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민권승리의 새 날을 맞아
2017년 민권승리의 새 날을 맞아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12.2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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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희망가를 부르자
▲ 이홍길 고문

촛불이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바꿀 줄 옛날에는 몰랐다. 질곡과 억압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 무늬 대통령을 청와대 관저에 유폐시키고 오만 방자한 새누리당을 조각낼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해방된 그날,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길더니 삼천리 이 강산에 먼동이 튼다. 동무야 자리차고 일어나거라. 산 넘고 바다 건너 태평양 넘어 아아~ 자유의, 자유의 종이 울린다.’ 해방가의 몇 구절이다. 삼천리 곳곳마다 물결치는 기쁨도 잠시 영원 무궁하리라던 조국은 두 동강 나고 자유는 실감하기도 전에 낯설어졌다. 우리의 승리가 아니고 미국과 소련의 승리였음이 명백해지는 가운데 한반도는 냉전으로 꽁꽁 얼어 상잔의 비극까지를 연출하면서 분단되고 말았다. 승리가 없는 마당에 희망가가 어찌 가당키나 할 것인가?

그런데 우리들은 일찍이 1921년에 희망가를 부른 기억을 갖고 있다. 3·1독립운동이 지난 지 2년 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은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니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족할까.’

희망의 기운을 느낄 수 없어 절망가라고 불러야 마땅했을 노래를 구태여 희망가로 불러야 했던 우리들의 패배감. 그것이 희망가라면 희망의 진기는 완전히 소진된 채 검게 타버려서 절망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그런 참혹한 희망가를 희망이랍시고 우리들은 불렀다. 독립만세만 우렁차게 부르면 세상의 정의와 공도가 보우하사 독립될 것 같았던 우리들의 낙관은 산산이 조각나고 7천5백 명 사망, 1만5천 명 부상, 5만 명 투옥이라는 참담한 희생을 낳고 조선의 독립은 가물가물 멀어져갔으며, 일제의 식민통치는 문화를 앞세워 더욱 세련되어갔다. 절대 독립을 포기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안주하려는 자치론자들이 사회의 귀추를 장악해 가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었다. 독립운동의 전열은 흩어져 그 동력은 점차 쇠잔해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풍진세상이 열려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로 도피하는 절망이 조선의 젊은이를 추락시키고 있었다. 그래도 그것을 희망가로 불러야 했던 우리 선배들의 눈물 젖은 억하심정.

촛불혁명의 광명을 쏘인 우리들은 옛 선배들과 다르고 달라야했다. 그렇기 위해서는 절망의 군더더기가 낀 다 타버린 희망가가 아니라 생명감이 충일하는 희망가를 부르고 결코 깨뜨려질 수 없는 희망의 당위를 찾아야 하는데, 저명한 민족시인 문병란의 ‘희망가’가 그 전범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희망의 당위와 필연을 확인한 우리들은 빼앗겨버린 것을 되돌려 받고 놓쳐버린 것을 찾기 위해서 촛불혁명이 주는 교훈을 따라, 민주와 정의의 명검을 갈고 닦아 어떤 부당한 기득권도 박살내고 일도양단할 수 있는 예리한 칼날을 세워야겠다. 해방의 아쉬움도 물론이지만 4·19 민주혁명의 미완성, 서울의 봄의 잘못된 퇴각은 광주 5·18 대학살의 단초를 제공했고 1987년 6월항쟁은 적들의 기만전략과 소위 민주 지도자들의 권력 다툼으로 그 호기를 놓치고 말았다.

역사 발전을 지체시킨 상당한 책임이 민주세력에게 있었다는 사실이 역사의 골든타임을 맞을 때일수록 우리들을 더욱 조심스럽게 만든다. 호사다마를 잊어서는 안 된다. 권력 조급증 때문에 민주 권력 창출의 최후 관문을 넘지 못하고 적전분열 이전투구의 추태를 보여서도 안 되겠다. 어두운 시절에도 민주공화국 명패 하나 믿고 잔명을 지탱해온 대한민국이 이제 떨쳐 일어나 그 악업을 벗어나야 한다.

국정농단의 책임자는 전국을 뒤덮는 촛불의 떨기떨기 불꽃에 감응 감동하여 뒤늦게나마 추악한 죄업을 정화할 그런 시간이거늘, 후안무치하게도 하야도 퇴진도 거부하고 도도한 역사와 민의를 거슬러 빈사의 오랑캐처럼 판도라 상자의 밑바닥을 헤집고 있으니, 방심은 금물이다. 자발성, 비폭력성, 지속성으로 대중민주주의의 신기원을 이룩한 촛불혁명은 대의민주의 한계를 넘어 생활민주까지로 그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토목귀신 프로포플 요괴가 물러간 자리에 민주가 출렁이고 자존이 넘치는 정유년 새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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