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물러난 후
대통령이 물러난 후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6.12.1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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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예산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영은행의 자금을 임의로 사용한 혐의로 국민의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던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올 8월 탄핵으로 자리를 물러났다. 2014년에 재선을 목적으로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은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가 자금을 임의로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브라질은 4년 중임제다. 탄핵으로 물러난 대통령은 브라질에선 두 번째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문란 혐의로 국회에 탄핵소추가 가결되어 헌재에 넘어가 있다. 사실상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기 직전이다. 향후 정국은 대선 레이스로 넘어가 한 바탕 선거 운동으로 시끌벅적해질 것이 분명하다.

중도에 물러나게 되는 것이 박 대통령에게는 비극이지만 불의한 국정을 용서할 수 없는 국민에게는 큰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국민이 주인 되는 ‘국민통치’ 시대가 열리려는 참이다. 민주주의가 이 땅에서 또 한 번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 제왕적 권력을 누리는 현 대통령의 권한 축소나 분산을 하려는 노력은 손도 대지 못하고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대선 일정으로 가는 것이 자못 우려스럽다. 검찰이나 국세청을 대통령 권력에서 떼놓는다든지 하는 극히 필요한 수술조차 하지 않고 다시 그 대통령제로 가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다. 대통령 한 사람이 삐끗하면 자칫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처럼 국정문란으로 가지 말란 법이 없다.

정파 간의 잇속이 달라 이 문제는 흐지부지될 것 같다. 만일 대통령제를 손도 보지 못하고 이대로 간다면 박근혜 대통령 한 사람을 내쫓고 그 자리에 다른 인물을 앉히는 것에 머물고 만다. 국가 수립 후 12명의 대통령이 국정을 맡았지만 대부분 그 말로가 비극으로 끝났다.

이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어떤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국민의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주인의식을 살리면서도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비극을 안고 간다고 보아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게 나라냐”하고 통탄했다. 박 대통령의 ‘대통령 의식’이 철저하지 못한 데서 나온 국정문란이었다. 자신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통수권자임을 자각했다면 그런 일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하기는 국민도 대통령을 ‘나랏님’이라고 의식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사실은 우리는 나랏님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 대신 나라 일을 맡긴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던가. 집사장 정도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공무원들에게 “나는 5년 임기 마치면 물러나지만 여러분은 정년이 보장된 사람들이다.”며 공무원의 국정 라인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마치 ‘짐은 국가’라는 의식을 갖고 전횡을 일삼은 것이다. 탄핵은 마땅한 것이고 헌재에서도 인용될 것임은 확실하다. 헌재가 만일 인용하지 않는다면 나라는 대혼란으로 접어들 것이고, 헌재 무용론도 대두될 것이다.

이런저런 상황을 비추어 볼 때 차기 대선 레이스는 시작된 셈이다. 일이 어긋나서 차기 대선에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지 못한다면 대선 후보들은 임기 중에 대통령 권한에 대한 헌법 개정을 공약하고 나서는 것이 맞다고 본다.

솔직히 말해서 5년 단임제 가지고도 이런 불상사가 터져 나오는데 만일 4년 중임제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대통령 임기 때문에 대통령이 할 일을 못하거나 비리를 저지르거나 그런 것은 아닐 터이다. 지금 형국은 5000만의 컨트롤 타워가 작동을 멈추고 있어 흡사 공항의 관제탑이 무력해진 것이나 진배없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옛말이 있거니와 이런 혼란 시기에 국민의 동력을 모아 앞길을 여는 정치 지도자가 샛별처럼 나타났으면 싶은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지금 우리나라는 당면한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국내 문제 말고도 밖으로는 미국 대선에서 보호무역주의자로 알려진 트럼프 당선도 그렇고, 중국의 시진핑은 아시아의 패권을 꿰차려고 한국에 겁박을 주면서 미국과 으르렁거리고 있으며, 일본은 안면몰수하고 마구 돈을 풀어 나 홀로 살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망망대해에서 폭풍을 만나 표류하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말도 있긴 하지만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한때는 세계 5위 경제대국이었지만 오랜 정국 불안에 거의 제3세계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경제다. 이번 대통령 게이트와 관련해서 재벌총수들이 불려가 볼기짝을 맞았다. 차제에 정경유착을 완전히 끊고 나라를 진일보된 시민화(시민민주주의를 뜻하는 필자의 조어)시키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대통령 권력의 분산이야 어떻든 간에 이게 국민은 대통령을 몰아낸 이상 그것을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질서 있는 국민 혁명’에 성공한 국민 입장에서는 차기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던 국민의 정치 참여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혼자서 제왕적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국민통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정치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올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차기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탄핵을 이끈 ‘국민의 승리’를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대통령과는 다른 정치를 펴야 한다는 사실이다. 경제, 안보, 인구감소, 사교육, 계층갈등 같은 난관에 처한 여러 국가적 문제를 국민과 의논해서 풀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준비된 대통령’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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