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을 찾아서(20) 광주광역시 인장공예명장 범오 장국신
남도의 멋을 찾아서(20) 광주광역시 인장공예명장 범오 장국신
  • 박창배 기자
  • 승인 2016.11.17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촌(3㎝)에 새긴 예술세계, 역사가 담긴 인장
똑같은 이름이어도 문양도 달라져
▲ 광주광역시 인장공예명장 범오 장국신씨는 29세때부터 42년간 인장만들기를 하고 있다.

올해 광주광역시 인장공예명장으로 선정된 범오 장국신 명장을 찾았다. 그의 나이 29세때 처음 시작한 인장 새기는 일이 40여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에 와서야 빛을 더하고 있다.

왠만한 성인이라면 도장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 사용 했는지 물어보면 옛이야기일 수 있다. 특히 인감도장은 나를 대신해서 계약도 해주었고 관공서 일을 볼 때나 통장을 개설할 때도 쓰였다. 한때는 도장만이 모든 계약서에 사용되기도 했다. 지금은 ‘사인(서명)’이 대신하다 보니 예전처럼 인감도장의 사용이 많지는 않다.

광주에서 활동했던 인장업 종사자만해도 300여명이 되었다. 그 중에서 국가1급인장기능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은 광주에 3명 있었다. 인장업법이 적용되던 시기는 인명부도 만들어 관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들어서 인장업법이 폐지된 이후 도장에 대한 사용이 줄어들게 됐다. 심지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기계로 도장을 만드는 사람들까지 등장하게 됐다. 불과 몇 년전 이야기다.

장국신 명장도 이러한 시기에 함께 있었다. 일흔 살에 접어들어 받게 된 명장이지만 그에게는 더 큰 짐을 짊어지게 됐다. 그에게서 남도의 멋을 찾아 보았다.

▲ 본인이 만그들어 준 인장들을 손에 쥐고 있다.

검자 → 인고

도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치가 않다. 숙련된 경우 일반 나무도장은 30분이면 가능하지만 고급 인장을 만드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먼저 글자 한자한자를 옛고서나 자전 등에서 ‘검자’를 해서 구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검자된 글자 중에서 몇 개의 ‘가인고’를 만들어야 한다. 주어진 인재 모양(동그랗기도 하고 네모지기도 한 도장 재료에 따라) 안에 어떠한 모양의 글자가 들어갈 것인지 도안을 하는데, 여러 가지를 작성하여 그것 중에서 글자의 모양과 이름의 특성을 잘 살펴 선택한다. 도장을 새기는 작업의 처음인 ‘인고’ 과정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평생 지녀야할 인장으로서 어떻게 태어날 것인가를 판가름 짓기 때문이다.

장국신 명장은 “도장집에 가면 붓하고 한자책이 좀 있다 싶으면 도장을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 봐도 된다”면서 “전서체를 사용하여 도장을 만드는데 그 문양은 조각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책들을 보면서 연구하고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 요즘 장국신 명장은 전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인고 → 좌서

방촌(3㎝)에 4글자를 적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고’에서 선택된 문양을 보고 ‘좌서’하게 된다. 글자 그대로 파면 뒤집어져서 찍힌다. 그래서 인장을 새길 때 인고를 거울에 비춰 거꾸로 된 모습을 보거나 얇은 종이에 써서 뒤집어 보면서 새기기도 한다. 하지만 노련해지면 바로 보면서도 가능해 진다고 한다.

이렇게 완성 됐을 때의 인장을 구상한 후 ‘좌서’를 하는 과정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서기 전 글자를 새기게 된 인면을 사포로 고르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나서 ‘포자’를 하게 되는데 글자를 쓰기전에 16칸으로 나누어 도안을 하고 돌려가면서 각인하기 시작한다.

도장은 양각으로 새기지만 전각은 이름을 음각으로, 호는 양각으로 새긴다. 쉽게 말하면 음각은 글자나 문양을 파는 것이고, 양각은 글자나 문양부분을 제외한 부분을 파는 것이다.

조각도는 1호에서 8호까지 있는데 6호까지만 사용한다. 3면이 날인 것이 특징이다. 홋수가 올라가면서 날끝이 뭉특하여 더 넓게 새길 수 있다.

초벌파기가 끝나면 사포로 문질러 매끄럽게 한 다음 ‘타구’를 하게 된다. 글자가 잘 새겨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글자에 색깔을 입히게 되는데 아무리 섬세하게 파도 구석부분이 안 깍인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인고’를 보면서 수정하고 날인해 보면서 수정과정을 거쳐 마무리하게 된다.

▲ 장국신 명장의 인장에는 측관을 적어 두었다.

측관

특히 장국신 명장은 측관을 새겨 준다. 좌우명이나 소중한 문구, 생년월일 등을 옆면에 새긴다.

이름을 새겨 쓰는 인감도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전에 부적으로서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벽조목이라는 것이 ‘벼락 맞은 대추나무’인데 예부터 잡귀를 물리쳐 준다는 속설이 있어 부적 같은 역할을 해왔다”면서 “인감도장으로 사용하면서 몸에 지니고 다니며 좌우명이나 소중한 문구를 보면서 계약할 때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새겨 준다”고 했다.

측관을 새기면서 장국신 명장은 인감도장의 위변조를 방지하는 세가지 방법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첫째는 측관에 새겨진 글을 보면서 도장을 찍으면 본인이 어떤 방향으로 도장을 찍었는지 본인만이 알 수 있게 된다. 둘째로 항상 도장은 이름의 맨 끝자나 ‘(인)’이라고 적혀 있는 글자에 도장을 찍으면 위변조가 힘들다. 아무리 IT가 발달된 시절에 좋은 스캐너로 스캔해서 위변조하려고 해도 스캔된 인장 속 글자는 삭제해야 하는 정교한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다이어리에 언제 인감도장을 사용했는지를 꼭 적어 놓는 메모 습관을 잊지 않는다면 인감도장이 위변조 될 일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도장은 장국신 명장만이 만들어 낸 하나의 작품이면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평생 사용할 인장을 부적처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가끔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도장인데 물려 받어서 사용하려고 한다”면서 새로 본인의 이름을 새겨 달라는 사람들도 온다고 한다. 그럴때면 “손때가 묻은 선친 유물인데 잘 보관하셨다가 후대에 물려 주도록 권유한다”고 한다. 평생 사용했던 인장을 사포로 문질러 없앤다는 것은 그 인장의 역사를 지워버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인장도 역사다

인장도 역사가 있을 텐데 아무리 인장으로 사용되는 벽조목이나 상아, 물소뼈가 비싸다고 재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쉽게 그 역사를 지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역시 명장다운 생각이다. 40여년 넘게 인장을 새기면서 그의 고객들도 수천명이다. 하지만 같은 이름을 가졌어도 한 번도 같은 글씨체를 사용한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호를 딴 ‘범오체’라는 자신만의 글씨체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쭉쭉 뻗어가는 ‘모음’이 사업을 번창하게 만드는 특별한 힘을 느끼게 하는 글씨체다.

장국신 명장은 조그마한 공방을 만들어 취미 삼아 전각을 가르치고 싶은 작은 소망을 갖고 있다. 국가1급인장기능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지만 인장부분은 수제자에게 가르쳐 주고, 일반 시민들에게 글자만 알면 누구나 쉽게 새길 수 있는 서예의 전각분야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 장군의 우국충정을 생각하며 조각된 작품으로 한국, 일본, 중국 3개국 '국제연맹예술대전' 출품작이기도 하다. 공간을 활용하여 폭풍전야의 고요함을 표현하고 팽팽한 긴장감과 힘차고 굳센 기운이 드러나도록 조각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