어 필사적인 것으로 그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이 있겠는가. 나는 몇십 년 전 버스에서 보았던 졸고 있던 아주머니의 이미지를 요즘 다시 본다.

지금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고, 자영업은 안 되고, 결혼도 미루고, 아기 낳기를 꺼려하고, 이것이 눈앞에 보이는 삶의 생생한 현장이다. 사람들은 가혹한 현실 앞에 방기되어 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화가 치민다. 요체는 정치에 달려 있다.

일찍이 공자는 정치의 중요성을 유명한 에피소드를 들어 강조했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가고 있을 때, 세 무덤 앞에서 한 여인이 울고 있었다. 공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여인은 흐느껴 울며 말했다. 옛적에 시아버지와 남편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는데 이번에는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변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공자가 여인에게 호랑이가 출몰하는 이런 위험한 나라를 왜 떠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여인은 ‘이곳은 세금을 혹독하게 징수하거나 부역을 강요하는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공자는 이때부터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고 한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가렴주구(苛斂誅求) 라는 말이 이때부터 나왔다고 한다.

정치는 이처럼 중요하다. 대권을 쥐겠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들 한다. 그런 말들이 미덥지 않게 들리는 것은 어인 까닭일까. 지금 나라는 난파된 선박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태다. 공자 시절처럼 세금을 많이 거둔다고 해서 가혹한 정치가 아니라 나라를 잘못 이끄는 것 역시 가혹한 정치다.

사실 작년 기준으로 세금을 10조를 더 거두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지금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생활 전선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데 정치가 손을 놓고 있으니 불안하기만 하다. 나라 형편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첫 번째로 대통령과 여당이 책임을 져야 하고, 다음으로는 국회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마치 재 묻은 자가 뭐 묻은 자를 욕하는 것처럼 마치 자기들은 책임이 전혀 없는 것처럼 삿대질을 하며 떠들어댄다.

정치권 전체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일신할 대책을 마련하는 진정성을 보일 때 국민도 다시 소매를 걷어붙이고 희망을 생산할 것이다. 그렇거늘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져 국민 편 가르기를 하는 정치인들이란 대체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모두들 한 걱정이다. 나라가 어찌 돼가는지 서로들 묻는다. 지금 상황에서 어느 누가 그 답을 알겠는가. 이런 아수라장 같은 판에 눈을 밖으로 돌리면 중국은 사드를 빌미로 무역 장벽을 높이 세우고, 북한은 심심하면 미사일 발사로 으르렁거리며, 미국과 일본은 어깨동무를 하고 잘해보자고 한다. 우리만 멍하니 손을 놓고 있다. 광장에는 촛불과 태극기가 편 가르기로 시끄럽다.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는 어려워도 망하기는 쉽다고 한다. 내가 지나치게 나라 걱정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되어가는 대로 살면 되지 별 수가 있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욱 내 심기가 불편하다. 내 짧은 소견으로는 촛불도 태극기도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조용히 헌재의 결정을 기다렸으면 한다.

헌재가 어떤 판결을 하건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라를 정상으로 돌려 세우고 달려가도 우리에겐 갈 길이 멀다. 그만큼 엄중한 시기다. 국민 편 가르기로 날을 새는 동안 아침 출근길에 졸면서 일터로 가는 수많은 아주머니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국민 편 가르기는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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