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호남선비, 금호 임형수(3)
길 위의 호남선비, 금호 임형수(3)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02.0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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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豪氣)의 선비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임형수는 시문(詩文)에도 뛰어 났다. 1537년에 중종이 서울 서쪽 교외에 행차하여 농사일을 시찰하고 망원정에서 시 한 편을 짓게 했는데, 병조판서 소세양이 1위를, 임형수가 2위를 하여, 임형수는 사서삼경과 말 1필을 하사 받을 정도로 문예가 뛰어났다.

그의 시는 허균의 '학산초담'이나 '성수시화'에 실릴 정도로 걸작이었다. 허균은 임형수의 호방한 시를 칭찬하면서 그가 원통하게 일찍 죽은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임형수는 풍류가 호일하고 그 시 또한 펄펄 나는 듯하였다.

고개 숙인 꽃은 술에 취한 미인의 얼굴이요. 花低玉女酣觴面

끊어진 산은 바닷물 마시는 푸른 용의 허리로다. 山斷蒼虯飮海腰

이 시는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퇴계 선생이 그를 몹시 사랑하여 만년까지도 문득 생각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어찌하면 임사수와 더불어 서로 대면할 수 있으랴."

- '성수시화'에서

윤근수는 '월정만필'에서 임형수의 호방함과 퇴계 이황(1501∽1570)과의 관계를 이렇게 적고 있다. 1)

임형수는 너무 일찍 과거에 올라 갑작스럽게 화려한 벼슬을 지냈다. 성격이 호방하여 얽매임이 없었으므로 호기를 부려 사람들을 만만하게 보아 아무리 선배이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도 거만한 말로 대하였는데, 다만 이황만은 존경하여 함부로 하지 않았다.

일찍이 신잠이 그린 대나무 그림에 금호 임형수가 지은 시는 이렇다. 2)

영천(靈川)의 붓으로 그린 푸른 대나무 그림에는

소상강 어귀의 높은 지조가 눈과 달빛 속에 차구나

시인을 골라 보면 누가 이와 비슷할까

맑고 수척한 모습, 마땅히 퇴계와 함께 보리라.

이렇듯 임형수는 퇴계를 존경하는 태도가 극진하였다.

한편 호걸 임형수는 죽어서도 일화를 남기고 있다. 먼저 '해동잡록'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지사 강섬(姜暹)이 명나라 서울을 가다가 명나라에 공문을 바치러 가는 되놈을 만났는데 거의가 우리나라와 가까이 지내는 자들이었다. 우리 통역에게 물어 보기를, “너의 나라에 임형수란 이는 지금 잘 있느냐?” 하니, 미처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되놈들은, “임형수란 분은 참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너의 나라에서 이 사람을 죽였다기에 그 사실 여부를 물어본 것이다” 하니, 통역은 대답하지 못하고 말았다.

야담집 '기문총화'에는 주인의 원수를 갚은 말 이야기가 있다.

임형수를 모함하여 죽게 한 정언각이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는데 말을 타다가 말에서 떨어졌다. 한 쪽 다리가 등자에 걸렸는데 말이 마구 날 뛰면서 걷어차서 크게 다치었다.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통쾌해하고 하늘이 아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가 탔던 말이 바로 임형수가 항상 타고 다니던 말이었다.

문묘에 배향된 호남 유일의 선비 하서 김인후(1510∽1560)는 임형수의 죽음을 슬퍼하며 시조를 지었다. 3)

엊그제 버힌 솔이 낙락장송(落落長松) 아니런가.

져근덧 두던 들 동량재(棟樑材) 되리러니

어즈버 명당이 기울면 어느 나무 버티리.

임형수의 신위는 나주시 문평면 송재사에도 배향되어 있다. 나이 33세에 희생당한 동량재 금호 임형수. 그는 정녕 문무를 겸비한 호걸 중에 호걸이었다.

주1) <월정만필>은 월정 윤근수(1537∽1616)가 지은 것으로, 윤근수가 보고 들은 명사들의 시문과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주2) 신잠(申潛 1491∽1554)은 신숙주의 증손자로서 호가 영천자이다. 1519년 현량과에 천거를 받아 예문관 검열로 있다가 1521년 10월 신사무옥에 휘말리어 장흥에 유배되었다. 그는 다시 경기도 아차산 근처로 이배되어 20년 가까이 유배를 살다가 복직되었다. 이후 그는 태인현감(1548년), 상주목사(1552년)가 되었는데 선정을 베풀었다 하여 청백리에 녹선 되었다. 신잠은 시를 잘 짓고 행서(行書)를 잘 쓰며 대나무 그림을 잘 그렸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삼절(三絶)이라고 일컬었다.

주3) 임형수는 나이 22세에 독서당에 들어가 김인후, 이황, 나세찬등과 인연을 맺었다. 이황과 임형수의 인연은 이상하의 저서 <퇴계생각>에 자세히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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