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18) 아이히만, 그가 유죄인 이유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18) 아이히만, 그가 유죄인 이유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01.1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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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을 나오면서 나치의 인종 학살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사람이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과 관련해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이다. 아이히만은 나치 친위대 중령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를 받은 전범이었다. 그는 독일이 패망할 때 도망쳐 아르헨티나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약 15년간 숨어 지내다가 1960년 5월11일 저녁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외에서 이스라엘 비밀조직에게 체포되어 이스라엘로 압송되었다. 그는 1961년 4월11일부터 예루살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그해 12월 사형판결을 받고 1962년 5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2014년 8월12일 EBS 지식채널 e에서 <그가 유죄인 이유>가 방영되었다. 이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여러 번 보면서 자막 받아쓰기를 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법을 어긴 적도 없고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 했던 한 남자가

퇴근 길 버스 정류장에서 체포된다.

그가 유죄인 이유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온 세계가 지켜보는 법정에 선

50대 중반의 평범한 아저씨

도대체 무엇을 인정하란 말입니까?

저는 남을 해치는 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건 맡은 일을 잘 하는 것 뿐입니다.

죽음을 향해 달리던 열차

그 열차를 만든 건 지시받은 업무를 잘 처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의 ‘열차’ 덕분에 우리 조직은 시간 낭비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었죠.

그가 고안해낸 가스실이 설치된 열차

달리는 기차의 가스실

혹은 기차가 멈추는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수 백 만 명의 죽음

그 죽음의 중심에 서 있었던 아돌프 아이히만

당신은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까?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으니까요.

죽이라고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내 권한이 아니었으니까요.

재판을 지켜 본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의 판정

“그는 나 보다 더 정상이며 심지어 준법정신이 투철한 국민이었다.”

8개월간 계속된 지루한 재판

하나 둘 자리를 떠나는 방청객들

그러나

재판을 끝까지 지켜 본 한 사람

아돌프 아이히만과 동갑내기였던 철학자 한나 아렌트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의 무능

말하기의 무능

행동의 무능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중-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 없었나?

월급을 받으면서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입니다.

- 아돌프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Banaility of Evil)’이란 동영상도 보았다.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 1975)는 『뉴요커』라는 잡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이 재판 과정을 취재한 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히만은 검찰의 주장에 계속 이의를 제기했어요.

자신이 주도한 건 아무것도 없다.

선이든 악이든 의도가 없었으며

오직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다.

이 전형적인 나치의 항변으로 거대한 악의 실체가 드러났어요.

평범한 사람이 저지른 악

신념도 악의도 악마의 의지도 없었어요.

사람이기를 거부한 인간의 행위였어요.

저는 이 현상을 ‘악의 평범성’이라 이름 붙였어요.

아주 평범한 군인이었던 아이히만이 600만 명의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가 악마적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주어진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상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무 사유’, ‘생각 없음’, 바로 ‘악의 평범성’ 때문이었다.

‘악의 평범성’을 공부하면서 불현 듯 떠오른 단어가 하나 있었다.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었다.

▲ 재판을 받는 아이히만 (19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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