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 되는 법
불효자 되는 법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6.12.0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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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러 갔다. 어머니는 연세가 많이 들어 보이지만 자식 사랑은 내가 어릴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머니가 나이가 더 안 드시고 그대로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머니, 백세까지 사셔야지요.” 인사는 그렇게 했지만 내 속 마음은 어머니가 한 해 한 해 나이 들어가시는 것이 겁이 난다. 만일 이런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나는 하느님께 “어머니를 더 이상 나이 들게 하지 마시고 어머니께 갈 나이를 저에게 들게 해주십시오”라고 빌고 싶다.

어머니는 나의 반생을 기억하고 계신다. 어머니는 또 하나의 나나 진배없다. 어머니가 오래 사신다는 것은 자식들에게 엄청난 축복이다.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는 것만으로 따뜻한 위안과 사랑을 받는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갈퀴 같은 손을 쥐었을 때 나의 가슴은 행복감으로 가득해졌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쥐고 지난 번 어머니를 뵙고 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해드렸다. 어머니는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라도 즐겨 들으신다. 대화 중에 멀리 사는 동생한테서 어머니께 생신 축하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60에 달한 아들에게 말씀하셨다. “취직했다고? 명심할 것이 있다. 내 것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삼으면 절대로 안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 취침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어머니께 안방에서 함께 주무실 것을 간청했다. 이때부터 어머니와 나의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주장은 단호했다. 당신은 자다가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기 때문에, 코를 골기 때문에, 내가 편하게 잠을 잘 수가 없을 것이므로 당신은 거실에서 따로 자야 한다고 우기셨다.

집 구조상 방에서 들락날락하면 내가 잠을 자주 깨야 하니 먼 곳에서 온 자식의 잠을 설칠까봐 따로 자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체 이것이 무슨 말이나 될 법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면 내가 거실에서 자고 어머니가 안방에서 주무시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우기신다. 내가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으니 그것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한사코 거실을 고집했다.

어머니와 자식 간에 벌어진 실랑이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어머니의 고집 때문에 불효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안방에 이부자리를 폈지만 불편하여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거실에서 주무시는 어머니가 자꾸 신경이 쓰여 몇 번이고 나가 전기담요의 불이 나갔는지 손을 들이밀어 확인해보곤 했다. 거실에서 머리에 수건 같은 것을 쓰고 주무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나는 불효막심한 아들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새벽 일찍 잠을 깬 나는 가만 가만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어머니는 벌써 일어나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다. 아침에 떠나는 나를 위해서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마련하고 계셨다. 혼자 계실 적에는 대충 반찬 한 가지에 간편하게 식사를 하시는 어머니가 자식이 왔다고 전어무침, 죽순나물, 전복미역국 같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마련하느라 한참 시간을 들이셨다.

나는 어떻게 무엇을 도와드려야 할지 몰라 멍 때리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밥상에 올라온 밥그릇에는 녹색 은행 알이 몇 개 들어 있었다. 밥맛이 향기로웠다. 고령이신 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하는 자식들은 누구나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내가 어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마주치는 장면이다.

대체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불효자가 되어버려야 하는가.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를 해온 나의 건강 걱정으로 날마다 산보를 하라는 둥, 전립선이 안 좋으면 복숭아뼈 옆을 눌러주라는 둥 텔레비전에 나오는 의사들이 한 말을 기억하고 계시다가 내가 가면 비방처럼 전해주곤 하신다.

옛날 고려시대 이규보라는 학자는 어머니 생신날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색동저고리를 입고 어린 아이처럼 춤을 추었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지는 못한 채 잔뜩 폐만 끼치고 말았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구제불능의 사람 같기도 하다.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어미니, 내년에는 저의 집에 오셔서 몇 달만이라도 함께 지내시도록 해주세요.” 시쳇말로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릴 심산으로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는 고개를 흔들었다. “난 여기가 천국이다. 성당도 가깝고 산책로도 있고, 병원도 바로 길 건너에 있으니 여기서 더 멀리 갈 것이 없다.” 슬며시 봉투 하나를 밀어 놓고 오는 마음이 흡사 죄를 짓고 도망가는 듯한 마음이다. 옛 말에 일렀으되,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아니하고[樹欲靜而風不止]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아니한다[子欲養而親不待]

부모님 사랑을 갚을 자식이 어디 있으랴. 다음에는 기필코 거실에서 자리라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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