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16)-히틀러와 힘러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16)-히틀러와 힘러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7.01.0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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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아우슈비츠 수용소 교수대 앞에서 마음이 착잡해진다. 유대인 대량학살의 주범은 수용소장 회스가 아니다. 회스는 하수인에 불과하고, 주범은 아돌프 히틀러(1889∽1945)와 하인리히 힘러(1900~1945)이다. 히틀러는 유대인 대량학살의 창시자이고, 힘러는 대량학살의 실무최고 책임자였다.

히틀러는 1925년에 발간한 저서 <나의 투쟁>에서 이렇게 적었다.

만약 우리가 바로 (제1차 세계)전쟁이 발발한 시점이나 혹은 전쟁 때 타락한 인종인 헤브루인 1만 1천명 또는 1만 5천명을 전쟁터에 내보내 독가스를 맡도록 했더라면, ... 수백만 명의 희생이 그리 헛되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이들 악마들을 제때에 제거했더라면, 우리는 아마도 용감하고 선한 독일인 100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위스트리치 지음 · 송충기 옮김, 히틀러와 홀로코스트, p 145에서 재인용)

또한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유대인을 예술과 문화를 오염시키고, 경제에 침투하고 권위를 약화시키며 다른 종의 인종적 건강을 해치는 ‘보균자’라고 불렀다. 심지어 히틀러는 유대인을 ‘사람들의 피를 천천히 빨아먹는 거미, 피 흘릴 때 까지 서로 싸우는 쥐떼, 다른 사람의 몸속에 있는 기생충, 영원한 거머리’라고 묘사했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사회의 적’으로 몰고, 반유대주의를 조장했다. 그는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유대인의 씨를 말린다”는 묘한 논리를 폈다.

나치는 1942년 1월20일 베를린 근교의 반제에서 힘러의 최측근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주재로 '유대인 문제의 마지막 해결책'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 취해진 결정은 ‘모든 유대인을 체계적으로 동유럽의 수용소로 이송시켜 적절하게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적절하게 처리한다'는 대량학살이 분명했다.

이윽고 히틀러는 1942년 2월22일 저녁만찬에서 “유대인 병원체가 얼마나 많이 우리 선조들을 감염시켰던가! 우리가 유대인을 멸종시킬 때만이 우리는 우리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위스트리치 지음 · 송충기 옮김, 히틀러와 홀로코스트, p 179)

한편, 대량학살의 실무최고 책임자는 힘러였다. 그는 쿠데타에 실패해 수감되었다가 석방된 히틀러에게 감동의 편지를 보내어 히틀러와 인연을 맺었다. 나치당 당원이 된 후에 힘러는 특유의 복종하는 태도로 히틀러를 광신적으로 추종하여 2인자의 자리를 지켰다.

힘러는 홀로코스트의 최고 책임자로서 SS로 약칭되는 나치 친위대와 게슈타포를 이끌었다.

힘러는 1919년에 뮌헨 기술학교에서 농업학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21년 초에 양계업을 했는데 닭을 대량으로 도살했던 경험이 소위 컨베이어 벨트로 불리는 학살수용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힘러는 1933년에 독일 다하우에 최초의 강제 수용소를 설립했고, 1940년 4월에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를 세웠다. 이후 힘러는 1941년 10월에 ‘비르케나우’라고도 불린 제2수용소를 세웠고 산업적 규모의 가스실을 만들었다.

힘러는 유대인을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동물보다 열등하다”고 하면서 1943년 독일 항구도시 슈테틴에서 SS친위대에게 전쟁이 ‘인종투쟁이자 이념적 전투’라고 연설했다.

‘한쪽은 북방게르만 혈통의 수호자인 국가사회주의인 반면에, 다른 한쪽은 아무 연민이나 동정심 없이 쏴 죽일 수 있는 1억8천명의 혼혈인종이다. 이런 동물들이 유대인에 의해서 하나의 종교, 하나의 사상으로 합쳐졌으니 그것이 바로 볼셰비즘이다”(찰스 패터슨 지음·정의길 옮김, 동물 홀로코스트, 한겨레출판사, 2014, p76)

또한 1943년 10월 4일 폴란드의 도시 포즈난에서 SS의 고위관료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힘러는 ‘최종 해결’이 일종의 위생조치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런데 힘러는 1945년 5월에 연합군에게 체포되자 청산가리 캡슐을 씹고 자살했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 교수대
▲ 히틀러 연설에 환호하는 히틀러 청소년당 당원들

(사진 설명 추가) 히틀러는 1937년 뉘른베르크 나치당 집회에서 “ 전 세계가 두려워하는 청소년들을 키울 것이다. 나는 폭력성과 지배력과 잔임함과 잔혹함을 갖춘 젊은이들을 원한다.”고 연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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