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5) 춘색(春色)②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5) 춘색(春色)②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02.0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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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독에 가득한 탁주에 마음을 붙여 가며

춘색이 짙어지면 봄노래가 절로 나운다. 옷을 벗었던 나무들도 다투어 푸른 옷을 갈아입는다. 그래서 한껏 봄의 흥취도 느꼈음은 분명했으리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백주에 곡주 한 잔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그는 ‘애오라지(聊)’를 연발해 본다. 마음에 흡족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겨우 탁주나 한 잔 하자는 심회를 담게 된다. 자작(自酌) 하기는 조금은 쑥스러웠던 모양이다. 아이를 불러 [너는 따르라 나는 마시리]를 연발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春色(춘색)② / 운재 설장수

   
 

흰 눈에는 보이는 것 없는 듯도 하겠지만

푸른산은 정이 가득 있는 듯도 하는 구료

탁주에 마음 붙이며 다시 잔을 기운다네.

白眼如無見                      青山似有情

백안여무견                      청산사유정

濁醪聊適意                      時復喚兒傾

탁료료적의                      시부환아경

 

술독에 가득한 탁주에 마음을 붙여 가며(春色②)로 제목을 붙여본 율의 후구인 오언율시다. 작가는 운재(芸齋) 설장수(偰長壽:1341~1399)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흰 눈에 보이는 것 아무 것도 없는 듯도 한데 / 푸른 산은 오히려 정이 가득 있는 듯도 하여라 // 애오라지 술독에 가득한 탁주에 마음이나 붙여 가면서 / 때때로 아이를 불러서 다시 잔을 기울려 보리라]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춘3월 따스한 봄볕2]로 번역된다. 전구에서 시인이 읊은 시심은 [봄빛은 천지에 완연한데 / 강회에는 아직 전쟁이라네 // 부질없이 시로 세월 보내고 / 세상의 공명일랑 부러워하지 않겠네]라고 하면서 공명을 부러워하지 않겠다고 쏟아냈다. 시를 지으면서 세월을 보내고 부운과 같은 세상의 공명을 부러워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려는 시인을 만나는 것 같다.

전구에 이어지는 위 시에서도 시인의 안빈낙도의 한 모습을 본다. 흰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는 듯 그렇게, 푸른 산은 정이 있는 듯 그렇게 살고 싶다는 심회를 밝히고 있다. 흰 눈은 아무렴 해도 세상에 때 묻지 않는 자연에로 몰입(沒入)이겠다. 곧 거짓과 속임도 없는 그런 새로운 세상을 뜻하고 있다고 하겠다.

화자는 자연과 더불어 하면서도 때때로 탁주는 마시며 마음을 붙여 보려고 한다. 술을 혼자 마시기는 하겠지만 동양의 풍습이 권커니 받거니 하는 것이 주도 아닌가 싶다. 그래서 화자는 아이를 불러 술을 따르라고 하고 싶었겠다. 이처럼 화자는 시를 짓고 자연과 벗 삼으면서 인생을 가장 멋있게 지내고 싶었으리.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흰 눈 속에 보이잖고 푸른 산은 정만 가득, 술독 탁주 마음 붙여 아이 불러 잔 기울리라’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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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운재(芸齋) 설장수(偰長壽:1341~1399)로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1360년 부친상을 당했는데, 서역인임을 감안하여 왕이 특별히 상복을 벗고 과거에 나아가게 하였다. 1362년 급제해 판전농시사에 오르고, 왜구를 퇴치할 계책을 올렸으나 시행되지 못하였다.

【한자와 어구】

白眼: 흰 눈. 如: ~하듯. ~같다. 無見: 보이는 것이 없다. 青山: 청산. 似: ~하듯이. ~같다. 有情: 정이 있다. // 濁醪: 탁주. 곧 막걸리. 聊: 애오라지. 마음에 부족하지만 겨우. 適意: 마음을 붙이다. 時: 때때로 復: 다시. 또. 喚兒: 아이를 (오라고) 부르다. 傾: 한 쪽으로 기울다. 술을 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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