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신년시]홰치는 소리를 들으며
[정유년 신년시]홰치는 소리를 들으며
  • 박몽구 시인
  • 승인 2016.12.29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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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새 아침에
▲ 박몽구 시인

해는 결코 저절로 떠오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산 너머에서

넓은 등으로 면벽하듯 찬바람을 견디며

길고 질긴 어둠의 장막 그어내려

무등 위로 깨끗한 해 들어올리는 시지포스를 보라

 

어린 것들이 미명의 안락에 갇혀 있을 때

달콤한 유혹을 뿌리친 채

홀로 홰치는 소리는 깨끗하다

부르튼 발로 소모의 시간 뿌리치며

일어날 때를 알리는 사람의 상처

화폐로 헤아릴 수 없이 값지다

 

열쇠마저 뭉개버린 한 사람의 금고를 위해

밤을 낮으로 바꾸어 쇠를 치고

메마른 흙을 이겨 벼꽃을 피우던

사람들의 주머니 바닥까지 털어내고도

여전히 파하의 안개는 깊어가는가

 

깊고 푸른 맹골수도 아래

차가운 파도를 벤 채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

한 사람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망각의 저편으로 보내서는 안 된다고

더 이상 우리들의 표를 도둑맞을 수 없다고

미몽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일으켜

깨끗한 새벽으로 가는 선지자 어디 숨었는가

 

얼굴 모르는 남에게 맡겨 두었던

나침반을 찾아 이제 우리 스스로 외쳐야 한다

기꺼이 과녁 앞에 선 시지포스가 되어

찬바람 넘어 칼바위들 넘어

새해의 첫해를 무등 위로 들어올려야 한다

온몸으로 홰 치는 소리 잠든 마을을 깨우듯

혼돈의 어둠 한가운데로 우리들을 던져

시지포스와 함께 증오의 벽을 넘어

남의 뜻으로 그어진 휴전선 넘어

삼천리를 하나로 엮어야 한다

내일로 가는 길 가로막는 가시관을 벗겨

깨끗한 햇살 온누리에 뿌려야 한다

 

박몽구 : 전남대 영문과,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7년 월간 『대화』지로 등단. 『개리 카를 들으며』, 『봉긋하게 부푼 빵』, 『수종사 무료찻집』 , 『칼국수 이어폰』 등의 시집을 상재하였다. 한국 크리스찬문학상 대상 수상. 한양대 객원교수. 계간 《시와문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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