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신양명 집착증으로 사는 사람들
입신양명 집착증으로 사는 사람들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12.1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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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최태민, 최순실 부녀 때문인지 본인의 방종이 화근이었는지도 가려지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은 해일과도 같은 국민들의 압력으로 국회의 탄핵을 받아 몰락하고 말았다. 그녀가 아버지 박정희의 죽음을 딛고서 와신상담의 18년 성상을 보내고서 그녀의 옛집으로 귀환할 때 사람들은 남다른 그녀의 인생역정을 우러르면서, 결코 몰쌍하지 않은 그녀의 정치적 기량에 감탄했다. 그래서 선거의 제왕이라는 찬사도 쏟아져 나왔다. 그녀가 내뱉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봇물처럼 터지면서 제법 모습을 갖출 뻔했던 처녀 대통령의 신화는 깨어지고 최태민 부녀와의 40년을 넘는 뒤엉킨 역사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그 엽기성을 즐기기보다 그런 사람을 찍은 자괴감이 하야와 퇴진의 함성을 더욱 높이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속빈 강정마냥 허망하고 불쌍한 여자에게 당했다는 우리들의 불결감을 씻어주기라고 하듯 그녀는 압도적 탄핵에도 불구하고 하야와 퇴진 요구를 비아냥거리듯 헌재에서 끝장을 보겠다고 임전무퇴의 치열하다 못해 독살스런 투지를 내보이고 있다. 삼국통일의 원동력이었다는 화랑의 시작이 여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실증을 보이기라도 하듯 그녀의 만만찮은 투지가 눈에 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탈이 그녀의 추락을 막지 못할 것은 바다에 이르러버린 강물이 옛 개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강바닥 생채기만 깊게 할 뿐인데 그녀만 모르는 것일까? 그 생채기는 결국 누구의 몫이 될까?

그녀가 아꼈던 사람들. 그녀의 십상시라 해도 좋고 충신이라고 해도 좋은 사람들은 어떤 역정을 거쳐서 그녀의 고임과 신뢰를 얻게 되었을까 하고 그녀의 충신의 면모를 살펴본다. 그녀의 국정농단 공모자를 밝히자는 것이다. 물론 멍청한 우민이 되어 무뇌아라고 비판받는 그녀를 대통령으로 뽑은 우리들의 부끄러움을 덮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은 그녀의 위선적 안보론과 기만적 민생 코스프레에 농락당한 우민이었을지언정 국정농단의 방조자나 공모자는 아니었다.

33년 보수정치인으로 살아왔다고 제법 처연하게 인생을 술회하는 이정현이 정치를 시작한 시점을 살펴보자. 1980년 초중반에 해당한다.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나 광주 대학살이 당시의 정권에 의해서 자행된 이후에 해당된다. 또 1987년 6월 민중항쟁으로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고 노태우의 ‘보통사람’이라는 코스프레가 우매한 우리 국민들에게 먹혀들어 ‘죽 쑤어 개 준’ 시기 이전이다. 이 땅의 젊은이의 정치입문이, 더구나 피학살의 항쟁지역의 젊은이의 정치입문이 도살자 집단의 하수인이 된 것을 정치입문으로 상정해서 보수정치 33년 운운하는 강심장에 놀라고 그 철면피에 경악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유행어를 만든 초원복집 사건의 김기춘은 박근혜의 왕실장이 되기 훨씬 이전 이미 출세지향의 혁혁한 이력을 쌓고 있었다. 그의 법관 동료의 회고에 의하면 ‘그는 검사 때 법무부 장관 신직수의 눈에 띄려고 날마다 장관의 집 언덕을 오르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신직수에게 아침부터 눈도장 찍는 짓거리를 한 끝에’ 박정희의 눈에 들어 유신헌법의 초안을 만들었고, 갈봉근과 한태연의 회고에 의하면, 이미 김기춘이 만들어 놓은 뼈대는 손도 못 대게 해서 결과적으로 유신헌법은 김기춘의 손에서 태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박정희, 박근혜에 걸친 유신왕국의 시작과 종결을 함께 한 수훈갑의 충신이라 할 것이다. 인생을 효과적으로 살고 입신양명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고 가문을 영광되게 하는 것은 유교봉건사회를 경험한 이 땅의 지식인의 숙명이라고 이해하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염치를 벗어나는 모든 행동거지가 양해되는 것은 아니다. 염치와 수오지심은 전통 지식인의 사람됨의 골간이다. 그런데 그의 역사적 죄업은 차치하고 밤잠을 설치면서 미명에 권력자와 눈 맞추기 위해서 찬바람을 맞으며 찬란한 미래를 꿈꿨을 젊은이. 대견하기 보다는 사람 된 우리를 슬프게 하는 풍경으로 소름 돋는 것을 금할 수 없다. 인간의 평균 감성을 훌쩍 뛰어 넘는 완장증후군의 입신출세 강박증으로 이해하는 것이 사람 된 우리가 덜 비참할 것 같다.

동행이 아쉽고 동고동락의 이웃사랑이 절실한 세모에 언짢은 인간들을 시비하느라 여러분의 평정심만 흩트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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