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자격
대통령의 자격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6.11.0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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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지금 대한민국 건설 후 초유의 사태 속에 휘말려 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다. 아니 이제는 ‘박근혜 게이트’라고 불러도 될 성 싶다. 박근혜 대통령과 오랜 친분 관계를 갖고 있던 한 아녀자가 국정을 농단한 사건이다.

속속 밝혀지는 사실에 온 국민이 경악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대통령 한 사람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어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어찌 보면 굉장히 위태로운 제도다.

대통령 한 사람이 삐끗하면 그 여파로 지금처럼 나라가 흔들리게 되어 있다. 이런 제도를 지난 70년간 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을 만나 ‘내 좁은 양 어깨 위에 5천만명의 안위가 걸려 있다’고 했었다. 사드 문제로 중국과 얼굴을 붉힐 때 한 말이다. 그런데 ‘좁은 양 어깨 위에’ 걸린 5천만명의 운명이 사실은 대궐 밖 어떤 한 아녀자의 손바닥에 있었다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경악하다 못해 억장이 무너진다.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 일이’이다. 작은 회사 일도 아니고, 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중차대한 시대에 애들 소꿉놀이를 하듯 대궐 밖 한 아녀자의 손바닥에서 국정이 요리되고 있었다니.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싶다.

대통령제는 정말 위태로운 제도다. 이승만에서 박근혜까지 12명의 대통령이 이 나라를 통치했다. 그 가운데 과연 몇 명의 대통령이 제 구실을 했는지 의문이 간다. 망명, 암살, 사과, 자살로 얼룩진 대통령들의 초상이다. 많은 대통령들이 오직 대통령 되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되고 나서 무엇을 할지는 목표로 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고 나서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일 텐데 말이다.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나라가 큰일 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선거 시스템으로는 대통령의 자격에 대한 검증이 어렵다. 누가 진정한 대통령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국민은 대선 날 까막눈이 투표를 하는 셈이다. 누가 진정한 대통령감인 줄도 모르고 하는 투표. 어느 당 후보가 싫어서 반대당 후보를 찍거나, 자기 지역 출신이어서 묻지 마 찍거나 하는 투표. 어느 대통령 후보가 진정 나라를 이끌 식견이 있는지, 정책이 무엇인지는 거의 살펴보지 않는다. 이렇게 뽑힌 대통령 한 사람에게 절대 권력을 쥐어주고 대통령이 휘두르는 칼 솜씨만을 바라보는 국민의 처지가 안타깝다. 우리나라 대통령제의 허점이 아닐 수 없다.

이참에 대통령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인터넷 시대에 국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일부 가미해서 대통령제를 보완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코드니, 비선이니, 실세니…. 이런 이상한 말들이 대통령이 새로 선출될 때마다 나오는 것은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어서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극은 먼저는 박대통령 자신에게 있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참모진, 그리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에도 있다고 본다.

한국 정치의 비극은 대통령제 내에 상존해 있다고 해도 어긋난 말은 아니다. 청와대 담장 밖 한 아녀자가 제2의 대통령처럼 국정을 농단하는 일이 대통령 중심제가 아니라면 나올 수 있을까. 이 국가적 비극은 표면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자질에 관한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국민은 4년에 한번 붓대롱으로 찍는 대통령 선출권을 포기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마치 왕을 뽑는 듯한 투표권 행사를 통해서 국민으로서의 자존감을 만끽하는 유일한 기회로 느끼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대통령직 수행을 보면 재임 중 거의 한 번 이상은 국민적 불만에 직면하곤 했다. 정말 시끄러운 제도다. 국민의 성정이 이럴진대 일부에서 제안하는 내각제 같은 것은 어림 반푼어치도 실현 가능성이 없다.

내 짧은 식견으로는 지방분권제를 대폭 강화해서 대통령은 외교, 국방을 맡는 느슨한 연방대통령 비슷한 권력을 갖고 지방정부가 그 지역을 통치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는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성가시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정치를 해왔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없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 하지만 한국 정치는 늘 국민으로부터 욕을 먹어왔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국회에서는 정파 간의 싸움질만 하는 것으로 비쳤다. 정치도 기업 못지않게 ‘생산’을 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 것이 사실이다.

터놓고 말해서 이 나라가 세계에 존재감을 떨치게 된 것이 정치가 잘해서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류바람을 타고 기업이 수출을 많이 해서 국민이 떵떵거리면 살게 된 것이 아닌가 말이다. 국민은 잘 살아보자고 피땀을 흘리는데 정치는 누구 말마따나 아직도 4류에 머물러 있다.

이참에 정치인들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일신해서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해주었으면 한다. 박근혜 대통령 국정 문란사태를 계기로 한국정치의 고질병도 확 뜯어 고쳐졌으면 한다.

이번 사태는 권력의 생산자인 국민에게도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국민도 다음부터는 대통령을 뽑을 때 눈을 부릅뜨고 대통령의 자격을 샅샅이 살펴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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