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 부여회고(夫餘懷古)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 부여회고(夫餘懷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6.12.2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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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의 흥망이나마 이유를 물을 수 있으련만

백제가 신라에 의해서 망하고, 신라가 고구려를 흡수하는 것을 삼국통일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비운의 역사를 우리는 흔히 백제 말에 애환에서 찾는다. 계백의 강인함도 황산벌의 먼지도 쓸어져 가는 국운 앞에서는 초라한 한 줌 풀에 불과했던 것. 백제는 그렇게 망했다. 그러나 그 흔적만큼은 부여에 남아 있으니 백마대 낙화암보는 순간 숱한 세월이 흘렀겠지만 청산의 함묵으로 인하여 그 때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고 역설적으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夫餘懷古(부여회고) / 어우동

백마대 빈자리가 몇 해나 지났는가,

낙화암은 선채로 숱한 세월 지났으나

청산이 침묵안하면 천고흥망 알려줄걸.

白馬臺空經幾歲 落花巖立過多時

백마대공경기세 락화암립과다시

靑山若不曾緘黙 千古興亡問可知

청산약불증함묵 천고흥망문가지

천고의 흥망이나마 이유를 물을 수 있으련만(夫餘懷古)으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어우동(於于同:?~1480)으로 여류시인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백마대가 주인없이 빈 지가 벌써 몇 해가 지났는가 / 낙화암은 선채로 많은 세월이 지났다네 // 청산이 일찍이 함묵하지만 않았었다면 / 천고의 흥망이나마 이유를 물어서 알 수야 있으련만]이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부여의 옛 자취를 회고하며]로 번역된다. 훗날의 사서(史書)에서는 그녀를 구제불능의 음부, 인륜을 저버린 반사회적 일탈자로 규정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윤리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자유였다는 평가도 잊지 않는다.

결혼 후 그녀의 첫 상대가 천한 신분의 은장(銀匠)이었던 점부터가 어우동의 삶이 지닌 혁명성을 예고한다. 친정으로 쫓겨난 시인은 곧 여종과 같이 길가 집을 구해 독립했다. 조선시대판 커밍아웃(coming out)이었던 샘이다.

시문에 능했던 그녀는 백제의 역사를 회고하는데 낙화암을 선채로 많은 세월이 지났음으로 시상을 일으킨다. 시인의 기발한 시상 하나를 만난다. 청산이 왜 그대로 함묵(緘黙)하고 있는가에서 보인다. 화자는 청산이 말없이 저렇게 떡 버티고 있음을 한탄하는 모습을 보인다. 청산이 일찍이 말없이 가만히 있지 않았더라면 천고의 흥망성쇠를 물어 대답을 들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점이다. 낙화암을 찾는 시인에게 한마디 못하고 묵묵히 서있는 암자를 보면서 탄식하는 안타까움을 본다. 화자는 버티고 있는 저 암자와 희비의 역사를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백마대 빈 지 몇 해던가 낙화암도 많은 세월, 청산이 함묵하지 않아 천고 흥망 물을 것을’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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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우동(於于同:?~1480)이다. 조선 성종 때 방탕한 생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여성이다. 시문에도 뛰어났다. 출생일은 정확하지 않고 양갓집 자제로 부친은 승문원 지사 박윤창이다. 종실 태강수 이동과 혼인하였으나 천한 신분의 남자와 문란한 성관계를 맺어 소박을 맞고 쫓겨났다.

【한자와 어구】

白馬臺: 백마대. 空: 비어있다. 經幾歲: 몇 년이 되었던가. [幾]자 때문에 반추형인 의문문임. 落花巖: 부여 낙화암. 立: 서다. 서있다. 過多時: 많은 시간이 지났다. // 靑山: 청산. 若: 만약. 不曾緘黙: 일찍이 함묵하지 않았다. 千古興亡: 천고의 흥망. 問: 묻다. 可知: 가히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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