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켜놓고 詩를 읽다
촛불을 켜놓고 詩를 읽다
  • 정규철 인문학연구소 학여울 대표
  • 승인 2017.01.18 14: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촛불 민심은 새 시대를 열어가고자 한다”
▲ 정규철 인문학연구소 학여울 대표

우리의 옛 선인들은 삼동(三冬)에 경전(詩, 書, 易, 禮記, 春秋)을 읽고 삼복(三伏)에는 가벼운 시를 읽었다. 환경에 순응하면서 사람의 신체적 조건에 맞춰 학습서를 달리한 것이다. 공자께서도 가죽으로 된 책가위가 세 번이나 닳도록 읽었다는 철학서는 눈 내리는 겨울밤에 읽어야 제 뜻을 깨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냉난방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요즘 계절 감각이 둔해져서 그런지 가끔 원시로 회귀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광화문 촛불이 시퍼렇게 타오르고 있어서일까? 시는 딱딱한 경전과는 달리 읽는 이로 하여금 가벼운 흥취와 인간 본연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한다.

북악산 너머 부암동 어딘가에 있을 법한 오두막집 골방에 촛불을 켜놓고 새벽이 올 때까지 시를 읽고 싶다. 물질을 끝낸 해녀들이 바닷가 양지 바른 언덕에 앉아 오순도순 머리를 말리는 풍경이랄지 장백폭포 골짜기에 둥지를 튼 심마니 아내의 고달픈 삶을 노래하거나 설악산 봉정암으로 가는 한계령을 읊은 시였으면 더욱 좋겠다. 하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을 대표하는 여류문인 허난설헌(許蘭雪軒)의 <빈녀(貧女)의 노래>에 애착이 간다. 가난한 여인이라면 당연히 <정읍사>가 으뜸이겠지만 그건 너무 멀다.

난설헌의 본명은 초희(楚姬)이며 서화담의 고족(高足)으로서 도학의 종(宗)이 되던 초당 허엽의 여식으로 태어났다. 위로 성(筬)과 봉(篈)이 있고, 균(筠)은 그의 아우이다. 어려서 균과 함께 손곡(孫谷) 이달(李達)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스물일곱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천분(天分)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시인으로서 영예를 드날린 분이다.

가난한 여인의 노래

                                                빈여음(貧女吟)

누구보다 인물이 빠지지 않고                豈是乏容色

바느질에 길쌈에 솜씨 좋건만                工鍼復工織

가난한 집에 태어나 자란 까닭에            少小長寒門

좋은 중매자리 나서지 않네                  良媒不相識

 

춥고 굶주려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不帶寒餓色

하루 종일 창가에서 베만 짤제에           盡日當窓織

오직 내 부모님만 가엾다 생각할 뿐       唯有父母憐

이웃사람 남이라 어이 알리요               四隣何會識

 

밤 깊도록 베짜는 외론 이 심사             夜久織未休

짤깍짤깍 바디소리 차가운 울림            戞戞鳴寒機

겨울의 긴긴 밤이 그저 치울 뿐             機中一匹練

뉘 옷감을 이 몸은 이리 짜는가             終作阿誰衣

 

가위로 싹둑싹둑 옷 말로라면               手把金剪刀

추운 밤에 손끝이 호호 불리네              夜寒十指直

시집살이 길옷은 밤낮이건만                爲人作嫁衣

이내몸은 해마다 새우잠인가                年年還獨宿

 

이조 사대부가 여인들의 작품을 보면 일부러 감정을 눌러버리고 점잖은 체 꾸밈이 있다고 하나 난설헌의 작품은 예외였다. 소실이나 기녀의 작품에 보이는 것처럼 자기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함으로써 시대적 상황이나 기존의 틀을 깨고 있다. 그녀가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정신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스승 손곡의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된다.

손곡은 재주가 남달랐을 뿐만 아니라 가히 천재적인 시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자로 태어난 신분 때문에 벼슬길이 막혀 한평생 어렵게 살아야 했다. 그의 제자인 난설헌은 아우 균과 함께 이조(李朝)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시대苦를 겪으면서도 작품 속에서 서민들의 아픔을 보듬었다.

기녀들의 작품은 조금도 감정을 자제한 흔적이 없다고 했는데 황진이의 작품을 읽어보면 사무사(思無邪)라 할 만큼 호흡이 맑고 깨끗하다.

 

동짓달 기나긴 바믈 한 허리를 둘헤내어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굽이굽이 펴리라.

 

이 작품은 시인의 주체적 정신이 진솔하게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신에 때가 끼면 온전한 삶은 불가능하다. 구중궁궐에 앉아 밤낮없이 얼굴이나 토닥거리며 태반주사, 마늘주사나 꼽아대는 여인네들이라면 사제에게 영혼이 뽑힌 좀비(Zombie)정도로 끝낼 일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주말이면 우리의 의식을 헷갈리게 하는 풍경이 예사롭지가 않다. 촛불 따라 다니는 태극기의 행렬이 왠지 낯설기만 하다. 태극기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자문해 본다. 1919년 3월 동포들의 손에 든 태극기는 시퍼렇게 타오르는 촛불이었다. 지축을 흔들고 하늘을 찔렀다. 고부에서 신의주, 북만주를 거쳐 텐산을 넘고 북미 대륙의 심장을 겨냥했던 것이다. 성난 민중의 손에 든 태극기는 비수가 되어 마비된 일제의 양심을 파고들었다.

민중은 자신을 기만하지 않는다. 함석헌 선생은 민중을 「씨ᄋᆞᆯ」로 푼 바 있다. 民, people의 뜻이다. 우주 생명의 원리를 담고 있다. 옛글에 “국필자벌이후(國必自伐而後)에 인벌지(人伐之)”라는 문장이 있다. 나라마다 스스로 제가 저를 친 다음에야 남이 치게 된다는 뜻이다. 자괴감은 스스로를 기만한 자者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변혁의 동력은 사상에 있다. 촛불 민심은 참여민주주의가 겉돌고 있는 현실을 깨뜨리고 새 시대를 열어가고자 한다. 친일, 쿠데타, 유신, 12.12, 상도동, 동교동, 친박, 친노 등은 우리 현대사의 일그러진 단면이며 패거리 정치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붓 끝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언어들이지만 이제 구태의연한 패거리 정치는 과감하게 청산되어야 할 것이다.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가 쓴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보면 장태법(藏胎法)이 나와 있다. 산모가 출산을 하면 태를 잘라 흰 항아리에 넣고 뚜껑을 덮은 뒤 부용봉(芙蓉峰)에 묻는다고 되어 있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랄까. 우리 선인들의 삶에 대한 진지하고 경건한 자세가 엿보인다. 아름다운 산 부용봉에 태를 묻음으로써 태어난 아이가 지혜를 터득하고 무병장수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되기를 염원한 것이다. 성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오붓하게 사는 것은 인간의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다.

강진 시절(1804년) 다산(茶山) 선생이 지은 하일대주(夏日對酒) 라는 시를 읊조리면서 새해 소망을 담아본다.

<중략>

나라의 기강이 무너져                    大綱旣隳圮

만사가 앞뒤로 꽉 막혔다.               萬事窒不通

한 밤에 책상을 치고 일어나            中夜拍案起

탄식하며 하늘을 쳐다본다.             歎息瞻高穹

 

<중략>

참대나무 만개를 가져다가              那將萬箇竹

천 길 긴 빗자루 만들어                 束箒千丈長

쭉정이나 먼지 일랑 모조리 쓸어서   盡掃秕穅塵

한꺼번에 바람에 날려 버릴까.         臨風一飛颺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