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형용사
슬픈 형용사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7.01.1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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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은 ‘글을 쓰면 정확한 사람이 된다.’고 했다. 글은 앞뒤가 딱 맞아 떨어지는 사고 끝에 써나가야지 말하는 대로 쓴다면 죽도 밥도 아니 된다. 글은 주어와 동사, 목적어 등이 있을 자리에 있어야 하고 자기 직분이 아닌 엉뚱한 자리에 놓이면 문장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글은 말과는 다른 방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말하는 대로 쓰면 글이 된다고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게다가 좋은 글은 단단한 논리와 정확한 묘사, 적절한 전개가 필요한 매우 공정이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미국의 각급 학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글쓰기라고 하는데 일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사고가 정확한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글은 베이컨의 말대로 사고의 표현이다. 그것도 정확한 사고의. 생각이 흐트러져 있으면 제대로 된 글이 쓰일 리 없는 것은 자명하다.

말을 할 때도 논리가 서야 상대가 알아듣기 쉽고 서로 잘 통하지 가닥이 잡히지 않은 말을 횡설수설하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듣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물랑 화법’이 대표적인 예다.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기교나 교언영색으로 될 일이 아니다. 좋은 글을 쓰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은 정확한 사고력이다. 생각이 정확해지려면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 정의하는 탄탄한 내공이 있어야 함은 두말할 것 없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정확한 사고’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헝클어지고 흐트러져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내가 중심을 잡고 있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나의 정확한 사고를 믿고 살아가면 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말 생활’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신문, 방송, 인터넷, SNS…. 말의 홍수 속에서 헤엄치며 살고 있다. 어느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 가운데 붙잡을 뗏목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내가 가장 비위가 상하는 것은 형용사의 남발과 오용이다. ‘착한 가격’, ‘아름다운 가게’, ‘섹시한 여자’, ‘준비된 대통령’, ‘끝내주는 맛’,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도시’, ‘참 진리’, 뭐 예를 들면 끝이 없다.

‘착한’이라는 말이 어떻게 이윤을 따지는 ‘가격’ 앞에 붙을 수가 있는가. 여자 앞에 어떻게 ‘섹시한’이라는 형용사를 갖다 쓸 수 있는가. 심하게 말하면 이런 표현은 사람을 어지럽히는 형용사의 오용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우리나라 말의 아름다운 형용사들을 엉뚱한 데다 함부로 갖다 붙여 흉하게 먹칠하고 있는 꼴을 보노라면 부아가 난다. 형용사가 수식하는 말에 최적한 표현이라면 그때의 형용사는 빛이 난다. 그 수식당하는 말도 빛을 발한다. 한데 실제 내용은 깡통인데 아름다운 형용사를 거기에 갖다 붙이는 것은 언어의 희롱이다.

그렇다고 형용사를 안 쓸 수가 없다. 문장은 형용사나 부사의 적절한 사용으로 묘사가 디테일해지고, 생생해진다. 잘 쓴 글은 형용사나 부사를 잘 활용한 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식어들의 역할은 크다. 대체로 형용사, 부사를 사용하지 않고 글을 쓰면 딱딱하고 건조한 글이 되기 십상이다.

예를 들면 신문 기사문 같은 경우는 그 성격상 될수록 형용사, 부사의 사용이 제한되어야 한다. 형용사, 부사는 글을 쓰는 이의 주관적인 표현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형용사, 부사를 남발하는 기사문은 좋은 기사가 될 수 없다.

요즘 보면 형용사, 부사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인 것 같다.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려면 적절한 곳에 형용사를 써야 사람들이 그 글이나 말을 믿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글이나 말 사용의 비법이다.

형용사를 적절한 곳에 써야 한다는 것만으로는 신뢰를 주기 어려운 것이 또한 말과 글이다. 아무리 형용사를 적절한 곳에 사용했다고 해도 그 글이나 말을 쓴 사람이 ‘된 사람’이 아니라면 빈 수레가 내는 소리나 다름없다.

만일 어떤 대통령 후보가 현란한 말 공세보다는 ‘나는 대통령이 되면 국민 여러분에게 땀과 피를 요구하겠습니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만 보면 대선 잠룡이라는 이들이 하는 소리가 온통 대국민 퍼주기 일색이다. 군복무 축소, 기본소득 1인당 1백 몇십만원 제공, 일자리 1백 몇만개 창출….

대저 이런 빈 깡통 같은 시끌벅적한 소리들로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다. 그런 말들을 국민들이 믿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말로 자기가 하는 말들이 무슨 말인지 알고나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말이 곧 사람이라는 옛말을 상기해봄직하다.

옛말에 ‘장부일언은 중천금’이라고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아니면 말고’식으로 함부로 말을 쏟아낸다. 아무리 정치는 말로 먹고 산다고 하지만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마구 내지르는 말, 책임질 수 없는 말, 말을 해놓고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며 주석(註釋)을 다는 말, 상대의 실수를 과장해서 공격하는 말이 난무하다. 이쯤 되면 말 공해요, 정치 공해요,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 말의 형용사는 슬프다. 정치인들이 형용사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장사꾼들이 올바르게 사용하고, 사람들이 형용사를 잘 쓸 때 이 나라는 서로 믿고, 아껴주고, 배려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될 것이다. 형용사를 함부로 쓰는 것을 저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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