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 석죽화(石竹花)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7) 석죽화(石竹花)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6.12.0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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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볼만한 좋은 꽃이 피어 있을 줄이야

예나 이제나 모란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진홍빛 모란은 보기만 해도 정겨움을 가져온다. 그래서 모란은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면서 사랑을 노래하게 했고, 인생을 속삭였다. 모란 이외엔 어느 꽃도 눈여겨보지 않았으리니. 모란 보다 애잔한 꽃을 손에 쥔다. 시인이 일명 석죽화라고 불리는 패랭이꽃이 황량한 초야에 묻혀 피어있지만, 홍조 띤 다소 애잔하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모란 보다 정 깊은 꽃이라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石竹花(석죽화) / 형양 정습명

진분홍에 모란꽃을 사람들은 좋아하여

집안 뜰 가득 심어 정성들여 가꾸는데

황량한 초야에서도 좋은 꽃이 핀 줄 알리.

世愛牧丹紅 栽培滿院中

세애목단홍 재배만원중

誰知荒草野 亦有好花叢

수지황초야 역유호화총

그저 볼만한 좋은 꽃이 피어 있을 줄이야(石竹花)로 제목을 붙여본 율의 전구인 오언율시다. 작자는 형양(滎陽) 정습명(鄭襲明:?~1151)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사람들은 모두 진분홍 모란을 좋아하여 // 자기 집안 뜰에 가득 심어 열심히 가꾸고 있네 // 누가 알리요, 거칠고 황량한 이 초야에서도 // 그저 볼만한 좋은 꽃(패랭이꽃)이 피어 있을 줄이야]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패랭이꽃을 보면서]로 번역된다. 시의 깊은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초야에 묻혀 사는 자신의 처지를 패랭이꽃에 비유하여, 세속에서 사랑받는 모란과 대응시키고 있다. 패랭이꽃이란 우리말 이름은 꽃송이의 생김새에서 힌트를 얻은 듯하다.

시인은 꽃이 외진 곳에 피어 있다 보니 제대로 안목을 가진 임자를 만나지 못한 탓은 아닐까? 영물시에 뛰어났던 이규보(李奎報) 같은 시인도 이 꽃을 보고 평하기를 “영락(零落)하여 가을 날씨를 견디지 못하니, 죽(竹)이란 이름을 쓰기엔 외람되다[飄零不耐秋, 爲竹能無濫]”고 읊었으니 시의 진정한 뜻을 알만하다.

화자는 거칠고 황량한 이 초야에서도 볼만한 좋은 꽃(패랭이꽃)이 피어 있을 줄이야 이제야 알 것 같다는 자기 의지를 보인다. 후구로 이어지는 패랭이꽃은 [어여쁜 모습은 연못 속의 달을 꿰뚫었고 / 향기는 밭두렁 나무의 바람에 전하네 // 외진 땅에 있노라니 찾아주는 귀공자는 적고 /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붙이네]라고 읊었다. 큰 수술을 받고도, 애써 밝은 웃음을 짓는 여인의 얼굴이라고 할까? 해쓱하면서도 홍조를 띤 애잔한 꽃이라고 하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사람 모두 모란 좋아 뜰에 가득 가꾸네, 누가 알리요 거친 초야 좋은 꽃 피어 있는 줄’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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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형양(滎陽) 정습명(鄭襲明:?~1151)으로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1148년(의종 2) 한림학사, 이듬해 좌승선으로 고시관이 되어 시부로 오광윤, 십운시로 조정시 등 인재를 뽑았다. 병이 들어 김존중이 대직을 하자 자살했던 사람이다. <동문선>에 [석죽화] 등 3편의 시가 전한다.

【한자와 어구】

世: 세상, 세상 사람들. 愛: 사랑하다. 牧丹: 모란꽃. 紅: 진홍빛. 栽培: 재배하다, 가꾸다. 滿: 가득하다. 院中: 집안에, 뜰 안에. // 誰知: 누가 알 것인가, 누가 알리. 荒: 황량하다. 草野: 초야, 초야에 묻혀 살다. 亦: 또한, 그 역시. 有: 있다. 好花叢: 좋은 꽃의 떨기. 보기 좋은 한 떨기.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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