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2) 임수(臨水)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2) 임수(臨水)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01.1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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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가꿔 이 흰 머리털을 나게 했던가

당대에 명성이 널리 알려진 고승이 많았다. 가문도 벌쭉하여 출세의 길로 들어가려고 등과하여 태학에 들어가 정진하기도 했다. 효심이 지극한 시인은 어머님의 병환으로 집에 돌아온 계기로 불경에 매진한다. 이후 타고난 어진 성품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폈다. 스승인 지눌 선사가 입적하자 조계종 2세가 되어 큰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이런 스님이셨지만 맑은 물속에 비친 자기 머리털을 보고 ‘눈과 서리 누가 가꾸었나?’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臨水(임수) / 무의자 진각혜심

맑은 물속 우연히도 들여다가 보는데

눈에 서리 머리 가득 나 몰래 가득 찼고

훌훌 턴 근심걱정에 흰 머리를 나게 했나.

偶爾來臨止水淸 滿頭霜雪使人驚

우이래임지수청 만두상설사인경

不憂世事兼身事 誰得栽培白髮生

불우세사겸신사 수득재배백발생

누가 가꿔 이 흰 머리털을 나게 했던가(臨水)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무의자(無倚子) 진각혜심(眞覺慧諶:1178∼1234)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우연히 와서 맑게 고인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 머리에 가득한 눈과 서리를 보고 깜짝 놀랐네 // 살아오면서 세상일도 내 일도 그리 근심하지 않았건만 / 누가 가꿔 이 흰 머리털을 나게 했던가]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물가에 임해 얼굴을 보며]로 번역된다. 무의자 대선사의 불심을 기리는 찬시조 한 수가 있다. [임 떠난 지 팔백여년 남은 불향 피워 물고 / 이 땅에 환한 촛불 온 누리 밝히시니 / 화순골 태생지에서 피어나는 연화랍니다]

자신의 머리가 희어짐을 느낀 날에 허탈함에 젖어 보았던 경험이 있을게다. 혜심에게도 어느 날 문득 그런 느낌을 받았음을 본다. 스님이란 본디 세상사 근심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늙지 않을 줄 알았던 모양이다.

시인은 우연히 와서 맑게 고인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머리에 가득한 눈과 서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세월’이란 사람을 위해 가만히 기다려주지 않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머리에까지 눈과 서리를 재배하고 말았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조견경백발(照鏡見白髮)]을 쓴 장구령(張九齡)이나, [백발유공도불비(白髮惟公道不悲)]라 ‘오는 백발도 슬퍼할 기력이 없다’고 탄식했던 삿갓의 표현에서 보듯이 누구나 시대를 막론하고 세월 앞에선 무기력해진다. 이것은 하루인들 거울 볼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주는 또 다른 교훈으로 보아야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고인 물 드려다 보니 머리 가득 눈서리가, 근심하지 않은 세상 일 누가 가꿨나 흰 머리를’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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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무의자(無倚子) 진각혜심(眞覺 慧諶:1178∼1234)으로 고려 후기의 승려이다. 1210년 지눌이 입적하자 혜심이 수선사로 돌아가 개당하였다. 그의 선사상은 지눌의 것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간화선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한자와 어구】

偶: 우연히. 爾來臨: 여기에 오다. 止水淸: 고인 물을 들여다 보다. 滿頭: 머리에 가득 차다. 霜雪: 서리와 눈. 使人驚: 놀라다. 곧 머리가 본인을 놀라게 하다는 사역형. // 不憂: 근심하지 않다. 世事兼身事: 세상의 일과 자신의 일. [兼]은 연사임. 誰得: 누가. 栽培: 재배하다. 白髮生: 백발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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