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을 찾아서(27)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17호 남도의례음식장 이애섭
남도의 멋을 찾아서(27)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17호 남도의례음식장 이애섭
  • 박창배 기자
  • 승인 2017.01.1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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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손맛, 맛을 넘어 남도의 멋으로
▲ 설날상차림

설음식하면 떡국이 떠오른다.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한 살을 먹는다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역마다 준비하는 설음식은 다르다. 충청·전라·경상도 등 남쪽 지방은 떡국을 차리고, 함경·평안·황해도 등 북쪽 지방은 만둣국을 올린다. 서울·경기 지역은 떡만둣국을 먹었다.

떡은 쌀로 만들고 만두는 밀가루로 만든다는 것을 보면 쌀농사의 경계지역으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재료가 달랐지 설음식으로 먹는다는 점은 같다.

▲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17호 이애섭 남도의례음식장

종갓집 며느리에서 음식 명장이 되기까지

설상차림과 일반 제사상차림의 큰 차이는 떡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5대조모 장흥고씨로부터 남도의 전통음식 계보를 잇고 있는 울산김씨의 종갓집 며느리 이애섭 남도의례음식장에게 남도의 설상차림과 설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애섭 음식장은 2006년 2월에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17호로 지정되어 남도의례음식장이 됐다.

전남 보성이 친정인 이애섭 음식장은 장성에 있는 종갓집으로 중매 결혼해 왔다. 평생 성주이씨 종가에서 부엌일을 하던 친정어머니는 큰딸만큼은 종갓집에 시집을 보내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조부께서 살아생전 손녀딸 시집가는거라도 봐야겠다는 말씀에 스물한살에 장성 사는 울산김씨 장손과 결혼하게 됐다”면서 “친정어머니가 중매쟁이에게 제일 먼저 물어본 말이 1년에 제사 몇 번 지내느냐고 물어봤을 정도였다”고 했다.

중매쟁이는 친정어머니의 물음에 3번 있다고 말했는데 시집와서 보니 7번이었다고 옛 일을 회상했다. 4대손까지 제사를 모시는데 다행히 시어머니께서 살아계셔 7번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이애섭 음식장은 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제사뿐만 아니라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상도 친정어머니가 차릴 때 거들곤 했는데 그대로 이어져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편이 도의원과 조합장을 지내면서 손님들의 왕래가 잦았다.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의 상차림은 본인의 몫이었다.

친정 보성은 바닷가였지만 이애섭 음식장이 살던 곳은 산골이었고 시집 온 장성도 산골이어서 음식 재료가 그다지 다른 점은 없었다고 한다.

▲ 폐백 봉황

손님치례도 하고 종갓집 음식도 만들다보니 어느덧 애들도 자라나 손길이 덜 갈때쯤 장성에서 음식솜씨를 뽐낼 기회가 있었다. 물론 음식솜씨가 좋다는 소문으로 친척이나 친구들 부탁으로 혼례음식도 만들어 주곤 했다. 1996년 순천 낙안읍성에서 열린 제3회 남도음식축제에서 장성군 대표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대외적으로 이애섭 남도의례음식장의 명성을 알리게 됐다. 폐백음식으로 마른 오징어와 문어를 오려 만든 봉황은 남도의 맛을 넘어서 멋스러움의 결정판이었다.

점점 더 명성이 알려지면서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음식을 재현하게 됐다고 한다.

▲ 정과모듬

대추, 밤, 감, 배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한다'는 속담에서 볼 수 있듯이 제사는 집집마다 지내는 방법이나 음식들이 약간씩 차이가 난다. 표준가정의례준칙을 만들어 보급하기도 했지만 지나친 허례허식만 아니면 된다.

제사나 차례상에 꼭 빠지지 않는 음식이 있는데 차례상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는 대추, 밤, 감에 담겨 있는 전통적인 의미가 있다.

조율이시(棗栗梨枾)라고 하여 대추, 밤, 배, 감, 사과 순(順)으로 놓으며 기타 포도 귤 등은 순서에 관계없이 놓는다.

대추는 자손의 번창을 뜻한다. 한 나무에 열매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열리며 꽃 하나가 피면 반드시 열매 하나가 열리고 나서 꽃이 떨어진다.

밤은 자손이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있음을 뜻한다. 씨 밤이 땅속에 묻혀 생밤인 채로 뿌리에 달려 있다가 나무로 자라서 씨앗을 맺어야만 씨 밤이 썩는다. 그래서 밤은 자기와 조상의 영원한 연결을 상징한다.

감은 씨앗을 심으면 고욤나무(3~4년 된 고욤나무에 감나무 접순을 접목하면 우리가 먹는 감이 열리게 된다)가 되기 때문에 감을 얻기 위해서는 가지를 째고 접목을 해야 하듯이 한 인격체로 되기 위해서는 고통을 이겨내어 결실을 맺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대추는 씨앗이 하나여서 임금을 뜻하고 밤은 밤송이 사이 알이 세알이라서 삼정승을 상징하고, 감은 씨앗이 6조각으로 육조판서를, 배의 씨앗이 8조각이어 팔도 관찰사를 뜻한다는 말도 있지만 제철 과일을 제사상으로 올릴 수 없기도 해 말려서 사용할 수 있는 과일을 찾던 것이 아닌가 싶다.

▲ 육포

제례 상차림시 유의할 점

명절 상차림이나 제사 상차림시 유의할 점도 있다.

복숭아와 삼치, 갈치, 꽁치 등 끝에 ‘치’자가 든 것은 쓰지 않는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복숭아나무는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어 집안에 심지도 않고 상에도 올리지 않았다. 또한 생선 이름이 ‘치’자로 끝나는 생선은 흔하고 값이 싸다고 생각하여 차례상에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고춧가루와 마늘 양념을 사용하지 않고 붉은 팥 대신 흰 고물을 쓴다. 붉은 팥은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 색깔과 강한 향신료는 사용하지 않았다. 도라지 나물도 하얗게 무치고 떡을 올릴 때도 붉은 팥대신 흰고물을 써서 떡을 만든 이유다.

씨없는 과일도 사용하지 않는데 씨없는 과일을 쓰면 자손이 번창하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사과나 배, 감 등 씨가 있는 과일을 상에 올렸다.

이애섭 음식장은 점점 사라져 가는 의례를 안타까워 했다. “전통적으로 출생과 함께 삼칠일, 백일, 첫돌부터 매년 생일상을 차리기 시작하면서 관례, 혼례, 회갑, 희년, 회혼, 상례, 제례 등에 맞춰 의례를 지냈다”면서 “이 의례에 음식들을 만드는 일은 큰 일이었지만 다 의례를 지내는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간소화 되거나 그냥 넘어가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2000년부터 전남대 평생교육원에서 전통음식을 계승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교육은 전통문화관과 남도향토음식박물관에서 강의를 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체계적인 교육보다는 관심이 있는 분야의 전통음식으로만 프로그램화 되다보니 전통음식에 대한 깊이가 떨어졌다. 그래서 이애섭 음식장은 작년에 신안동에 ‘남도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열고 전통음식에 대한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 깨엿강정

전통음식의 맛을 남도의 멋으로

음식을 만드는데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내 가족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데 기쁜 마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음식을 만들 때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맛있게 만들고 보기에도 좋게 만들지 구상을 하면서 만들게 된다”고 했다.

덧붙여 “음식은 손맛인데 손 온도에 따라 음식맛이 달라진다”고 본다면서 “요리에 레시피가 있어 양념과 재료를 정확하게 넣지만 맛이 틀린 이유다”고 말했다. 음식을 만드는데 1회용 장갑을 사용하는 것보다 손의 온기가 전해지는 손맛을 더 중요시 했다.

손맛은 가족을 생각하는 정성과 재료에 맞는 요리법이 적용되어 맛을 넘어서 남도의 멋으로 태어났다.

▲ 수연상 봉황
▲ '남도전통음식문화연구원' 교육생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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